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해운업계 불황이 8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상황에서 쓰러져간 글로벌 선사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뿐만이 아니다. 중국의 차이나쉬핑컨테이너라인(CSCL)와 싱가포르 선사 APL은 경영난을 버티지 못하고 각각 중국 코스코(COSCO)와 프랑스 CMA-CGM에 흡수합병됐다. 전 세계 중소선사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앞날은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해운사들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바로 매년 수조원 가량 고정적으로 빠져나가는 살인적인 용선료 때문이다. 현재 시세보다 5배나 많이 지불돼는 용선료로 인해 해운업황이 극적으로 살아나더라도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경영정상화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배 빌리는 값이 비쌀때 계약을 했지만 이후 운임료가 떨어지면서 용선료를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됐기 때문이다.
이에 채권단이 자율협약을 신청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게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 역시 “용선료 인하 협상 만큼은 책임지고 끝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용선료를 줄여야만 인수합병 논의도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해운사가 화물을 실어나르기 위해 배를 이용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해운사가 직접 선박을 구입해 항로에 투입시키는 방식으로 이 배를 ‘사선’이라고 한다. 사선으로 배를 운영하기 위해선 해운사는 자금 사정이 좋아야 하고, 배가 쉬지 않고 바다에 띄우도록 물량도 끊임없이 확보해야 한다. 사선은 해운사의 자산이기 때문에 자금난에 빠질 경우 선박 매각으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비해 용선은 다른 선주들에게 장기 혹은 단기로 빌려 영업에 나서는 배를 말한다. 자금이 풍부하지 않더라도 영업력만 뛰어나다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비싼 용선료를 내야하는 상황에서 해운사가 받을 수 있는 운임료가 바닥이라면 배를 띄우는 것 자체가 손해다.
이런 상황이 바로 현재 글로벌 해운업계의 모습이고 가장 타격을 받은 해운사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다. 한진해운은 현재 151척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 중 용선이 91척, 현대상선 역시 125척 중 85척이 용선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용선 대부분은 장기용선 계약을 맺은 배들로, 해운업이 호황이던 2000년대 중후반에 빌린 것”이라며 “그러다보니 비싼 값에 배를 빌려 매년 1조~2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용선료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5년 기준으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각각 1조 146억원, 1조 8793억원을 용선료로 지불했다. 두 회사의 매출액이 각각 7조 7355억원, 5조 7685억원이었단 점을 감안하면 남은 돈으로 직원 월급과 시설 유지를 하면서 회사를 운영해 이익을 남기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수 년째 적자를 기록한 이유가 여기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 ‘용선료의 덫’에 빠진 것을 경영 실패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해운업 역사를 1990년대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이 두 회사에게만 화살을 돌릴 수는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IMF 외환위기 때 금융당국으로부터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유지하라는 권고를 받았다”며 “이는 용선 없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기준”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결과적으로 두 해운사는 보유 선박을 대부분 팔았는데 문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해운업계가 호황기를 맞았다는 것”이라며 “정부의 근시안적인 지침이 현재의 만성적자 구조에 일조한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중국발 무역물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2000년대 중후반 글로벌 선사들은 그야말로 돈을 쓸어 담았다. 그러나 남아있는 선박이 별로 없었던 상황에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할 수 있는 일은 배를 빌리는 것이었다. 당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처럼 배를 빌리려는 선사들이 많아 용선료는 급등했다.
일례로 현대상선의 경우 장기용선계약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에 집중적으로 몰려있는데, 당시 1만 3000TEU급 선박은 하루 5만달러, 1만 TEU급 선박은 하루에 4만 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현재 이 정도 규모의 선박은 하루에 1만 달러도 채 안된다.
재계 관계자는 “장기 용선계약은 통상적으로 10년 이상 임대하는 것이 관례”라며 “지금 상황이 계속된다면 적어도 2019년까진 살인적인 용선료를 부담해야 하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5조~6조원에 달하는 부채에 대해선 채권자들의 아량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외국 선주들에게 용선료 인하 약속을 받아오는 것 뿐이다.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현대상선의 경우 지난 2월 초부터 그리스 다나오스, 영국 조디악 등 22개 선주들과 두 차례에 걸쳐 용선료 인하 협의를 진행해왔고, 절반이 넘는 선주들에게 긍정적인 대답을 듣고 세부적인 조율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상선은 2조원에 달하는 용선료에서 3000억원 정도만 줄여도 적자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 채권단 역시 이를 감안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당초 경영정상화를 위한 자구노력 일정상 용선료 협상을 이달까지 마무리 짓겠다고 했다”며 “긍정적인 분위기이고 조만간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상선은 용선료 20~30%가량 깎는 것을 목표로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반면 한진해운은 상황이 좋지 않다. 용선료 인하 협상을 해오고 있긴 하지만 아직 이렇다할 방향 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2014년 17척, 2015년 12척의 용선을 반납하는 등 용선을 지속적으로 줄여 왔다. 하지만 여전히 1조원가량의 용선료가 빠져나가고 있다.
한진해운 채권단 고위관계자는 “용선료 협상은 계속 해오고 있지만 원래 잘 안되는 협상”이라며 암울한 분위기를 전했다. 협상을 통해 용선료를 낮추지 않으면 채권단이나 사채권자의 양보도 얻을 수 없다. 채권단은 용선료 협상이나 사채권자의 동의를 전제로 지원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용선
[윤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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