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상연 씨(79·사진 오른쪽)가 동생 조치훈 9단(64)와 함께 촬영한 사진. [사진 = 조상연씨] |
당시 6살임에도 '바둑 천재' 기질을 보였던 동생 조치훈 9단(64)을 일본으로 데려와 공부시켜야겠다고 다짐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혼자서는 일본에서도 버틸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동생까지 데려올 경우 경제적인 부담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때 손을 뻗은 사람이 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었다.
신 회장은 조상연 7단의 사연을 듣더니 흔쾌히 롯데에서 두 형제에 대한 장학금과 생활비를 지원해 주겠다고 했다. 이를 인연으로 조7단은 신 명예회장이 1965년 한국으로 귀국할 때까지 4년여간 1주일에 한번씩 집을 방문해 신 명예회장에게 바둑을 가르쳤다. 신 명예회장의 도움이 없었다면 훗날 '일본 바둑계 전설'로 불린 조치훈 9단의 업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조7단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신 명예회장은 일본에서 롯데 껌을 안 씹는 사람이 없고, 일본인 직원 수만명이 롯데에서 일하고 있으니 당신은 일본에서 돈으로 성공했다고 말씀하셨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머리로는 이기지 못했는데, 너희 형제가 일본 사람을 (머리로)이겨줘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도 하셨다"고 덧붙였다.
신 명예회장은 형제를 각별히 챙겼다. 조7단에게는 안 입는 옷을 갖고 가라고 싸주기도 했고 조9단이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는 본인 비서실 직원들로 하여금 조씨의 병실을 지키게 했다. 신 명예회장이 한국에 들어오고서도 인연은 이어졌다. 조7단은 "소공동 롯데호텔이 완공되고 나서는 신 명예회장 집무실에서 바둑을 뒀다"며 "통금이 있었을 당시 바둑을 두다 시간이 늦어지면 '야, 자고가' 그러셔서 자고온 적도 몇 번 있다"고 말했다.
신 명예회장의 바둑은 "아주 독창적"이었다고 기억했다. 상식적인 수를 두지 않고 다른 방식을 개척해 보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조7단은 "내가 농담으로 '회장님이 6살때부터 바둑을 뒀으면 천하통일할 뻔했네요' 그랬더니 '치훈이(조9단)니까 하지, 아무나 되나"라며 쑥쓰러
조7단은 "2015년 마지막으로 집무실에서 동생과 뵀을 때 건강이 안좋은 와중에도 우리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시던 게 생생하다"며 "신 명예회장은 일본에서 한국을 무시하지 못하게 만든 장본인이니, 하늘에서 원 없이 편히 쉬시길 바란다"고 추모했다.
[강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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