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업계의 신화’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법조계 전반에 걸친 로비 의혹에 무릎을 꿇었다. 정대표가 전격적으로 경영에서 물러나고 새 수장이 휘청이는 네이처리퍼블릭호의 경영정상화에 나선다.
21일 네이처리퍼블릭은 정 대표가 등기이사직에서 사퇴하면서 경영 전반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신임 대표이사에는 정 대표와 ‘더페이스샵’ 시절부터 함께 한 김창호(58) 전무가 선임됐다.
27세의 나이에 남대문시장 화장품 대리점으로 시작해 국내 간판 화장품브랜드샵 ‘더페이스샵’‘네이처리퍼블릭’까지 성공시킨 정 대표의 성공신화는 이로써 일단 막을 내리게 됐다. 해외원정 도박· 법조 로비 혐의로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 가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정대표의 경영복귀는 사실상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향후 계획에 대해 네이처리퍼블릭 측은 “신임 대표를 중심으로 경영정상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급선무”라면서 “누구보다 회사 상황을 잘 아는 대표이사가 선임된만큼 그동안 주춤했던 해외시장에서 성과를 내고 기업공개도 상황을 봐서 재추진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김 신임 대표이사가 정 대표와 더페이스샵 시절부터 함께 해온 인물이라는 점에서 실제로는 정 대표가 뒤에서 사업 전반에 관여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여전히 정 대표는 전체 회사 지분 70% 이상을 갖고 있는 최대주주이기 때문이다.
오너리스크로 네이처리퍼블릭의 올해 1분기 실적은 부진했다.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77.6% 감소한 19억 원, 매출도 전년(757억원) 대비 감소한 714억 원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국내 로드숍 순위를 분석한 결과 네이처리퍼블릭은 7위로 밀려났다.
이같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네이처리퍼블릭이 치열한 화장품 시장경쟁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네이처리퍼블릭은 지난해 한국화장품의 ‘잇츠스킨’에 밀려 로드샵 화장품 브랜드 5위를 차지했다. 잇츠스킨이 ‘스킨푸드’ 신화인 유근직 대표를 영입하며 2014년 매출 2400억원에서 작년 3000억원대로 껑충 뛸 때 상대적으로 네이처리퍼블릭의 성장세는 더뎠다. 2014년 매출 2552억원에서 지난해 2800억원으로 소폭 성장에 그쳤다.
네이처리퍼블릭은 이에대해 “주 고객군이 10~20대, 중국인 관광객이다보니, 사회적 이슈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해 매출이 5% 정도 빠지는 수준으로 선방했다”고 밝혔다. 사건이 터지기 전인 지난해 말 778개였던 매장수는 현재 820개로 되레 늘어난 상태다.
반면, 해외 매장오픈은 사실상 올스톱 상태다. 미국과 중국을 해외 핵심 거점으로 삼고 진출하려던 네이처리퍼블릭은 최근 번번히 미국·중국의 대형 매장 오픈이 무산되며 어려움을 겪고있다. 올해 네이처리퍼블릭은 누적 기준으로 해외매장 150개를 확보한다는 계획이었지만 120호점 오픈에 만족해야하는 실정이다. 해외 투자자들과 현지 파트너들이 한국에서 심상치 않게 번져가는 사태를 가볍지 않게 봤기 때문. 네이처리퍼블릭 관계자는 “작년부터 미국과 중국을 시작으로 활발하게 전개하려했던 해외사업 차질이 제일 크다”고 털어놓으면서 “올해 사건이 터진 후 제대로 된 해외매장 오픈을 거의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상황이 심각하다. 지난해 하반기 미국 4대 쇼핑몰그룹인 웨스트필드(Westfield)와 사이먼(Simon), GGP, 마세리치(macerich) 등을 집중 공략해서 대대적으로 매장을 오픈할 계획이었지만, 차질을 빚고 있다. 일례로, 마세리치그룹의 뉴욕 퀸즈센터몰은 입점이 보류돼 6개월 이상 오픈이 지연됐다가 최근에야 어렵사리 기초 공사를 시작한 정도다.
올해로 예정됐던 기업공개(IPO)도 결국 좌절됐다. 기업공개를 통해 회사의 몸집을 불리려던 정 대표의 ‘제2의 페이스샵’ 꿈이 무너진 것. 정 대표는 지난5월까지만 해도 6월 출소 후 기업공개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나 정·관계 대상 로비의혹이 전방위로 확대되면서 기업이미지에 치명타를 입어 어쩔수없이 IPO를 포기했다.
네이처리퍼블릭은 2009년 설립된 ‘자연주의 화장품’ 업체로 정 대표가 저가 로드샵 화장품 브랜드 ‘더페이스샵’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켜 LG생활건강에 매각한 후 선보인 두번째
[박인혜 기자 / 박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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