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로봇 산업의 판도가 요동치고 있다.
미국 구글이 유력 로봇 전문기업인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해 자회사로 만들더니 일본 도요타가 다시 이를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이미 세계 제조업용 로봇시장을 장악해온 중국은 최첨단 로봇시장을 넘보며 핵심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공격적인 인수합병(M&A)에 나서고 있다. 그 뒤에는 로봇을 활용한 제조업 혁신을 겨냥한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뒷받침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이들과 경쟁할 원천기술도, 정부의 지원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로봇과 인공지능(AI) 시대의 본격 개막을 앞두고 로봇산업의 차세대 시장 선점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로봇산업 지각변동은 도요타의 실리콘밸리 소재 연구소인 ‘도요타 리서치 인스티튜트(TRI)’가 구글로부터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하겠다고 나서면서 촉발됐다. TRI는 이어 구글이 보유한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인 ‘샤프트(SHAFT)’ 인수에도 나섰다.
보스톤다이내믹스는 네발로 걷는 로봇인 ‘빅독’을 개발해 유명세를 탄 기업이다. 4족, 2족 보행 로봇과 관련된 세계 최고 기술력을 자랑한다. 샤프트는 2013년 12월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로봇공학챌린지(DRC)’에서 돋보였다. 전 세계에서 로봇 분야의 내노라하는 연구팀들이 이 대회에서 샤프트의 로봇은 엄청난 파워와 정교한 움직임을 과시했다. 그 대회를 위해 일본의 휴머노이드 로봇 전문가들이 만든 작은 기업이었지만 일본의 기술력을 과시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두 회사는 모두 2013년 가을, 구글에 인수됐다. 그해 여름 기자가 앤디 루빈 구글부사장의 안내로 구글 본사에서 약 10마일 떨어진 독립연구소를 방문하여 구글의 로봇 프로젝트 구상을 나눈 직후였다. 구글은 같은 해 전 세계 유명 로봇 기업 8개를 인수했다.
많은 추측이 이어졌다. 구글이 창고를 하나 만들어 놓은 뒤 전 세계로봇을 다 구입하여 분해 연구하고 레고 조립하듯 로봇을 끼워 맞추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무인자동차에 활용하려는 것인지, 아마존과 같은 택배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지, 아무도 구글의 속내를 알지 못했다.
구글이 바라본 미래에 반드시 ’로봇‘이 중심에 있는 것은 분명했다. 많은 경쟁 기업들이 이 때문에 긴장하고 있다. 빠르면 5년 내에 구글이 아이폰과 같이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무언가’를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와 우려가 커져갔다. 이때까지만해도 글로벌 로봇산업은 미국의 독무대가 될 것이라는데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상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구글에 인수되기 전부터 험난한 지형에서 인간을 도울 수 있는 로봇이나 ‘아틀라스’처럼 두발로 걷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해온 하드웨어기반 기업이다. 반면 구글은 전통적으로 소프트웨어에 기반을 둔 IT 기업으로 보스톤다이내믹스와는 기업문화와 접근방식이 완전히 다른 다국적 기업이다.
초기부터 두 기업은 시너지 효과를 내기보다 하드웨어의 보수성과 소프드웨어의 진보성간 충돌이 곳곳에서 빚어졌다. 이같은 시각 차이는 로봇 사업을 주도했던 앤디 루빈 구글 부사장이 퇴사하면서 표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로봇에 거는 기대가 달랐던 것이다. 이후 잦은 임원 교체와 갈등으로 구글과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결별의 수순을 밟았다. 로봇 기술이 실제 생활에 활용 되려면 10년 이상의 꾸준한 투자가 필요한 것도 걸림돌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이번엔 제조업의 글로벌 강자인 도요타가 노리고 나섰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도요타의 품에 안긴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이동체가 탄생하는 ‘신의 한수’가 될 수도 있다.
2015년 기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동차를 판매한 도요타는 이미 2000년부터 로봇 개발을 시작했다. 혼다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자동차 회사들은 초고령화 사회에서 예상되는 노약자의 자동차 구입 및 운전기피에 따른 대체 기술 혹은 상품으로 로봇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고령층의 구매력을 자율주행차, 로봇도우미 등으로 되살리려 하는 것이다. 혼다는 세계 최초의 휴머노이드 로봇인 ‘아시모’를 개발하는데 수천억원의 돈을 투자했다. 도요타는 우주인과 함께 생활하는 로봇 ‘키로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로봇 기술은 기계, 전자, 재료 등 각종 분야의 최신 기술이 접목돼 있다. 자동차에 사용되는 기술이 수십년 동안의 검증을 거쳐 신뢰성을 확보한 것이기 때문에 로봇은 미래의 자동차에 적용될 기술의 테스트 베드가 될 수 있다. 도요타가 과거 키로보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유는 미래의 자동차가 스스로 생각하고 인간과 상호작용을 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KAIST가 개발한 휴보도 마찬가지다. 휴보에 적용된 위치 제어기술, 다중모터 제어기술은 인공위성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천체관측용 광학식 추적장치’ 개발에 적용됐다.
