지난 1987년 12월 8일 서울 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 당시 대우그룹 회장인 김우중 씨와 고(故)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 등 내로라하는 국내 주요 기업인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이 한껏 들뜬 얼굴을 굳이 숨기지 않은 이유는 88서울올림픽을 목전에 두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해 ‘섬유수출 100억달러 돌파’라는 한국 경제의 경이적인 이정표를 세워 서로를 축하하는 자리였다.
섬유업계 기업인들은 이미 1970년부터 섬유류 수출액을 3억 4000만달러 기록해 국내 수출총액 중 41%로 한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 이처럼 1970~80년대 섬유를 수출 품목 간판으로 내세워 발전해 온 우리 경제가 이젠 ‘섬유 순수입국’ 전환을 앞두고 있다. 섬유강국이라던 옛 명성은 더 이상 오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3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섬유·의류 수출액은 159억 3900만 달러로 전년보다 0.1% 줄었다. 반면 수입액은 8.4% 늘어난 146억 5500만 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섬유·의류 분야 무역흑자 규모는 12억 8400만 달러로 전년(24억 3500만 달러)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하면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섬유·의류 무역흑자는 1998년 사상 최대인 140억4천만 달러를 기록한 뒤 감소세로 돌아서 현재는 10분 1 이하로 줄어든 것이다.
현 추세대로라면 올해는 처음으로 수입액이 수출액을 넘어서면서 섬유·의류 분야에서 순수입국으로 전환하는 원년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국내 인건비 상승으로 국내 봉제 의류 공장이 중국, 베트남 등으로 대거 이전하면서 섬유·의류 산업의 외형이 줄고 수출이 갈수록 감소하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중국 등 해외에서 생산된 값싼 의류 제품이 국내 시장으로 역류하면서 수입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특히 섬유·의류 분야에서의 만성적인 대중국 무역적자는 이 분야의 전체 무역수지를 악화시키는 주요인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한국은 중국에 섬유·의류를 25억1500만 달러어치 수출하고 65억9300만 달러어치를 수입해 40억7800만 달러의 무역적자를 냈다.
중국과의 섬유·의류 교역은 2002년 처음 4억8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한 뒤 지난해까지 13년째 적자 행진을 지속했으며, 해마다 적자폭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섬유·의류 수입에서 중국 비중은 45.0%에 달했으나 수출에서 중국의 비중은 15.8%에 불과했다.
그러다보니 업계에선 올해 사상 처음으로 섬유·의류 산업에서 무역적자를 기록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심혜정 무역협회 연구원은 “인건비 때문에 봉제 의류 분야에서 중국, 베트남 등에 주도권을 내준 지 오래”라며 “대안인 직물 분야에서는 최근 대만이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발휘하는 가운데 아직 한국보다는 한수 아래라 해도 중국이 빠르게 쫓아오고 있어 분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과거의 수출효자 종목이라는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대내외 환경이 불리해졌음에도 효성과 코오롱 등 국내 주요 섬유회사들은 수년간의 구조조정과 기술개발, 생산구조 전환 노력으로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섬유·의류 산업은 사양길로 접어든 의류 대신 타이어코드, 극세사 클리너등 고부가가치 직물로 중심이 이동했다. 1970∼80년대 한국 섬유·의류 수출은 의류가 60∼70%를 차지했으나 현재는 직물이 60%를 차지한다. 때문에 섬유사 및 직물의 수출단가는 2000년 이래로 상승추세이란 점도
이에 섬유 수출은 2000년 최고치(187억 달러)를 기록한 이후 주춤한 모습을 보였으나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시 증가세를 보이며 2014년 159억 달러를 기록했다. 한편 가발 수출은 1990년을 정점으로 하락세를 보였으나 고부가가치 원사 기술개발 등을 기반으로 2005년 이후 오름세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다.
[윤진호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