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물러가고 찜통 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무더위가 지속되면 낮에는 일사병, 열사병에 노출될 수 있고, 밤에는 열대야에 잠을 설치게 된다. 지난달 30일 질병관리본부는 “올들어 처음으로 열사병으로 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하루 최고 기온이 35℃ 넘는 날이 이틀 이상 지속되는 폭염이 발생하면 고혈압·당뇨병·만성 신부전 등 만성질환 환자들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진다. 하버드의대에서 조사한 결과, 여름철 기온이 평균보다 1℃ 오르면 당뇨병과 심근경색으로 인한 사망 위험률이 약 10% 상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심장학회 연구에서도 기온이 32℃ 이상일 때 뇌졸중은 66%, 관상동맥질환은 20% 가량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대목동병원 순환기내과 신길자 교수는“지나치게 더운 날씨가 계속되면 땀으로 인한 탈수 증상과 급격한 온도 변화에 따른 심장 과부하로 심근경색, 뇌졸중 등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며“고혈압을 비롯해 당뇨병, 만성 신부전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한낮 외출을 삼가고, 적절한 실내 온도 유지와 수분 섭취 등 폭염에 대비하는 생활수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폭염이 지속되면 밤에는 ‘열대야’로 불면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열대야는 밤 최저기온이 25℃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밤에 무더위로 숙면을 취하지 못하면, 낮에도 피로하고 몸에 활기가 떨어져 무력감마저 느끼게 된다. 고려대 안산병원 수면장애센터 신철 교수는 “밤에도 고온 다습한 기온이 30℃ 이상 유지되면 중추신경계 중 체온과 수면각성을 조절하는 시상하부가 자극되고 이로 인해 과각성(자극에 대해 정상보다 과민하게 반응하는 상태)이 이어져 잠을 자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만성적 수면장애는 우울증, 불안증과 같은 정신과 질환을 부른다. 또 신체 면역기능과 자율신경계 이상으로 이어져 소화기계 질환, 심혈관계 질환, 내분비계 질환 등의 각종 질병에 잘 걸리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있다.
서울수면센터 한진규 원장은 “저녁에 숙면을 취하려면 무엇보다 침실 온도를 섭씨 25~26℃ 정도로 낮추는 것이 좋다”며 “실내외 온도차이가 너무 나면 오히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 분비가 자극돼 수면에 방해를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장시간 에어컨을 계속 틀거나 선풍기를 계속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밤새도록 켜놓고 자면 냉방병이나 저체온증에 걸릴 수 있어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열대야에 시달려 잠을 잘 자지 못했더라도 아침에는 일정한 시간에 일찍 깨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또 낮잠은 20분이상 자지 않으며, 특히 불면증이 있는 경우에는 졸리더라도 낮잠을 오랫동안 자지 않는 것이 밤잠을 잘 자는 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잠이 안온다고 술을 마시거나 야식을 즐기는 것도 좋지 않다.
무더위가 계속 되면 고혈압, 당뇨병,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폭염이 계속되면 혈액은 체온을 낮추기 위해 피부 아래 모세혈관으로 집중되는데, 이럴 경우 표면 순환 혈액량을 늘리기 위해 맥박이 빨라지면서 심장에 무리가 갈 수 있다. 또 체내 혈액이 피부 쪽에 몰리다 보니 장기나 근육에 더 많은 혈액을 공급하기 위해 심장이 과부하되며 혈압도 오를 수 있다.
따라서 고혈압 환자들은 덥다고 찬물로 샤워를 하거나 몸이 뜨거운 상태에서 바로 에어컨 바람을 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확장된 혈관이 찬바람을 맞으면 갑자기 수축되어 혈압이 급격히 상승한다. 뜨거운 온욕 역시 혈압을 오르게 할 수 있으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샤워는 미지근한 물로 하고 냉방기를 사용할 때는 실내외 기온차이가 4~5℃ 넘지 않도록 해야한다. 운동은 가벼운 산책을 하는 것이 좋다. 탈수는 고혈압을 악화시킬 수 있어 야외활동을 할 때는 목이 마르지 않더라도 충분한 수분 섭취가 필요하다.
