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요? 꽃농사를 그만 두고 싶어도 빚 때문에 발목 잡힌 심정을 아십니까. 농민들이 무슨 죄를 졌다고 야반도주까지 해야 합니까.”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뜨거운 햇볕이 내리 쬐는 아스팔트 위에 1000여명의 화훼농가 농민들이 운집했다. ‘대책없는 김영란 법 반대’라는 문구가 새겨진 검은 띠는 꼭 조화로 장식된 상갓집을 연상케 했다. 오는 9월 시행 예정인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반대하기 위해 경남 김해 화훼단지에서 아침 일찍 상경했다는 신현상 씨(60)는 연방 한숨을 쉬었다. 지난 2001년부터 시작한 꽃 농사로 다행히 슬하에 둔 남매의 대학 학비를 해결했지만 신 씨의 수중에는 5000만원에 달하는 빚이 남아 있다. 4년 전부터 화훼 수입이 허용되면서 김해 일대의 꽃 농가가 직격탄을 맞았다. 가뜩이나 어려운 화훼 산업에 김영란법마저 시행이 예정되면서 이미 사업철수를 결정한 농민들이 한 둘이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주변에 농사짓던 것을 갈아엎고 야반도주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며 “그만두고 싶어도 당장 노후 대책이 없다. 앞날이 캄캄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여의도에 운집한 화훼농민들은 하반기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극도의 분노와 실망감을 표출했다. 김영란법 시행령은 선물과 경조사비에 대한 가액 기준을 각각 5만원과 10만원으로 제한했다. 경·조사비는 부조금을 대신할 수 있는 선물로 10만원까지 주고받을 수 있지만 한도가 부조금을 합한 금액으로 책정돼 화훼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특히 선물, 경·조사용 화환이 10~30만원으로 거래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선물 5만원과 경조사비 10만원으로 지정된 가액은 현실과 동떨어져있다는 지적이다.
화훼 농민들은 김영란 법에 맞춰 상품을 내 놓으려면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수입산 꽃 사용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기 안산에서 화환 제작 업체를 운영 중인 김 모씨는 “재활용 꽃이나 값싼 수입산 꽃을 사용하게 되면 꽃 재배 농가들도 죽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진다”고 염려했다.
이날 집회에서 임영호 한국화훼협회장은 “대통령께서도 지난 언론사 간담회에서 김영란 법이 우리 경제를 너무 위축시키지 않을까 우려를 표하셨다”며 “영세 중소 화훼 농업인들의 현실을 감안해 국회 차원에서 법 개정을 다시 한 번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집회에는 성난 농심(農心)을 달래기 위한 여야 의원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김도읍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제 아버지도 부산 강서에서 꽃 농사를 지어 저를 키우셨다”며 “현장에서 일하시는 것도 버거운데 이렇게 올라와서 집회 도록 만든 점에 대해 사죄의 말씀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앞으로 국회 정무위 차원에서 김영란 법이 심도 깊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며 “당 수석부대표로서 여러분들의 입장을 당에 충분히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집회 막바지에는 꽃상여 행진이 이어졌다. 꽃으로 만든 상여를 든 화훼 농민들은 장송곡을 부르는 등 화훼 산업에 드리워진 암울한 미래에 극도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화훼업계에 따르면 2003년 ‘공무원행
[유준호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