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칩을 독자 기술로 개발, 글로벌 통신 칩 시장을 장악해온 퀄컴이 창사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최대 수요처인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S6에 스냅드래곤 칩이 배제된데 이어 차기작 갤럭시노트5에 탑재하는데도 실패했다. 여기에 국내외에서 퀄컴이 표준특허권을 남용하고 있다는 판단이 잇따라 내려지고 있어 핵심 비즈니스모델인 라이선스(특허권) 사업도 근간이 흔들리는 모양새다.
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 하반기 내놓을 전략 스마트폰인 갤럭시노트5에도 퀄컴의 스냅드래곤 칩을 탑재하지 않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이미 10나노대 핀펫 공정을 적용한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의 14나노 엑시노스칩을 갤럭시S6에 탑재, 성능과 생산성을 높이고 가격은 낮췄는데 퀄컴은 올 하반기에나 10나노대 핀펫 공정의 스냅그래곤 820을 양산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또 퀄컴은 모뎀칩과 AP(어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통합한 칩을 공급하면서 이 시장을 사실상 독점해 왔는데 스마트폰 업체들이 점차 AP를 자체 설계, 생산하면서 퀄컴의 모뎀칩만 원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삼성전자가 자체 AP인 엑시노스 생산을 늘리고 있는데 이어 LG전자도 자체 AP를 개발한 바 있다. 이 같은 흐름 때문에 퀄컴의 지난 2분기(1~3월) 순이익이 46% 급감했다. 중국 정부의 반독점법 위반 조사에 따른 과징금을 납부의 영향도 있었지만 핵심 칩 판매가 부진한 것도 원인이었다.
여기에 퀄컴의 근간인 ‘로열티’사업도 위기다. 퀄컴은 막대한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이동통신 기술을 독자 개발하고 이에 대한 표준특허를 걸어 라이선스(로열티)를 받아왔다. 퀄컴 매출의 60% 이상 스냅드래곤 등 칩 제조에서 나오지만 이익의 60% 이상은 라이선스 사업에서 나올 정도로 비중이 절대적이다.
하지만 퀄컴이 특허권을 과도하게 적용, 이를 시장 경쟁을 제한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최근 국제표준화기구 중 하나인 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는 퀄컴 등 특허권자가 라이선스를 과도하게 행사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정책(지식재산권 정책 개정안)을 최종 승인한 바 있다.
한국에서도 이 같은 결정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서강대 법학연구소와 법무법인 광장이 지난 4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개최한 ‘표준필수특허 보유자의 특허권 남용에 대한 법적, 경제적 분석’학술대회에서는 표준 특허권자가 특허권을 남용, 경쟁을 제한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퀄컴의 라이선스 정책이 특허권 남용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호열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전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날 학술대회 기조연설에서 “당국은 특허 남용을 통제하고 정상적으로 시장 복원해야 한다. 라이선스 사업에 대한 구조를 전체적으로 보고 창조적으로 배제 행위를 논증해야 한다”고 원칙을 밝혔다.
국내 학자들이 퀄컴의 로열티 정책을 비판하고 있는 것은 갤럭시S6에서 삼성전자가 퀄컴칩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로열티는 그대로 낸다. 퀄컴의 기존 로열티 정책은 칩 단위가 아닌 전체 기술을 기반으로 산정됐기 때문이다.
홍대식 서강대 로스쿨 교수는 발제문에서“지식재산권 가진 것만으로 지배적 사업자는 아니지만 대체기술 존재 여부 등을 고려해야 한다. 퀄컴은 가격에 비해 약탈적 라이선스 정책이 아니다라고 결론 내리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상승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표준 특허 보유자가 시장 지배적 위치에 있으면 부품 공급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안된다. 또 부품 시장에 진출 해 있으면 경쟁업체에게 통상 특허, 라이선스를 거절해서는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이 교수의 이 같은 발언은 사실상 칩 공급과 라이선스 사업을 동시에 하고 있는 퀄컴을 지적한 것이다. 퀄컴은 AP, 모뎀 등 부품 단위의 라이선스를 제시하지 않고 전체 스마트폰 매출에 대비한 특허료를 산정하고 있으며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있는 업체들에게는 사실상 타사 부품을 사용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분위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퀄컴이 칩 사업과 라이선스 사업을 분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퀄컴 지분
[손재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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