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을 상대로 무려 1년 가까이 진행됐던 경찰의 강도 높은 수사가 결국 무리한 수사였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피해를 본 업체들이 경찰과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경찰은 업체들이 정부 사업을 수주하면서 지출내역 등을 조작해 부당이득을 취했다며 먼지털기식 수사를 진행했지만 결국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업체들은 “경찰의 법리 오해와 공기업의 무리한 실적경쟁으로 애꿎은 기업이 폐업 직전으로 몰렸다”며 강도 높은 대응을 예고했다.
23일 서울지방경찰청의 수사로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행사대행업체 ‘이오컨벡스‘ 등 업체들은 당시 수사를 했던 경찰과 경찰 수사의 빌미를 제공한 한국관광공사(관광공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과 명예훼손 등 민·형사상 소송을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소송을 제기할 금액은 10억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오성환 이오컨벡스 대표는 “경찰 수사가 진행됐던 9개월여 동안 정상적인 회사 활동이 불가능했고, 직원들이 빠져나가면서 심각한 경영상 피해를 입었다”며 “정부와 민간의 정상적인 사업계약 방식(총액계약체결)을 이해하지 못한 경찰이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해 손실을 입힌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업체와 경찰과의 악연은 지난해 5월부터 시작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이후 ’4대악 척결‘을 내세우면서, 경찰을 포함한 정부 부처가 실적 경쟁을 벌이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적발 실적을 내놓으라는 정부 압박에 시달린 문화체육관광부는 산하 기관인 관광공사가 민간업체와 진행한 사업 가운데 관행적으로 이뤄졌던 계약 몇 건을 문제가 있는 거래로 규정해 보도자료를 냈다. 경찰은 이런 정보를 토대로 일방통행식 수사를 진행했다.
문체부와 경찰이 문제삼은 것은 관광공사와 업체가 관행적으로 해오던 총액계약 방식이었다. 총액계약은 정부가 민간에 사업을 발주할 때 맺는 일반적인 계약 형태다. 총액계약 방식으로 계약하면 정부는 거래 명세서에 정해진 금액대로 발주하고, 계약자는 그 금액에 맞춰 사업을 진행하면 된다. 일단 계약을 하면 업체들이 사업을 하면서 발생하는 비용은 문제제기 대상이 아닌 것이다.
피해 업체들은 당시 “해당 거래는 일반적인 총액계약 방식으로 이뤄진 정당한 거래라 문제가 없다”며 무리한 수사를 중단해줄 것을 호소했다. 법원도 지난해 12월 경찰이 오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사기)범죄 성립 여부에 다툼이 있고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 없다”며 기각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 회사를 포함한 5개 중소기업에 사기 등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범죄 성립 여부가 확실치 않았지만 지난 1월 초 해당 수사를 ‘100억원대 국고보조금을 편취한 일당을 일망타진한 성과’로 포장해 보도자료를 내는 등 홍보에 열을 올렸다.
결국 검찰은 이달 9일 경찰이 이오테크닉스 등에 적용한 혐의에 대해 최종적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업체측과 정부의 거래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경찰수사 결과를 받아들일 법적 근거가 없다고 결론낸 것이다.
업체들은 억울한 누명을 벗긴 했지만, 되돌이기 어려운 피해를 입었다. 경찰이 수사를 벌이면서 이오테크닉스의 경우 매출이 3분의1 수준을 급감했고, 또 다른 회사는 대표를 제외한 모든 직원이 사직해 사실상 폐업 위기에 내몰렸다.
반면 무고한 민간기업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도 관련 기관들은 책임회피에 급급한 모습이다. 서울지방경찰청 지수대 관계자는 “당시 수사를 진행했던 담당자들이 바뀌어서 사건에 대해 잘 모른다”며 “수사를 하다 보면 불기소가 나올 수도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당시
[서태욱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