도요타는 보스턴다이내믹스와 샤프트의 인수로 혼다사에 밀려왔던 로봇기술을 단숨에 따라잡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구글에 뒤져있다고 평가받는 무인자동차 기술을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도요타는 이미 지난해 9월, 무인자동차 등에 5000만 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힌 뒤 이를 10억 달러로 늘렸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이어 보스톤, 미시간에 TRI를 설립한 이유도 로봇, AI 기술 인재를 영입해 빠르게 기술을 흡수하고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의도였다.
거친 환경에서도 로봇이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 기술이 도요타의 자동차 기술과 결합한다면 어떻게 될까.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빅독은 미끄러운 빙판길에서도, 자갈밭에서도 이동이 가능하다. 옆에서 사람이 발로 차도 순식간에 균형을 잡을 수 있다. 도요타의 무인자동차가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기술을 흡수한다면 그들이 원했던 “모든 사람들이 운전 가능한 AI 개발”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다.
구글이 보스턴다이내믹스와 샤프트를 포기했다고 해서 로봇 개발에서 발을 떼는 것은 아니다. 구글은 사무실 등에서 인간을 돕는 로봇, 우편배달이나 창고 정리, 노인 돌봄 로봇 등 일상 생활에 바로 적용이 가능한 보다 ‘소프트’한 로봇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구글의 3D 모바일 기기 개발 사업인 ‘탱고 프로젝트’에서 보듯이 증강현실, VR, 텔레 프레젠스 등 로봇의 모빌리티와 기존 IT 플렛폼 및 빅데이터 등과 연계된 서비스를 개발하는데 주력 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 주목해야할 곳은 중국이다. 무서운 속도로 기술 발전을 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2015년 세계로봇대회(WRC)’가 개최됐다. 제1회 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규모는 물론 초청자와 참석자 면모에서 국제적 수준으로 치러진 대규모 전시 및 학술 발표, 토론회였다. 세계에서 개발된 로봇은 물론 중국에서 한창 연구개발(R&D)이 진행 중인 로봇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한가지 특이했던 점은 리위안차오 부주석이 개막식을 직접 주재하고 전시장을 둘러보는 등 중국공업정보화부, 베이징 시정부, 중국과학기술협회 등 중국 정부가 공동 개최했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가 WRC를 개최한 것은 향후 로봇 분야에 대대적인 투자를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전시장에는 수많은 중국 로봇기업들이 저마다 산업용 로봇 뿐 아니라 모터, 제어기, 감속기 등의 국산화 부품들을 다양하게 출품했다. 전시장에서 느끼는 열기는 중국의 ‘로봇 굴기’라는 화려함을 넘어 로봇 학자로서 두려움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중국 정부가 ‘제조중국 2025’를 표방하며 로봇산업 인수 의지를 천명하자 민간기업들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가전업체 ‘메이디’는 독일의 대표적 로봇업체인 ‘쿠카’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쿠카는 산업용 로봇 기술에 있어서 세계 최고 기술력을 자랑한다. 메이디는 이미 지난해 8월 쿠카 지분 5.4%를 인수했으며, 현재는 10.2% 지분을 확보한 2대 주주 위치에 올라 있다. 지분율을 30%를 끌어올린다면 독일 ‘보이트카’를 제치고 새로운 최대주주가 된다.
중국 만풍과학개발기업은 올 4월 미국 용접로봇 응용시스템 서비스업체인 ‘파스린’을 350억원에 인수하면서 글로벌 용접로봇 통합시스템의 선두주자가 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파스린은 미국의 3대 자동차회사를 포함해 북미 지역 자동차 산업과 중공업 생산 분야에 자동화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다.
중국의 ‘로봇 굴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중국은 지난 4월 제조업을 가격 기반이 아닌 품질 기반으로 전환하기 위해 로봇 산업을 육성하는 ‘로봇산업발전계획 2016~2020’을 발표했다. 2020년까지 연간 산업용 로봇 생산량을 10만대, 국산화율 50%로 높이고, 직원 1만명당 가동되는 산업용 로봇을 OECD 절반 수준인 150
[오준호 명예기자·KAIST 기계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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