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국으로 인공지능(AI)이 주목을 받기 전 ‘AI’에 대해 인터넷에서 검색해봤더니 ‘조류인플루엔자’가 뜨더군요”
지난 8일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주최로 열린 컨퍼런스에 참석한 딜로이트 정성일 전무는 이렇게 말했다. 인공지능에 대한 우리나라 관심의 척도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한국의 인공지능 연구는 선진국에 비교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수준이 뒤처진 것은 물론이고 기반연구 조차 부족하다. 단기 성과를 요구하는 연구개발(R&D) 문화와 시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아이템에 치중한 결과이다. 여전히 제조업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업 문화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래창조과학부와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가 지난해 12월 국내 인공지능 R&D 연구실태를 조사한 결과 올해 IITP과제에 참여한 119개 연구소·대학 소속 연구팀과 업체 중 인공지능 R&D를 하고 있는 곳은 겨우 39곳에 불과했다. 30여곳은 KAIST, 서울대, 고려대 등 주요 대학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정부출연연구기관이었다. 9곳은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었다. 이중 민간투자를 병행하는 곳은 8곳, 자체 예산을 보유한 곳은 5곳에 불과했다. 연구 전문인력도 32곳은 50명 미만이었다. 41%인 16곳은 담당 연구원이 10명도 안된다.
연구는 단기적 성과나 시장수요가 많은 쪽에 치중돼 있다. 음성인식, 자연어 처리 등 언어인지와 사진·동영상 속 대상과 행동을 파악하는 분야 정도다. 인지컴퓨팅, 슈퍼컴퓨터 등 장기 연구가 필요한 부분에 도전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미 바둑 온라인 게임 시장이 형성돼 있지만 구글은 알파고를 통해 검색엔진, 개인비서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음을 인지했기 때문에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같은 연구는 불가능에 가깝다.
국내에서는 네이버, 카카오, SK플래닛, 엔씨소프트 등이 음성인식과 딥러닝 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제서야 관심을 갖기 시작한 수준이다. 지난해 초 가정용 로봇 개발 벤처기업인 지보(JIBO)에 200억원을 투자했고 스마트카 전자장비 사업에 진출하면서 인공지능 기술개발을 예고했다. 경쟁사인 글로벌 기업과 연구실력을 비교할 수 조차 없는 수준이다.
김석원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책임연구원은 “90년대 대학에서 인공지능을 연구했더라도 졸업후 기업, 학계로 옮겨간후에는 모두 다른 일을 하고 있다”며 “기업의 주요 관심분야가 아니고, 주요 국책 연구과제에도 벗어나 있다보니 관심이 없었던 것”이라며 원인을 설명했다.
당장의 시류에 휩쓸리는 연구풍토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김 연구원은 “2000년대초반 인터넷 등이 뜨고 있을때 인공지능 연구하겠다고 주장했다면 따돌림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야 인공지능에 관심을 갖지만 그나마도 빅데이터 분야에 끼워넣어 연구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서정연 서강대 컴퓨터학과 교수는 “삼성과 엘지 등은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기업”이라며 “소프트웨어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구글, IBM처럼 수평적인 조직문화, 장기적인 R&D 도입 등 제조업 문화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준연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소프트웨어생태계
[원호섭 기자 / 이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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