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의 직인이 찍힌 지시서에 이어 동영상이 지난 2일 공개되면서 롯데그룹의 전근대적 인사와 경영 방식이 민낯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3일 나오고 있다. 롯데그룹은 그동안 이사회 절차나 결정보다 신 총괄회장의 말 한 마디로 경영 방향과 인사가 결정나 ‘황제경영’이란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달 27일 신 총괄회장은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과 함께 일본 도쿄에 위치한 롯데홀딩스 본사를 찾아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비롯한 이사 6명을 해임했다. 당시 신 총괄회장은 주요 임직원 십여명을 불러놓고 손가락으로 이사 6명의 이름을 일일이 가리키며 해임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등기임원이나 이사 등을 해임하려면 정식 이사회의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신 총괄회장의 구두 지시만으로 이사 해임이 이뤄진 셈이다. 다음날 신동빈 회장의 반격으로 해임 결정은 무효화됐지만 당시 신 총괄회장의 해임 지시는 바로 일본롯데홀딩스 공고로 방에 붙었다.
이후 신 전 부회장은 장남이 계획한 일종의 ‘쿠데타’라는 지적에 신 총괄회장의 지시서를 추가로 공개했다. 지난달 17일자로 작성된 지시서엔 ‘장남인 신동주를 한국롯데그룹 회장으로 임명함’이라는 내용과 ‘차남인 신동빈을 후계자로 승인한 사실이 없음’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으며 신 총괄회장의 서명과 도장이 찍혔다.
롯데 고위 관계자는 “일반인이 보기엔 A4용지에 손글씨로 쓴 메모 수준일 수 있어도 롯데 인사들에겐 신 총괄회장의 서명이 담긴 지시서는 가장 강력한 지시이자 명령”이라며 “그동안 신 총괄회장의 이같은 지시서나 구두 지시가 그룹 인사는 물론 그룹 경영에 가장 큰 역할을 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합법적은 아닐지라도 그룹의 특성상 신 총괄회장의 지시가 그동안 그룹 전체 방향을 뒤흔들어 왔던 만큼 지시서 공개는 그룹 주요 인사를 비롯해 한일 주주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 전 부회장 측을 통해 공개된 육성파일과 동영상에서도 신 총괄회장은 신 회장이 일본롯데 사장을 맡고 있단 말에 “그만두게 했잖아. 강제로 그만둬야지”라고 말하는가 하면 “(신동빈 회장을) 한국롯데 회장과 롯데홀딩스 대표로 임명한 적이 없다. (신동빈 회장은) 어떠한 권한이나 명분도 없다. 신동빈 회장의 눈과 귀를 차단한 참모들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 총괄회장은 지난달 지시서를 통해 신 회장과 이인원 롯데그룹 정책본부 부회장, 황각규 롯데 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 등도 이미 해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현재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신관 34층 집무실에서 외부와의 연결을 철저하게 차단한 채 머물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신 총괄회장의 폐쇠적인 독단경영이 가능한 이유는 한국과 일본 롯데를 연결하는 복잡한 지배구조 탓이 크다”며 “400여개에 이르는 미로같은 순환출자 연결고리로 일반인은 명확하게 알 수 없는 지분구조를 갖고 있어 전근대적인 1인 총수의 그룹 지배가 가능했다”고 지적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신 총괄회장이 한국 롯데그룹 계열사의 총 지분율은 0.05%에 불과하다. 롯데 오너가 지분을 전부 끌어모아도 3%가 채 되지 않는다. 한일 롯데그룹 지분구조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광윤사 역시 신 총괄회장의 지분은 3%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각각 광윤사 지분 약 29%씩을 갖고 있는 신 전 부회장과 신 부회장 지분을 제외한 소유주가 전혀 드러나 있지 않아 나머지 지분은 신 총괄회장이 움직일 수 있는 지분이라는 분석이 무게를 얻고 있다. 한국 롯데그룹 지주사인 비상장사 호텔롯데의 지분 72.6%를 정체가 불분명한 투자목적회사인 L투자회사들이 갖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풀이된다.
증권 관계자는 “롯데그룹의 구조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황제경영 방식이 근절되려면 무엇보다 순환출자 연결고리
[매경닷컴 배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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