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그린빌 GE(제너럴일렉트릭) 공장. GE의 주력 계열사인 GE파워&워터의 대표 제품인 대용량 발전용 가스터빈을 생산하고 테스트하는 곳이다. 축구장 200여개가 넘는 규모인 167만1352㎡(50만5584평) 용지에 가스터빈 공장, 테스트 시설, 기술개발센터, 계열사 사업부 시설 등을 갖추고 3000여명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인근 항구까지 연결되는 전용 철로까지 설치돼 있다.
이달초 찾은 이곳에선 GE가 최근 개발을 완료한 최첨단 발전 가스터빈 9HA 모델이 출고전 테스트를 거치고 있었다. 대당 392톤(t)에 달하는 거대한 터빈의 핵심 부품 블레이드(회전날개)가 마하 1.5 초고속으로 가동되는데도 공장내에서 육성으로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소음도 심하지 않았다. 투샤르 데사이 GE파워&워터 시스템 엔지니어링 매니저는 “그리드(전력망)에 연결하지 않고 테스트를 하는 방식을 택해 고속과 저속, 고부하와 저부하 등 다양한 환경에서 성능 실험을 할 수 있어 실제 발전소 설치뒤 가동 때 고장률을 크게 낮츨 수 있다”며 “24시간 연속 실험을 할 수 있어 테스트 기간도 200시간 정도로 기존보다 크게 짧아졌다”며 “고 설명했다. 보통 발전터빈 테스트 때는 그리드와 연결해 전력을 함께 생산하는데, 전력생산을 위해 최적화된 조건에서만 실험을 진행하기 때문에 발전소에서 터빈이 실제 가동될 때 다양한 운전방식, 환경 등을 반영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GE의 테스트 방식은 이같은 단점을 개선한 것이란 설명이다.
몬티 애트웰 발전설비 제품관리 라이프사이클 본부장은 “GE의 H급 가스터빈은 현존하는 가스터빈 중 최고 출력 및 효율을 자랑한다”고 설명했다. H클래스 모델 중 9HA.02는 출력 510㎿를 자랑하는 ‘괴물’이다. 9HA.01는 397㎿ 출력이다. 정격주파수 60㎐인 한국 등에서 사용가능한 7HA.01과 02모델은 각각 275㎿와 337㎿ 출력을 기록한다. 이들 모델은 모두 발전효율이 61%가 넘는다. 일반적으로 화력발전의 발전효율은 40~50% 수준, 최신 모델들이 60%를 겨우 넘기는 수준으로, 현재 기술로 60%대는 발전업계에선 ‘꿈의 효율’로 불린다. 이론상 최고치인 67%에 근접한 수치다.
대표 모델인 9HA.01 한 대를 복합운전(가스 터빈 가동 때 발생하는 열을 이용해 물을 가열, 증기 터빈을 함께 가동하는 형태)으로 돌렸을 때 600㎿에 달하는 출력을 낸다. 발전기를 가동하면 60만 가정이 동시에 쓸 수 있는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가스터빈의 핵심 기술 중 하나는 연료 가스의 연소와 폭발에 따른 고온과 고압에 견디는 블레이드(회전날개). 이를 위해 티타늄 합금 재질 사용, 열차단 코팅(Thermal Barrier Coating), 찬공기로 블레이드를 감싸는 공기냉각 방식 중 최첨단 기술들이 대거 동원됐다. 애트웰 본부장은 “이같은 기술을 통해 블레이드는 섭씨 최대 1600도까지 견딜 수 있다”고 설명했다.
GE의 가스터빈 대당 가격은 400억~700억선이다. 존 라마스 발전설비 엔지니어링 부사장은 “H급 가스터빈은 현재 9개국 45기 계약이 완료됐다”며 “한국에도 안양열병합발전소에 2기를 공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뛰어난 제품을 만들어낸 것은 GE의 기술력과 과감한 R&D 투자다. 하지만 또 다른 결정적 비결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기업들의 경영기법인 ‘린스타트업(Lean Startup·처음부터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 내놓는 대신 빠른 속도로 프로토타입(시제품)을 만들어 보고 시장의 반응을 신속하게 살피고 이를 다시 제품에 즉각 반영해 완성도를 높이는 전략)’에서 착안한 GE의 경영전략 ‘패스트워크(FastWorks)’다. GE는 패스트워크 확산을 위해 ‘린스타트업 ’ 책 저자이자 실리콘밸리 벤처기업가인 에릭리스를 영입해 자문을 받기도 했다. 매출 1486억달러(164조원·2014년 기준). 30만5000명 직원, 137년 역사의 글로벌 대기업이 생존을 위해 벤처기업의 전략까지 유연하게 도입해 끊임 없는 혁신을 이어가는 것이다.
GE는 H급 가스터빈 개발과정에서 패스트웍스를 통해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단축하고 하드웨어 엔지니어들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의 상호소통을 강화하는 한편 유연하게 제품을 개발할 수 있게 지원했다. 완제품을 내놓은 뒤 실제 가동하면서 오류를 찾아내고 개선을 해나가는 전통방식을 버리고 프로토타입을 빠른 시간에 출시한 뒤 시장과 고객 피드백을 빠르게 살피고 이를 기민하게 제품 업그레이드에 반영했다. 첨단 소프트웨어와 3D프린팅 등의 기술도 이같은 속도에 힘을 더했다. 티타늄 합금 소재는 항공부문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덕분에 신형 가스터빈 신제품 개발 기간이 2년에 불과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우수한
라마스 부사장 “패스트워크를 통해 보다 빠른 속도와 낮은 개발 비용으로 고객들이 만족하는 뛰어난 제품을 내놓는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린빌·애틀랜타(미국) = 이호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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