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 신청후 한진해운 선박에 대한 입항·하역 거부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한진해운 선박에 실려있는 선적화물 처리문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진해운 선박이 입항을 거부당하거나 하역 또는 화물 운송등에 차질을 빚으면서 화주들의 피해가 급증하고 이에따른 손해배상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2일 한진해운과 해수부에 따르면 한진해운의 선박에 대한 입·출항 거부 등이 사흘째 이어지고 있다. 2일에만 우리나라를 포함해 7개국에서 정상 운항을 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서부 롱비치에서는 하역업체가 수송을 거부했고, 이집트 수에즈 운하에서도 통항이 퇴짜를 맞았다. 일본, 싱가포르, 인도 등지에서는 한진해운 선박 억류와 입출항 거부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이날 한진해운과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현재 가동 중인 한진해운 컨테이너선 95척 가운데 절반 가량(43척)이 발이 묶였다.
◆3700억원 못내 15조 줄소송 당하나
한진해운이 운송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일단 이렇게 밀린 대금부터 갚아야 한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현재 한진해운 미지불금은 ▲하역·운반비(2200억원) ▲장비임차료(1100억원) ▲유류비(400억원) 등 3700억원에 달한다.
아직 실리지 않은 화물은 현대상선 등 다른 국적사를 통하거나 신규 항로 개설을 통해 어느 정도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배에 실린 상태에서 발이 묶인 화물 처리가 문제다. 화물 유랑사태가 장기화하면 화주들 소송이 이어지며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해양수산부와 한국선주협회에 따르면 한진해운 운용 컨테이너 120만 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개) 중 이미 선적된 화물은 41만 TEU에 달한다. 8281곳 화주가 짐을 맡겨 화물가액만 140억 달러(약 15조6000억원)로 추산된다.
선사와 화주가 일대일 관계를 맺는 벌크선과는 달리 한진해운 주력인 컨테이너선은 수많은 화주와 계약 관계로 엮여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만약 한진해운이 청산 수순을 밟는다고 해도 수천건 소송을 마무리 해야하기 때문에 청산 작업에만 최소 5년 정도가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해상유랑 화물 해법은
현재 유랑화물 문제 해법은 법원 압류금지명령(스테이오더·Stay Order)과 추가로 돈을 구해 억류나 운항금지를 푸는 것 밖에 없다.
서울중앙지법은 “한진해운 선박이 기항지에서 압류되지 않도록 각 외국 법원에 스테이오더를 얻는 절차를 최대한 빨리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테이오더가 발동되면 선박 압류를 피할 수 있어 추가 물류 대란 확산을 일정 부분 방어할 수 있다.
이 때 각국 법원이 한국 법원 압류금지 요청을 인정해줄지 여부가 관건이다. 미국·유럽 등 선진국은 대부분 스테이오더를 인정해주지만 중국, 파나마 등 11여곳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당장 중국에서 선박 억류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 다른 옵션은 자산매각 등을 통해 돈을 구해와 억류를 푸는 것이다. 하지만 한진해운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미 아시아 항로 운영권, 부산신항만, 베트남 터미널 등 알짜자산은 대부분 팔아버려 돈 들어올 곳은 별로 없다.
미 당국과 계약에 의해 연내 매각이 불가능한 캘리포니아 롱비치터미널 지분(54%)과 매도 가능 금융자산(84억원) 정도가 금고에 남아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갔지만 유동성이 말라붙은 상황에서 정상화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청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에 업계에 일각에서는 법원이 법정관리 기업 대출 등을 꾸려 당장 급전을 조달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정부 차원 억류해법은 없어
유례없는 물류대란이 현실화됐지만 정부·정책금융 당국은 딱 부러진 대책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
현대상선 대체선박 투입과 항로 신설, 한진해운에 한해 수출신고 물품을 30일 내에 적재해야 한다는 의무를 풀어준 정도다.
외국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선박에 대해서는 정부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 해수부 관계자는 “화물 억류 등 수송 지연에 따른 피해는 원칙적으로 화주가 자체적으로 대응하는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해운업계 고위 관계자는 “한진해운이 장기 계약을 맺으며 미국, 중국, 유럽 등 80여개국 1만 6400곳 화주와 쌓았던 신뢰는 이미 회복이 불가능하다”며 “소송 등 추가 피해를 완화하는데 집중해야 할 때”라고 전했다.
◆“후폭풍 예상 못했나” 업계 부글부글
물류대란 책임론을 놓고 신경전도 벌어지고 있다.
한국선주협회 측은 “법정관리가 불러올 엄청난 혼란을 놓고 각계 우려가 들끓었지만 한마디 해명 없이 결정을 내리는 채권단의 무책임함을 참을 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정관리에 대한 대비가
이에 산업은행 관계자는 “자구안 미흡에 따른 법정관리로 야기될 후폭풍에 대해 지속적으로 한진해운 측에 경고했다”며 “현대상선을 통한 해운 피해 최소화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환 기자 / 정석우 기자 / 이승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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