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1%대로 올라섰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해가 바뀌자마자 다시 0%대로 주저앉았다. 담뱃값 인상 효과의 상쇄로 ‘0%대 물가’ 복귀는 어느 정도 예견됐지만, 물가 둔화의 폭이 확대되는 등 좋지 않은 조짐이 감지된다. 지난 해 이후 저물가가 유가·원자재 등 공급측면에서의 가격하락이 주도했다면, 최근에는 소비둔화·수출감소 등에 따른 수요 측면에서의 가격하락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저유가 충격 장기화와 주력 업종의 공급과잉, 중국 경기둔화 등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에서 저물가에 따른 경제부담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공포’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셈이다.
2일 통계청에 따르면 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대비 0.8% 오르는 데 그치며 다시 0%대에 복귀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지난해 11월 1%, 12월 1.3%로 1%선을 넘었지만, 담뱃값 인상 효과 등이 사라지자 다시 떨어졌다. 농산물·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1.7%를 기록했다.
0%대 물가는 작년 1월부터 10월까지 지속됐다. 작년 1월과 올 1월의 물가상승률 또한 0.8%로 동일하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상황이 한층 더 심각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작년에는 유가하락이 물가둔화의 직접적인 요인이었지만, 올 1월은 유가하락의 영향이 어느 정도 상쇄됐음에도 불구하고 저물가가 지속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저유가로 시작된 물가둔화가 공업제품 전반으로 확대되는 흐름도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이 소비자물가를 집계하는 500개 품목 가운데서 작년 1월 물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품목은 118개였다. 올 1월에는 물가가 하락한 품목이 128개로 늘었다. 물가상승률이 0%인 품목 또한 같은 기간 42개에서 49개로 늘었다.
석유류 가격은 낙폭이 상대적으로 줄었다. 작년 1월 휘발유는 전년 동월대비 -20%가 하락했지만, 올 1월은 -7.9% 떨어지는 수준에 그쳤다. 같은 기간 등유는 -22.3%에서 -21.7%로, 자동차용 LPG는 -21%에서 -11.9%로 각각 하락폭이 축소됐다.
하지만 물가둔화의 폭은 전방위로 확대됐다. 가공식품은 작년 1월 2.9%가 상승했지만, 올 1월에는 0.9% 오르는 데 그쳤다. 섬유제품은 2.2%에서 0.8%, 출판물은 4%에서 1.1%, 의약품은 1.1%에서 0.6%으로 상승폭이 둔화됐다. 화장품은 3.5%에서 -0.9%로 가격이 떨어졌다.
그럼에도 올 1월 물가상승률이 작년 1월과 비슷한 수준을 보인 것은 농산물 가격의 상승 덕분이다. 1월 물가가 가장 많이 오른 상위 5개 품목은 양파(117.2%), 파(49.9%), 마늘(41%), 피망(37.7%), 양상추(34.9%)로 모두 농산물에 해당한다. 날씨에 따라 등락을 거듭하는 농산물 가격의 특성상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물가둔화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우선 공급 측면에서는 저유가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은행(WB)은 최근 내놓은 ‘원자재 시장 전망’ 1월호에서 공급과잉과 수요부진 지속에 따라 원유, 천연가스, 석탄 등 에너지 가격이 올해도 하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수요 측면에서도 조짐이 좋지 않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12월 소매판매 및 온라인쇼핑 동향’에 따르면 의복 판매는 전년대비 3.7%가 감소했다. 가전제품·컴퓨터·통신기기(-2.2%), 신발·가방(-0.6%) 등도 판매가 줄었다. 판매부진이 이어지면서 유통업체 등은 각종 세일행사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백화점에서 여성 구두는 작년 평균 35만원 내외였던 것이 올해는 평균 30만원대에 팔리고 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올 겨울에는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가죽부츠나 털부츠 등 상품이 시장에서 인기를 끌지 못한 편”이라며 “때문에 여성 구두 상품군의 가격도 상대적으로 내려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에 유가하락에서 시작된 물가하락이 자칫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디플레이션은 흔히 기대인플레이션(소비자들의 물가전망)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물가하락이 전 품목에 걸쳐 나타날 때로 정의된다. 물가하락 품목은 확대되고 있으며, 기대인플레이션 또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기대인플레이션율은 2014년 1월 2.9%에서 2015년 1월에는 2.6%로, 올 1월에는 2.5%로 떨어졌다.
여기에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이 1월들어 전년 동월 대비 18.5% 감소하는 등 한국 경제는 난관에 부딪힌 상황이다. 중국 경기둔화, 산유국과 신흥국의 금융시장 불안 등 대외여건 또한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겹겹이 쌓인 악재에 정부는 재정 조기집행 등 각종 부양책을 고민하고 있지만, 현재 경기상황에 어느 정도 효과를 보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에 한은이 기준금리를 한 차례 더 인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다만 자본유출, 가계부채 문제 등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 시점을 디플레이션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경제의 힘이 떨어지면
[최승진 기자 / 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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