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면세점 업계는 지금 사면초가에 놓여 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와 한·일관계 악화 등 각종 악재로 관광객이 줄어들면서 심각한 경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중국은 초대형 내국인 면세점으로 자국민의 해외 쇼핑을 막기 시작했다. 경쟁국인 일본은 엔저를 내세워 중국인 관광객 유커(遊客)를 뺏아가고 있다.
중국, 일본과 ‘총성 없는 전쟁’에 돌입했지만 정작 한국 정부는 각종 규제로 국내 면세점 업계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한류 열풍으로 면세 산업이 호황을 누리면서 정부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특허’를 ‘특혜’로 규정하고 각종 규제책을 쏟아내고 있다.가장 먼저 발목을 잡는 규제는 5년 시한부 면세 특허다. 면세점 특허 기한을 5년으로 제한해 사업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신규 투자가 망설여진다. 게다가 독과점 규제와 특허수수료 100배 인상 등을 담은 ‘관세법 개정안’도 발의돼 업계 숨통을 조이고 있다.
중견 면세점 대표 A씨는 “FTA(자유무역협정)가 확대되고 관세장벽이 점차 낮아지면서 머지 않은 미래에 ‘듀티프리(duty-free)’라는 산업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며 “세계 각국 면세점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위기 상황에서 정부와 국회가 산업 육성은 커녕, 규제 강화 논의만 하고 있어 너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5년 시한부 면세 특허=국내 면세업체들은 ‘시한부 사업자’다. 5년마다 면세 특허를 갱신해야 하기 때문에 기업의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 투자가 어렵다.
5년 특허 허가제는 지난 2013년부터 시행됐다. 대기업의 면세 특허 기간이 기존 10년에서 5년으로 축소됐으며 사업 갱신 방법도 자동갱신(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을 경우)에서 경쟁 입찰로 바뀌었다. 만약 사업권을 잃게 되면 그동안 쏟아부은 투자비가 물거품이 된다. 1979년 이후 3조원을 투자해온 롯데면세점 역시 그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실제로 2013년 김해공항 경쟁 입찰에서 사업권 재획득에 실패해 직원 250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면세점 관계자는 “5년 시한부 특허에 피가 말린다. 물류센터에 수천억원을 투자했는데 사업권을 뺏기면 시설 투자비 뿐만 아니라 고용도 유지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업계는 5년 경쟁 입찰 사업권을 10년 주기로 바꾸거나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을 경우 자동 갱신 형태로 바꿔야 한다고 요구한다. 면세 사업은 초기 투자 자금이 많아 5년 후에야 손익분기점을 돌파하기 때문이다. 사행성 산업인 카지노와 경마도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으면 특허 연장이 가능한데 면세 사업에만 유독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독과점 규제=지난 9월 김관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면세점 특허를 불허하는 조항을 담은 관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시장 점유율 80%를 차지하고 있는 롯데와 호텔신라를 겨냥한 법안이다. 그러나 정부 허가 산업에 대한 독과점 규제 적용은 적합하지 않다는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면세 사업은 정부 허가 산업이기 때문에 독과점 구조가 형성될 수 밖에 없는데도 논란이 생기는 이유는 산업 구조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7월 서울 시내 면세점 신규사업자 선정 당시에도 독과점 논란이 있었지만 소관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는 독과점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려 롯데면세점과 호텔신라 모두 특허권 입찰에 참여했다.
독과점 규제는 글로벌 경쟁을 하는 면세 산업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법안이라는 비판도 일고 있다. 지난 2008년 유럽위원회(EC)는 면세 사업을 수출 산업으로 인정해 오토그릴(Autogrill)과 월드 듀티 프리(World Duty Free) 인수합병을 승인한 바 있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면세 사업자에게 국내 시장 점유율로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국내 1위 롯데면세점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불과 6.4%(2014년 무디리포트)에 머문다. 지난 7월 메르스 여파로 중국인 쇼핑 매출액이 전년 대비 50%나 급감해 대외 환경 변화에 취약한 산업이기도 하다.
주우진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면세점 고객 80%가 해외 관광객이며 외화를 벌어들이는 수출 산업”이라며 “대형화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필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면세점 사업 경쟁력은 오랜 세월 축적한 사업 노하우와 가격 협상력으로 인기 명품 브랜드를 유치하는데 달려 있기 때문에 대기업 자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허수수료 100배 인상=면세 사업이 ‘황금알 낳는 산업’으로 인식되면서 정치권 일각에서 이익을 환수하려는 법안을 추진중이다.
홍종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달 현행 특허수수료인 매출액의 0.05%를 5%로 100배 올리는 관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관영 의원은 지난 9월 시내 면세점의 특허수수료를 공항처럼 경매 방식을 적용해 최고가를 써내는 업체에 특허를 주자는 법안을 발의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특허수수료 논란이 거셌기 때문에 빠르면 올해 안에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업계는 특허수수료 인상안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통상 면세점 영업 이익율은 5%에 불과해 백화점 영업이익율 10%보다도 적은 박리다매 사업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오른 특허 수수료만큼 영업이익이 줄어들면 법인세 납부액이 줄어들텐데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특허수수료를 매출액에 따라 차등적으로 0.5%~1%로 인상해야 한다”고 항변했다.
◆면세점 파격 지원하는 중국과 일본=한국 정부는 면세 사업을 규제 대상으로 여기지만 경쟁국인 중국과 일본, 대만 정부는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8월 자국민의 해외 쇼핑 매출액을 내수로 돌리기 위해 하이난 섬에 세계 최대 면세점 ‘CDF몰(연면적 7만2000㎡)’을 오픈했다. 내국인 면세 한도는 8000위안(약 150만원)으로 면세 품목을 기존 21종에서 38종으로 늘렸다.
일본도 지난해부터 내수 경제 활성화 방안으로 관광 산업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외국인에게
대만도 지난해 5월 유커를 유치하기 위해 중국 본토에 인접한 진먼섬에 초대형 에버리치 면세점(연면전 3만815㎡)을 열었다.
[전지현 기자 / 장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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