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경기불씨를 살리기 위해 민간기업이 인프라 투자에 나설때 소요되는 재원을 제로금리에 빌려주는 고강도 경기대책을 꺼내들었다. 도로·철도·보육시설 확충에 이르기까지 기업들의 전방위 인프라 투자를 유도, 최근 불거지고 있는 아베노믹스 위기론을 불식시키겠다는 복안이다. 14일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3조엔(31조원)규모의 인프라 투자자금을 조달, 빠르면 올 가을께 민간기업에 제로금리나 다름없는 연 0.01%에 인프라 자금을 대출해주기로 했다. 지난 1월말 일본은행(BOJ)이 전격적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 장기채권인 일본 10년 만기 국채 금리까지 마이너스로 떨어진 점을 감안하면 필요한 만큼 국채를 발행해 제로 금리로 인프라 투자자금을 대출해줘도 무리가 없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이날 10년 만기 일본 국채금리는 -0.09%까지 떨어진 상태다. 이와 관련해 아베정권 내부에서는 아예 마이너스 금리대출을 통해 인프라 투자 효과를 극대화하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제로금리 대출은 공적 금융기관인 일본정책금융공사와 국제협력은행이 맡게 된다. 이들 금융기관은 정부가 보증하는 재정투·융자채권을 2~3조엔 가량 발행, 민간기업에사실상 제로 금리 대출에 나설 방침이다. 이를 위해 아베 정권은 공적 금융기관이 대출 금리를 0.1% 밑으로 내리지 못하도록 한 규정 폐지에 나설 예정이다. 일본내 은행들의 우량기업 장기대출 기준금리인 장기 프라임 레이트가 지난달 말 현재 연 0.95%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제로금리 대출은 인프라 투자를 촉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지난해 개통한 도쿄-가나자와(이시가와현) 호쿠리쿠 신칸센 연장사업이나 하네다공항에서 도쿄도심을 연결하는 도로·철도망 정비사업 등이 유력한 지원대상이다. 제로 금리 대출이 진행되면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하네다공항 인프라 정비도 빨라질 전망이다. 인프라 투자 확대를 통해 지난해 호쿠리쿠와 올해 4월 홋카이도 신칸센이 연장된 이후 관광증대 등 지역경제를 살리는 효과까지 나타나고 있는 만큼 제로 금리 인프라 대출을 불쏘시개로 활력이 떨어지고 있는 아베노믹스 회생을 노린다는 전략이다. 인프라 대출 대상은 철도·도로뿐만 아니라 저출산·고령화 문제 완화를 위한 보육·노인간호 시설 확충까지 광범위하다.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의미하는 ‘1억 총활약(50년 후에도 인구 1억명을 유지하고 경제성장·육아지원·안정된 사회보장 실현을 목표로 하는아베 총리 정책)’을 정권 최대 목표 중 하나로 삼고 있는 만큼 보육·간호 시설 확충 지원을 통해 고령화 문제와 경기회복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 정부가 제로 금리대출이라는 승부수를 띄운 것은 아베노믹스의 의도와는 달리 지난달 이후 엔화강세 기조가 심화되는 엔다카(円高)추세때문에 ‘엔고불황’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노믹스 위기론이 팽배해지면 자기실현적 효과로 가뜩이나 살아나지 않고 있는 소비심리가 위축돼 디플레 탈출이 요원해질 수 있는 만큼 사전에 가동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진단이다. 아베총리가 올해 예산중 공공사업과 관련된 예산 80%(100조원)을
상반기에 조기집행하겠다고 예고했기 때문에 하반기에는 제로 금리 인프라 대출로 투자 공백을 메우겠다는 것이다. 다만 시장일각에서는 마이너스 금리시행으로 금융시장이 혼란을 겪고 있는데 정부차원에서 제로금리로 민간기업대출에 나설 경우 시장왜곡이 더 커질 것이라는 걱정도 제기되고 있다.
[도쿄 = 황형규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