당뇨병 환자도 무더위에 탈수 현상이 나타나면 급성 당뇨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더운 날씨로 인해 시원한 청량음료나 빙과류, 과일 주스 등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당분 함량이 많으므로 당뇨병 환자는 피하는 게 좋다. 수박이나 포도, 망고, 참외 등의 당도 높은 과일도 1~2조각 이상은 먹지 않도록 한다.
이대목동병원 내분비내과 홍영선 교수는 “당뇨병 환자의 수분 섭취를 위해서는 냉수가 가장 좋으며 보리차나 시원한 녹차 등도 이용할 수 있다”며 “스포츠 음료는 흡수 속도가 빨라 갈증 해소의 장점이 있지만, 당분 함량이 높은 만큼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만성 신부전 환자도 여름을 나기 쉽지 않다. 가장 먼저 신경 써야 할 것은 과일과 야채다. 콩팥기능이 떨어진 만성 신부전 환자들은 칼륨의 배설 능력이 떨어져 수박, 바나나, 오렌지, 키위 등의 과일과 토마토, 호박, 감자 등 칼륨 함량이 높은 야채를 많이 먹게 되면 근육 쇠약, 부정맥은 물론 심하면 심장 마비까지 유발할 수 있다. 복숭아나 사과, 오이, 무 등은 상대적으로 칼륨 함량이 적은 편이다. 수분 섭취 역시 주의해야 한다. 땀을 많이 흘렸다고 맹물을 너무 많이 마시면 저나트륨혈증이 발생해 위험할 수 있다. 물은 하루에 1ℓ이내로 섭취하도록 하고 물을 마시고 붓는 증상이 심할 때는 주치의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식중독도 주의해야 한다. 만성 신부전 환자들은 비브리오 패혈증 발병 위험이 높아 여름철에는 생선회와 같은 날 음식은 피하는 것이 좋다.
강동경희대병원 신장내과 이상호 교수는 “칼륨의 함량이 높은 과일이나 야채를 많이 섭취하면 혈청의 칼륨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상승해 근육의 힘이 약해 질 뿐 아니라 심장의 부정맥이 발생하고, 심할 경우엔 심장이 멎는 등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대목동병원 신장내과 강덕희 교수는 “더운 날씨에 몸과 마음이 지치기 쉽고 여름 휴가 분위기에 빠지다 보면, 평소 식사와 생활 습관 관리를 철저히 하던 사람들도 이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날씨가 더워질수록 생활 습관 관리를 더 꼼꼼히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폭염과 무더위는 피부건강도 해친다. 7, 8월은 1년중 자외선이 가장 강한 시기다. 이 때 자외선에 과도하게 노출되면 홍조(주사), 색소침착(기미, 주근깨, 검버섯, 다크 서클), 광노화, 광과민질환(햇빛 알레르기), 알레르기 접촉피부염 등과 같은 질환에 노출될 위험이 높다. 또한 무더운 날씨에 피지분비량이 증가하고 건조한 에어컨 바람으로 피부 속 수분이 줄면서 여드름과 같은 여러 피부트러블이 유발되기 쉽다.
임이석 피부과 원장은 “여름철에는 과다한 자외선 노출로 원치 않은 색소질환도 생기기가 쉽고, 고온 다습한 날씨로 박테리아나 곰팡이 균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각종 피부 트러블을 일으킬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외선은 피부에서 비타민D 합성을 유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일정 시간 지속적으로 자외선을 받으면 각질형성세포가 활성화되거나 랑게르한스 세포가 손상돼 일광화상 증상, 면역력 감소, 심하면 광노화 및 피부암까지 발생할 수있다.
여름철 피부를 보호하는 지름길은 자외선 차단제(선크림)를 꼼꼼하게 발라
[이병문 의료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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