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잉~ 지잉~”
전원을 누르자 허리 뒤쪽에 장착돼 있던 배터리가 작동되면서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다. 유압파워모듈 작동으로 마치 ‘아이언맨 수트’ 처럼 기자 다리를 감싸고 있던 로봇 다리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소방관들이 사용하는 산소통 20㎏, 로봇 무게 25㎏ 등 어깨를 누르고 있던 무거운 중량감이 일순간 사라졌다. 책 몇 권이 들어있는 가방을 매고 있는 느낌이었다. 20㎏의 산소통을 맨 채 연구실 구석구석을 20여분간 돌아다녔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다.
지난 7일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생산기술연구원 경기본부 벤처혁신관 1층 실용로봇연구그룹 연구실. 아이언맨 슈트처럼 사람이 입고 움직일 수 있는 ‘웨어러블 로봇’ 개발이 한창이다. 연구개발을 이끌고 있는 장재호 FRT 대표(생산기술연구원 실용로봇연구그룹 수석연구원)는 “오는 11월 화재 등 재난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입는 로봇 ‘하이퍼’를 만들어 시험평가를 시작한다”며 “내년 5월까지 연구를 마무리 짓고 2017년부터 소방서에 보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생산기술연구원은 지난 2008년부터 하이퍼 개발을 시작했다. 대우조선해양, LIG그룹 등과 함께 입는 로봇을 현장에 적용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하이퍼를 기반으로 한 입는 로봇을 개발해 현장에 적용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연구소기업 FRT는 로봇산업진흥원과 함께 ‘시장창출형 로봇보급사업’을 시작했다. 경상북도 소방서, 부산 소방본부 등과 함께 소방관들이 화재 현장에서 장시간 안전하게 작업을 할 수 있는 하이퍼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사용하는 산소통 무게는 20㎏이나 되는데, 사용시간은 40여분에 불과하다. 고층 빌딩에 화재가 나면 20㎏의 산소통을 매고 계단을 오르내려야만 한다. 장 대표는 “화재 현장에서 오래 머무를 수 없고 산소통 무게로 소방관들 피로누적이 상당하다”며 “무거운 산소통을 매고 4시간 동안 현장을 누벼도 끄덕없는 하이퍼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하이퍼를 입어보니 처음에는 로봇이 몸을 감싸고 있다는 이질감에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작동 시켰을 때도 기자 다리와 함께 움직이는 로봇 다리에 적응되지 않아 걷기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착용하고 5분 정도가 지나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전후좌우 모든 방향으로 이동이 가능했으며 한쪽 다리를 들고 계단을 오르는 것도 가능했다. 다만 연구원이 보유하고 있는 시제품 로봇과 기자 다리 길이가 맞지 않아 앉고 일어서는 것은 어려웠다. 장 대표는 “연말께 출시되는 하이퍼는 착용하는 사람 다리 길이에 맞출 수 있어 움직임이 보다 자유로워진다”며 “착용한 상태에서 쪼그려 뛰기도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이퍼는 전기모터를 돌려서 유압을 발생시키는 ‘전기유압방식’을 적용했다. 등에 맨 물체 무게는 다리를 감싸고 있는 로봇 다리가 모두 지탱한다. 로봇 다리의 발바닥과 무릎 부위에는 20여개 센서가 장착돼 있어 사람 움직임을 신속하게 예측할 수 있다.
장 대표는 “로봇 개발에서 가장 어려운 게 주변 환경을 스스로 인지하는 것”이라며 “입는 로봇은 사람이 판단하고 로봇은 그 움직임을 돕기 때문에 다른 로봇들과 비교해 상용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록히드마틴은 군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웨어러블 로봇 ‘헐크’를 개발했는데, 현재 산업용으로 전환하기 위한 기술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가장 앞선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90㎏의 짐을 매고 뛰어다니는 게 가능하다. 일본은 정부 지원을 통해 노약자 이동을 돕는 입는 로봇 ‘할(HAL)’을 개발해 2025년까지 940만대를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한국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현대로템, LIG 등에서 입는 로봇을 병원이나 산업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보행이 불편한 환자 이동을 돕고 무거운 물건을 운반하거나 설치하는 작업 현장에 입는 로봇을 보급하면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아직은 가격이 비싸다. 유럽과 미국 등에서 일부 연구용으로 판매하는 입는 로봇 가격은 5000만~1억 원에 달한다. 연구용 하이퍼 가격도 대당 3000만 원을 웃도는 수준이다. 스위스가 개발한 보행지원용 입는 로봇은 6억원에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보급이 본격화하면 가격부담도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로템에 따르면 현재 입는 로봇 시장 규모는 제로에 가깝지만 2025년에는 5조원 규모로 성장한다. 하이퍼 역
[안산 =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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