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 나와라 한 판 붙자’
삼성전자가 12일 핵심 부품을 자체 설계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공개했다. 미국의 퀄컴이 AP 신제품 출시를 공식 발표한지 하루만이다. 스마트폰용 CPU(중양연산처리장치)시장의 절대 강자인 미국 퀄컴사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AP는 스마트폰에서 각종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역할을 하는 핵심 부품이다. PC로 치면 중앙연산장치(CPU), 사람에게는 머리에 해당된다. 이번에 공개된 두 회사의 AP는 내년에 출시될 삼성전자의 차세대 프리미엄 스마트폰인 갤럭시 S7 등에 탑재될 예정이다.
AP 시장은 스마트폰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매년 큰 폭으로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A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AP 시장규모는 210억 달러(약 24조원)로 2010년에 비해 무려 5배나 성장했다. 올해 3분기까지 시장점유율은 퀄컴이 34.2%로 1위를 달리고 있고 애플이 28.5%로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삼성전자 점유율은 8.6%에 불과하다.
그동안 스마트폰 AP시장은 사실상 퀄컴의 독무대였다. 지난해까지 시장점유율 50%를 달리며 시장을 굳건히 방어해냈다. 독자적인 설계기술을 바탕으로 AP와 통신모뎀을 하나의 칩으로 묶어서 내놓는 ‘원칩(One Chip)’ 기술은 남들이 쉽게 모방하기 힘든 철옹성이었다.
AP분야에서 추격자인 삼성전자가 ‘넘사벽’으로 여겨져온 퀄컴에 맞짱을 트자고 도전장을 내밀 수 있던 것은 이번에 공개한 고성능 AP ‘엑시노스8 옥타’ 덕이다. 삼성이 내놓은 프리미엄급 AP 가운데 처음으로 원칩 제품이다. 최대 600Mbps의 다운로드 속도와 150Mbps의 업로드 속도를 지원하는 최고 사양의 통신장치를 내장한 원칩 제품은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칩 면적을 줄여 내부 공간을 더 확보할 수 있게 해준다.
여기에 삼성은 설계 기술에서도 한걸음 앞서갔다. AP의 핵심부품인 ‘코어’를 직접 설계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동안 삼성은 영국의 암(ARM)에서 관련 기술을 100% 사와서 사용했다. 삼성 내부적으로 코어 설계 프로젝트는 ‘몽구스’로 불렸다. 독사를 잡아먹는 포유류 몽구스처럼 퀄컴 애플 인텔 등 시장 강자들과 싸워 이기겠다는 삼성의 집념을 나타냈다. 이번 ‘엑시노스8 옥타’의 경우 8개의 코어가 작업 종류에 따라 필요한 만큼 개별 작동하게끔 설계됐다.
코어가 많아질수록 성능은 좋아지지만 미세한 제조 공정이 필요하다. 반도체 제조 공정이 미세해져야 생산 효율이 높아지고 전력 소모량은 줄어들어 코어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엑시노스8 옥타도 전작에 이어 최첨단 14나노 핀펫 공정이 적용됐다.
삼성전자는 이번에 공개한 신작 AP를 연내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홍규식 삼성전자 상무는 “최첨단 공법인 14나노 핀펫(FinFET) 공정을 적용한 제품으로 이전 모델 대비 성능은 30% 높이고 소비전력은 10% 줄였다”며 “시스템반도체 기술을 한단계 끌어올린 혁신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시스템반도체 역사를 살펴보면 미국 업체들의 독무대였다. 인텔이 1971년 세계 최초로 소형 컴퓨터용 CPU를 만든 이후 30년 넘는 세월 동안 IT업계를 지배했다. 스마트폰 시대에서도 퀄컴과 인텔이 시장을 이끌고 있지만 삼성전자도 2011년 2월부터 ‘엑시노스’ 브랜드를 선보이며 자체 기술력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이번 제품은 김기남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겸 시스템LSI사업부 사장의 뚝심이 만들어 낸 결과로 평가받는다. 삼성전자는 매년 조 단위의 영업이익을 내던 시스템LSI 사업부가 지난해 950억원의 이익을 내는데 그치자 소방수로 반도체를 총괄하던 김기남 사장을 긴급 투입해 시스템LSI 사업부
그는 개발진과 생활을 함께 하며 삼성전자 AP의 문제점으로 꼽힌 미흡한 설계 기술과 원칩 제조 등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했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가 올해 1조2000억원, 내년에는 2조2000억원 가량의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승훈 기자 / 이기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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