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해운업계에 자금 지원해주면 전부 빚 갚는 데 쓰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채권단 고위 관계자 A씨)
“지난 5년간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뼈를 깎는 자구노력으로 수 조원 넘게 확보했습니다. 더 이상 뭘 해야 합니까.” (해운업계 고위 관계자 B씨)
최근 생사의 기로에 선 두 국적 해운사를 두고 채권단과 해운업계의 시각은 극명하게 갈린다. 2010년 해운업 불황이 시작된 이후 업황은 바닥을 모르게 떨어지고 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할 수 없다는 채권단 입장도, 팔 것 다 팔았는데 더 이상 뭘 할 수 있느냐는 해운업계 항변도 모두 틀린 말은 아니다. 국내에선 그나마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 지금까지 버텼지만 이미 이 회사 규모의 해외 선사들은 일찌감치 무너졌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제일 걱정되는 회사가 현대상선”이라고 언급하긴 했지만 이 회사 뿐만이 아니다. 국내 업계 1위인 한진해운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게다가 올해부턴 아시아 역내 과다경쟁으로 국내 중소선사까지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될 전망이다.
현대상선의 체력은 완전히 바닥난 상태다. 지난해 매출액 5조7685억원을 기록했지만 금융 비용을 제외한 순수 운영자금으로 지출된 비용만 5조7855억원이었다. 여기엔 매년 2조원씩 지불하는 거액의 용선료도 포함돼있다. 기타 비용까지 합쳐 지난해 현대상선 영업손익은 2535억원에 달했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2011년 이후 지속된데다, 앞으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2011년 이후 현대상선 영업손익은 3574억원(2011년), 5096억원(2012년), 3627억원(2013년), 2350억원(2014년)이다.
수 년간 수천억원대 적자가 계속되다보니 재무상태는 꼬일만큼 꼬여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금융 부채는 4조8000억원까지 늘어났고, 이 중 사채는 1조8000억원, 선박금융 리스 부채는 1조8000억원에 달한다. 내년까지 만기 도래하는 사채 8100억원은 연체한 상태다. 현대상선은 결국 3월말 경영권을 채권단에게 넘기는 자율협약 상태에 들어갔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채권자가 산업은행 등 금융권 뿐만 아니라 사채권자, 선주들까지 다양하게 분포돼있는 상황”이라며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공평한 손실분담이 전제돼지 않으면 경영정상화는 요원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현대상선의 금융부채 4조8000억원 중 산업은행과 시중은행으로 구성된 채권단 부채는 1조2000억원이다. 이 금액은 6월말까지 만기를 연장했지만 신협과 농협 등으로 구성된 사채권자는 만기 연장을 반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매년 거액이 지불되는 용선료 인하에 성공하더라고 사채권자 입장이 변하지 않는 이상 오는 7월 현대상선의 법정관리 신청은 불가피하다.
지난해 기준 부채 규모가 6조6000억원에 달한 한진해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올해 은행 차입금과 회사채, 선박금융 등 총 1조 5000억원 규모 차입금 만기가 돌아온다. 이 중 한진해운은 8000억원 자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이 지경까지 데는 세계경기 불황으로 무역량이 줄어든 것이 직격탄 역할을 했다. 특히 중국발 수출침체가 전세계 해운업계에 미친 영향이 컸다. 두 회사가 주력인 컨테이너의 경우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세계 물동량 증가율이 5%, 4.2%, 3.5%로 꾸준히 줄었다.
설상가상으로 머스크 등 글로벌 선사들을 중심으로 원가절감 등의 이유로 1만 9000TEU급 초대형 선박을 투입시키며 공급과잉 현상까지 벌어졌다. 매출액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운임료는 아시아-유럽 콘테이너 운임을 기준으로 1TEU당 2010년 2500달러에서 올해 250달러까지 떨어졌다. 그 동안 초대형선박 발주 여력이 없이 제자리걸음을 한 현대상선 입장에선 그야말로 배를 띄우는 것 자체가 손해보는 장사가 된 셈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해운업계의 치킨게임을 이끌었던 세계 최대 해운사 머스크마저도 지난해 말부터 대형선박 발주를 취소하고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갔다”며 “이제부터 관건은 얼마나 내실있는 경영을 하느냐인데 안타깝게도 국내 해운사들은 재기의 발판을 모두 잃었다”고 분석했다. 업황부진에다 경쟁력마저 글로벌 해운사들에 비해
또다른 업계 관계자 역시 “컨테이너선의 경우 당기거래 위주 계약으로 컨테이너당 다양한 선주를 상대해야 한다”며 “벌크선 중심의 팬오션 등은 장기계약이라 그나마 부침이 덜하지만 컨테이너 위주인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글로벌 경기 둔화시 기업 부담 가중시키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정석우 기자 / 윤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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