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채 전 KT 회장의 횡령·배임에 대한 1심 무죄 판결, 이재현 CJ그룹 회장에 대한 대법원의 배임 부분 파기환송...’
최근 기업인 배임에 대한 무죄 취지 판결이 잇따르면서 기업인들의 경영활동을 옥죄는 배임죄 규정에 대한 대대적 수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배임죄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처벌기준이 지나치게 포괄적인 데다 정상적 경영 판단에 따른 행위까지 과잉 처벌할 수 있어 재계에서는 대표적 ‘악법’ 중 하나로 손꼽혀왔다.
형법 355조 2항에 따르면 배임은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 이익을 취하거나 제3자에게 이익을 취하게 해 본인에게 손해를 가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하지만 이 규정에선 ‘고의성’에 대한 언급이 없고,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 역시 구체적이지 않아 늘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재계는 배임죄가 기업가정신과 투자를 위축시켜 혁신을 가로막고 경기 침체를 가져오게 된다고 지적한다. 김경배 경총 부회장은 “악의 없이 신중하게 결정을 내렸더라도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처벌받는다면 어떤 기업인이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겠느냐”며 “사업을 가장 잘 아는 기업인이 내린 경영상 결정을 법관이 형평성 잣대로만 단죄하는 게 과연 정의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처벌기준이 포괄적이고 모호하다보니 검찰과 법원의 잣대도 다르고 재판부 판결도 일관성이 떨어진다. 검찰의 기업인 압박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지적도 있다. 정관계 로비 등 큰 의혹을 명쾌히 밝혀내지 못하더라도 배임죄 하나는 쉽게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실제 배임죄에 대한 무죄율도 높은 편이다. 2013년 기준 형법상 전체 범죄 무죄율은 1.7%에 불과하지만 형법상 배임·횡령 무죄율은 5.4%,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가법)상 배임 등 경제범죄 무죄율은 11.0%에 달한다.
재계는 ‘경영판단의 원칙’을 상법에 명문화해 판결에 일관되게 적용토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영판단의 원칙이란 경영자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신중하게 결정을 내렸다면 예측이 빗나가 회사에 손해가 발생해도 배임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원칙을 말한다.
전경련은 지난 봄 경영판단 원칙을 상법에 명문화할 것을 법무부에 건의한 바 있다. 지난해 말에는 규제기요틴 과제로 ‘배임죄 구성요건에 경영판단원칙 도입’을 건의하기도 했다. 이명수 새누리당 의원과 정갑윤 국회부의장 등 정치권도 이같은 취지로 배임죄 개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 2월 헌법재판소는 배임죄 합헌 판결을 내리며 합헌 근거로 경영판단 원칙을 실제 판결에서 적용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법원 판결에서 경영판단 원칙은 일관성 있게 적용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전경련 조사 결과, 2002년 이래 경영판단 관련 배임죄 판례는 37건으로 이 중 경영판단 원칙을 구체적으로 따져 내린 판결은 절반에도 못미치는 18건에 불과했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경영판단의 원칙 적용 여부에 따라 고등법원과 대법원의 유·무죄 판단이 엇갈린 판례도 12건이나 됐다.
신석훈 전경련 기업정책팀장은 “경영실패가 아닌 사익 취득을 위한 의도적 행위에만 배임죄를 적용해야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게 헌재의 합헌 취지”라며 “경영판단의 원칙을 명문화해 기업가 정신이 살아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총 관계자는 “형법상 배임죄를 명시하는 국가는 독일과 일본, 한국 뿐”이라며 “독일과 일본은 군국주의 시대 기업 통제용으로 도입을 했고 경영판단의 원칙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어 실제 처벌 사례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아예 배임죄 폐지까지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이사회가 거수기 역할만 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한다면 중장기적으론 폐지까지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또다른 재계 관계자도 “헌재 합헌 결정 때문에 현실적으로 경영
물론 반대 목소리도 있다. 검찰 관계자는 “한국에서 배임죄를 없애면 재벌 총수의 전횡이나 방만경영이 늘어날 수 있다”고 염려했다.
[이호승 기자 / 김규식 기자 / 윤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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