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설마 했던 일이 벌어졌다. 방송통신 미래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심사다.”
공정거래위원회가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M&A)을 불허하면서 글로벌 수준의 미디어 플랫폼 사업자로 거듭나겠다는 SK텔레콤의 구상에 제동이 걸렸다. 인수 합병만을 기다리며 7개월간 구상해온 투자계획도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CJ헬로비전 역시 기업 경영을 하지 못하도록 ‘손발을 꽁꽁 묶어놓은 조치’라며 공정위 심사 결과에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SK텔레콤은 5일 성명을 내고 “공정위의 이번 결정을 매우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인수합병 이후 대규모 콘텐츠, 네트워크 투자 등을 통해 유료방송 시장 도약에 일조하고자 했던 계획이 좌절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CJ헬로비전 역시 “케이블 업계의 미래를 생각할 때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최악’의 심사 결과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입장을 발표했다.
두 회사는 심사보고서가 발송된 전날까지만 해도 이 정도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다. CJ헬로비전 관계자는 “임원들 표정이 좋지 않아 안좋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아예 대놓고 불허가 나올지 몰랐다”며 “7개월간 아무것도 못하고 기다렸는데 이런 결과가 나와 회사가 매우 참담하다”고 말했다.
CJ헬로비전 매각 대금으로 콘텐츠 산업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려던 CJ그룹 역시 충격에 빠졌다. CJ그룹 관계자는 “매각될 것으로 생각하고 사업을 준비했는데 이제 팔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그룹도 콘텐츠 전략을 다시 세워야 해 충격에 휩싸였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이번 인수합병 불허의 가장 큰 근거로 유료방송 분야 독점 우려를 꼽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에 대해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측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CJ헬로비전 측은 “유료방송시장은 1위인 KT(29.4%)가 2위 CJ헬로비전(14.8%) 보다 2배가 넘는 압도적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양사가 합병해도 유료방송 가입자는 KT에 이은 2위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김성철 고려대 교수는 “공정위는 경쟁제한성뿐만 아니라 소비자 후생도 봐야하는데, 이번 인수합병을 막음으로써 소비자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박탈하고 오히려 경쟁사를 도와주게 됐다”고 지적했다.
방송 통신 시장 상황을 외면한 판단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경쟁력을 잃어가는 케이블 산업의 출구전략이 가로막히게 됐다는 우려다. SK브로드밴드측은 “지금 유료방송은 투자를 독려하여 새 길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케이블 산업이 고사위기 직전에 있다. 이러한 방송 산업의 현실을 심사에 고려했는지 의문”이라면서 “앞으로 유료방송 산업에서 어떤 기업들이 외부와 손을 잡고 재활을 도모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공정위 심사결과가 정치 등 외부적 요소에 휘둘렸다는 시선도 제기됐다. 김성철 교수는 “심사 과정에서 경쟁사들의 주장, 정치권, 시민단체의 주장이 섞이면서 시장 경제의 본질을 벗어난 논쟁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본질을 벗어난 외적인 문제를 고려해서 심사가 흘러간 것 같은 아쉬움이 든다”고 했다.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은 2주간 공정위 심사보고서에 성실히 소명하겠다는 입장이다. SK텔레콤은 “전원회의에서 뒤짚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면서 “공정위로부터 전달받은 심사보고서를 면밀히 검토중이며, 여러가지 후속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충격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온종일 임원 회의가 이어지고 있다”며 “공정위 심사보고서에 대한 의견을 제출할지, 철회할지, 미래부 심사까지 완료할지, 소송을 진행할지 등 여러 가지 방안을 두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고 전했다.
공정위 불허 결정이 알려진 이날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두 회사 주가는 동반 하락했다. CJ헬로비전은 전날보다 1600원(13.3%) 하락한 1만400원에 장을 마쳤다. SK텔레콤도 2500원(1.1%) 내린 21만6500원을 기록했다.
[서찬동 기자 / 이선희 기자 / 김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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