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청산으로 한국 해운산업이 반토막 난 가운데 예전 한진해운-현대상선 양사체제로 해상운송 능력이 회복되기까지는 5년 이상 시간이 걸릴 것으로 관측된다. 그 사이 중국·일본·유럽 선사는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몸집을 불리고 있다. 불황과 운임단가 경쟁 ‘치킨게임’에도 버틸 수 있는 규모의 경제 체력을 쌓기 위한 포석이다.
13일 해운업계 고위 관계자는 “해외 선사들이 M&A로 초대형사로 거듭나며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며 “한국은 한진해운을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로 보내면서 원상복구되는데만 상당한 시간을 허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진해운은 이날부터 본격적인 청산 수순을 밟는다. 삼일회계법인은 한진해운 청산가치(1조7900억원)가 계속가치보다 훨씬 높다는 내용의 실사 보고서를 서울중앙지법에 최종 보고했다.
◆제2 선사 대한해운 전력은
현재 현대상선 ‘나홀로’ 국적선사 체제를 맞은 한국은 내년 초 삼라마이더스(SM) 그룹 합류로 다시 양사체제로 돌아간다.
SM그룹은 한진해운으로부터 인수한 미주·아시아 노선 등을 밑천삼아 별도 사업체(가칭 대한오션)을 세운 후 다음달 컨테이너선 21척을 사들여 내년 3월부터 아시아와 미주노선 사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SM그룹이 제2 선사로 합류해도 한국 컨테이너 운송 능력은 종전 한진해운-현대상선 체제의 53%에 그치게 된다. 최근 우오현 SM그룹 회장은 매경 인터뷰에서 6500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개를 실을 수 있는 규모)급 선박 11척, 4000TEU급 미만 10척을 사들여 총 21척 규모로 선대를 구성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를 역산해보면 초기 선복 규모는 약 11만TEU로 세계 20위 규모 선사로 시작하게 된다. 현대상선(45만TEU)와 합치면 내년 초 한국 수송능력은 56만TEU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법정관리 이전 한진해운-현대상선 양대체제(106만TEU)의 절반에 그치는 셈이다.
◆현대상선 선박 발주 물밑 작업
한국은 2021년 말이나 되어서야 예전 ‘한진-현대’ 수준으로 회귀할 전망이다. 현대상선은 5년 후 컨테이너 사업을 중심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을 2.2%에서 5%까지 늘린다는 경영 계획을 세웠다.
현재 점유율 5%인 해운사 선복량은 90만TEU 안팎이다. 현대상선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2021년에 한국 수송능력은 101만TEU까지 늘어날 수 있다.
이를 위해 현대상선은 13일 ‘선박신조협의체’를 구성했다. 시장 상황과 수요 등을 점검해 언제 얼만큼 선박을 확보할지 시간표를 짜는 조직이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반선할 예정인 컨테이너선과 소형선박, 친환경 선박 등을 도입하기 위해 경제적 타당성과 발주 시점 검토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SM그룹 계열 컨테이너 선사는 초기 투자비용이 크고, 향후 6년간 해운동맹 가입이 어려울 것으로 점쳐져 성장 속도가 빠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13일 한국무역협회는 토종 해운사 화물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화주들을 중심으로 힘을 모으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글로벌 합종연횡 위기감 커져
한국이 5년간 제자리걸음에 발이 묶인 사이 M&A로 힘을 키운 경쟁 선사와 시장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감이 제기된다.
실제 올해를 기점으로 세계 해운 판도는 뒤흔들리고 있다. 중국 해운사 코스코는 지난 3월 정부 주도로 차이나쉬핑(CSCL)을 합병해 세계 4위 해운공룡으로 거듭났고, 7월에는 세계 3위 프랑스 선사 CMA CGM이 싱가포르 넵튠오리엔트라인(NOL)을 흡수해 2위 MSC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독일 최대 컨테이너선사 하팍로이드는 중동 최대 선사 유나이티드 아랍시핑컴퍼니(UASC)를 합병해 6위로 몸집을 키웠다. 내년 상반기에는 세계 최대 해운사 머스크가 7위 함부르크수드 인수를 마무리하며 초대형 해운
해운 M&A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해외선사 양적 팽창이 가속화하고 있지만 한진해운 없는 한국에서는 당장 시장 파이를 키울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며 “다급히 외연확장에 나서는 것 보다는 노선 수익성을 높이는 질적 개선 작업부터 차분히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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