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크 리 교수가 자신이 개발한 질병진단 키트를 설명하고 있다 |
지난달 초 미국 버클리에 위치한 미국 UC버클리. 차를 타고 정문을 지나 5분 정도 언덕을 올라 도착한 곳은 세계 융합 연구의 메카로 불리는 ‘버클리센서&액츄에이터센터(BSAC).’ 이곳에서 나노·바이오 기술의 세계적 석학으로 불리는 루크 리 미국 UC버클리 생명공학과 교수(57)를 만났다. 그는 지난해 말(현지시간 12월 8일)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하면서 한국이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 ‘융합’을 꼽았다.
1989년 UC버클리 응용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리 교수는 1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39세에 교수로 임용됐다. 뒤늦게 연구자의 길을 걸었지만 임용 5년 만에 연구력을 인정받아 테뉴어(정년보장) 교수가 됐다. 지난 2011년에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를 진단할 수 있는 바이오칩을 개발하면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나노기술과 바이오 기술을 융합한 바이오칩 개발을 통해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가 수여하는 ‘윌리엄 모얼락상’을, 2010년에는 호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리 교수의 연구실이 있는 곳은 BSAC. 학과간 장벽을 없애기 위해 설립된 BSAC는 전기·전자·바이오·기계 공학 등 다양한 학과의 교수들이 한 연구실을 같이 쓰며 융합 연구를 진행하는 곳으로 나노·생명공학 등으로 연구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현재 BSAC에서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는 80여개. 한 프로젝트마다 서로 다른 학과의 교수들이 모여 연구개발(R&D)을 진행하고 있다. 리 교수도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스티븐 콜로니 교수와 물리화학을 가르치고 있는 제이 그로브 교수와 같은 연구실을 사용하고 있다. 리 교수는 “과거의 R&D가 한 분야에서 좁고 깊게 파서 성공했다면 이제는 넓고 깊게 파야 하는 시대가 왔다”며 “서로 다른 지식이 하나가 되는 작업을 위해 BSAC가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융합연구의 대표적인 연구소로 불리는 BSAC에서 연구를 하고 있지만 리 교수는 미국 역시 융합연구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많은 과학기술 선진국들이 수년 전부터 융합을 외치지만 학과 간 장벽이 여전히 견고하다는 것이다. 그는 “융합을 막는 걸림돌은 자신만이 전문가라는 생각”이라며 “한발 물러서는 ‘양보’ 없이는 융합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가 학과간 융합을 위해 꼽은 첫 번째 조건은 ‘교육’이었다. 리 교수는 “여전히 한국에서는 선행학습을 위한 과외·학원이 성행하고 있다”며 “암기식 교육으로 앞서가는 것은 더 이상 의미없는 시대가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교육이 학생들의 ‘질문’을 막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그가 18살이 되던 해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에 내가 타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예로 들었다.
그는 ‘적어도’ 공대끼리는 하루빨리 융합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과거와 똑같은 커리큘럼의 대학 학과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리 교수는 미국의 ‘하비머드 칼리지’를 예로 들었다. 입학정원 800여명에 불과한 작은 학교지만 하비머드 칼리지 졸업생들은 연봉 1~3위를 항상 기록한다. 그는 “하비머드 칼리지는 학생들에게 전공 구분 없이 다양한 과목을 가르친다”며 “이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항사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라고 말했다.
리 교수는 “미국과 영국 등 과학기술 선진국에서 융합연구는 여전히 시험 중”이라며 “역동력 있는 한국이 지금부터 융합 연구를 위한 제도를 마련한다면 다른 나라보다 앞서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버클리(미국) =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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