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쇼크로 직격탄을 맞은 면세업계가 6개월 이상된 재고 면세품을 국내 백화점과 아웃렛 등에서 판매할 수 있게 됐다. 면세점이 아닌 소매점에서 면세품 판매가 허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9일 관세청은 면세업계의 위기 극복을 지원하기 위해 적극행정위원회를 가동해 한시적으로 재고 면세품을 수입통관한 뒤 국내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지침을 내렸다고 밝혔다. 품목에는 제한이 없고 6개월 이상 장기 재고 면세품만 해당된다. 이번 조치는 최장 6개월간 시행된다. 현행 규정은 면세품을 국내에서 판매할 수 없고 재고품은 폐기하거나 해외 공급자에 반품만 할 수 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입출국 여행객이 작년에 비해 93%나 감소하면서 면세업계는 경영난과 재고 누적에 따른 비용부담을 호소해왔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 3월 국내 면세점 매출은 1조87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달 2조1656억원의 절반 수준으로 추락했다. 최근 면세점들의 모임인 한국면세점협회는 관세청에 재고 면세품의 국내 판매를 허용해달라고 요청했고, 관세청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관세청은 현재 6개월 이상 지난 장기 재고 면세품 규모가 9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관세청 관계자는 "면세점이 장기재고의 20%만 소진해도 추가적으로 약 1600억원의 유동성 확보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고 면세품은 해외반출도 물품 공급자에 대한 반품만 허용됐지만 이번 조치로 공급자 외 다른 해외업체에 판매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관세청은 재고 면세품 국내 판매를 일단 최장 6개월을 기한으로 한시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현재 공항 이용객수가 작년 대비 5%도 안되는데 60% 정도로 회복되면 조치를 종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건은 가격이다. 판매 가격은 재고기간 등을 고려해 면세업계가 결정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같은 제품의 경우 면세점에서 판매하는 면세품 가격은 백화점 등 다른 유통채널의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재고 면세품을 일반 유통채널에서 판매하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수입통관 과정을 새로 거쳐야 하고 관세를 부과받기 때문에 면세혜택은 받을 수 없다. 일반 수입품과 마찬가지로 수입에 필요한 서류 등을 갖추고 세금을 내야 한다.
다만 재고품인 만큼 붙는 세금은 감가상각을 적용해 정상 제품보다는 덜 붙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쌓인 재고를 해소해야 하는 면세업계 입장에서는 일부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낮은 가격을 매겨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재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패션잡화는 일반 아웃렛 수준까지 값을 내려야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고 면세품은 특허보세구역인 면세점에선 판매할 수 없는 만큼 아웃렛, 백화점 등에서 구입 가능할 전망이다. 롯데와 신세계면세점은 같은 그룹 내 계열사인 아웃렛과 백화점을 통해 재고품 판매를 할 것으로 보인다. 면세점말고는 자체 판매채널이 없는 신라면세점은 다른 온라인몰을 통해 판매하거나 중간 벤더(도매상)에게 제품을 넘기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다만 이렇게 판매되는 재고 면세품에 루이비통이나 에르메스 같은 글로벌 인기 명품은 찾아보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유명 브랜드의 인기 상품은 평소에도 물건 확보가 쉽지 않고, 비인기 상품이라고 해도 브랜드들이 반대하면 면세점들이 제품을 싸게 내놓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명품 브랜드는 제품 희소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시중에 물건이 많이 풀리는 것을 싫어한다"며 "브랜드와 일일이 협의를 거쳐야 재고를 팔 수 있는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 브랜드도 재
이 때문에 면세업계에서는 브랜드와의 협의, 가격 책정에 걸리는 시간 등을 감안하면 실제 시중에서 재고 면세품 판매가 이뤄지기까지 최소 한달 이상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임성현 기자 / 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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