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경채 패션작가. 2020. 11. 5. [한주형 기자] |
차경채 작가(28)는 자신을 융합학문 사상가(interdisciplinary Thinker)로 소개한다. 다양한 학문적 요소를 하나로 접목시키는 그의 작품 세계를 표현하기 위함이다. 그는 미국에서 철학, 순수미술,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을, 런던과 파리에서 패션 디자인을 배웠다. 최근에는 오래전 출시 된 빈티지 디올(Dior) 재킷에 자신이 그린 그림을 붙이는 작업을 진행했다. 지난달 패션 잡지 보그(VOGUE)는 인터뷰 기사를 통해 그를 '빈티지 디올을 캔버스로 사용하는 화가'로 소개했다. 서울에 잠시 머물고 있는 그를 얼마전 청담동 한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예술만큼 사람들의 대화를 촉진시킬 수 있는 오브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비싸지 않은 작품이라도 그것을 꼭 소유할 가치는 없다고 생각하죠. 어떻게 하면 예술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옷이라는 실용적 기능을 빌렸습니다."
그는 빈티지 디올 재킷의 뒷부분을 액자 모양으로 오려낸뒤 자신의 미술 작품을 붙이는 방식으로 일종의 '웨어러블 아트(Wearable Art)'를 선보였다. 그림도 일반 미술 작업에 사용하는 소재의 캔버스에 그렸다. 재킷과 그림은 벨크로(일명 찍찍이 테이프)를 통해 자유롭게 떼고 붙일 수 있다. 에르메스, 샤넬도 아닌 디올을 택한 이유는 디올이 오래전 선보인 '강렬한 여성미' 때문이다.
"지난 1950년대 디올의 창립자인 크리스찬 디올은 당시 '뉴룩(NEW LOOK)'으로 불린 혁신적인 여성 패션 실루엣을 선보였어요. 각진 어깨, 잘록한 허리 등 힘 있는 수트라인을 최초로 여성 패션에 적용시켰습니다. 남성과 동등한 입장에서 커리어를 쌓아가는 여성을 표현했죠. 제 그림의 액자 역할을 하는 옷도 입는 사람에게 당당함을 부여하길 원했습니다"
빈티지 재킷 활용에는 환경보호의 가치도 담겨 있다. "패션 업계에서 일하며 조금의 하자를 이유로 매년 폐기처분되는 옷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어요. 작품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을 전제로 그런 의류를 구입하기도 합니다"
그의 그림에는 어김없이 12개 별자리와 담배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이는 점성술에 대한 그의 오랜 관심에서 비롯됐다. 점성술에 담긴 인간의 원초적인 염원, 욕구, 두려움과 같은 감정들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디지털게임 디자인을 전공하지만 그의 학부 주 전공은 철학이다. "장수를 염원하는 사람들은 수천 년 전부터 점성술을 통해 미래를 확인하고 싶어 했죠. 그러나 순간의 쾌락을 위해 알코올, 담배 등에 빠져 스스로 삶을 단축시키기도 합니다. 저는 모순된 인간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처럼요"
↑ 차경채 패션작가. 2020. 11. 5. [한주형 기자] |
그는 자신의 영문이름 에스텔(Estelle)에서 이름을 딴 패션 브랜드 'eee'를 운영한다. 고객이 웹사이트를 통해 원하는 재킷과 그림을 요청하면 제품을 제작해 판매한다. 철학과 순수미술을 논하며 디올이라는 '명품'에 그림을 붙여 판매하는 것 역시 모순처럼 보인다. 그가 경험한 순수미술은 어느 곳보다 가장 보수적인 세계였고 "악마의 사과를 먹으면 안 된다"며 상업적 접근을 배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작품을 선보인 것은 예술의 의미에 대한 고찰 때문이다. "그림에 새겨진 점 하나를 두고도 예술가들은 몇 시간을 토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관심을 갖지 않죠. 교감을 얻지 못하면 예술은 어떤 의미도 전할 수 없습니다"
예술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그의 장래희망
[심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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