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더 이상 이들이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음악 이야기를 하지 않을 때 깨달아야 했다. 대중이 아이돌을 음악이라는 본질의 연장선에서 바라보고 있지 않음을 말이다. 실제로 아이돌에게는 밝고 예쁜 미소와 아름다운 의상, 방송에서 사람을 웃게 할 수 있는 재주와 깜찍 발랄하고 때로는 섹시할 수 있는 의상과 춤이 더 큰 화젯거리였고 관심사던 시절이었다.
티아라 화영의 탈퇴와 함께 대중들의 분노가 폭발 했던 건 왕따라는 티아라에서 화영이라는 멤버가 차지하는 중요성이나 가치를 인정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늘 사이 좋아 보이고 서로를 걱정하고 감싸주는 듯 보이던 걸 그룹 멤버들이 알고 보면 서로 시기와 질투, 중상모략과 해코지로 가득하다는 걸 대중들이 감지했기 때문이고 결국 아이돌의 보여지는 모습은 철저하게 만들어진 이미지일 뿐이라는 것에 대한 배신감이였다. 또 그 과정에 왕따라는 사회적 의미가 투영됐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더 나아가 아이유 사태는 과포화 상태의 ‘만들어진 이미지’에 대한 대중들의 피로감이 극이 달해 벌어진 현상이었다. 아이유는 슈퍼주니어 멤버 은혁과 찍은 사진 한 장으로 인터넷을 발칵 뒤집었다. 이 사진 한 장에 대중들은 집단 히스테리 증세를 보이며 폭력적으로 돌변했다. 소속사가 두 사람이 언제 어떤 이유로 사진을 찍었는지 해명을 시도했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성적으로 약자라는 점을 공격하는 치졸한 태도는 차지하고 아이유 사태에 대해 설명하면, 아이유 사태는 열광적인 지지를 얻던 대상이 진짜가 아닐 것이라는 의심이 드는 순간 환멸은 시작된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다.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는 대중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아이돌 제국을 지탱하고 있었던 대중들의 ‘아이돌에 대한 판타지’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선예의 선택이 누구의 강요나 불가피함이 아니라 순수하게 자신의 행복을 위한 자신의 결정이라는 가정 하에 그녀의 선택은 존중과 응원을 받아야 마땅하다. 용기에도 박수를 보낼 만 하다. 하지만 그 선택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쉽지않다.
정상의 아이돌 가수가 은퇴선언이나 마찬가지인 결혼 발표를 한다는 것부터 이해가 안된다. 또 스물 네 살은 보통의 여자라면 갓 대학을 졸업한 나이로 일반적인 결혼 적령기도 아니다. 또 JYP는 선예의 원더걸스 탈퇴에 대해서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그녀가 결혼 후에도 변함없이 원더걸스로 활동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쩌면 결국 선예의 선택은 결혼과 동시에 원더걸스라는 아이돌 가수를 포기하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선예의 남은 계약기간은 1년 정도. 사랑이 간절하고 절실할지라도 고작 1년 밖에 남지 않은 계약기간을 채운 후 결혼을 하는 것이 분명 무리한 생각은 아니다. 그토록 간절하고 확고한 믿음 속에 가꿔온 사랑이라면 1년 후 홀가분하게 결혼을 할 수 있는 게 사실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약기간 중 결혼을 선택했고 이는 그만큼 그가 자신이 속해 있던 세계에서 탈출이 절박했다는 소리로만 들릴 뿐이다.
서태지나 신해철, 신승훈, 이승환도 처음에는 아이돌 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티스트의 자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아이돌을 선택한 것에 가깝다면 선예에게는 애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열 두 살 때 부터 이미 그의 정체성은 누군가에 의해 아이돌로 규정 돼 버렸다.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선택의 기회도 없을 것이라는, 눈에 뻔히 보이는 미래다. H.O.T 이래 우리에게는 아이돌로 시작해 아티스트로 변신해 성공한 예가 단 한 명도 없다.
선예는 자신이 진정 바라고 원하는 것을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대신 제시해 준 인생의 목표와 다년간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 자아가 아닌 자신의 진짜 자아를 찾은 것인지 모른다. 그것이 사랑이나 결혼이 됐던, 그녀가 평소 말해왔던 선교나 봉사가 됐던 분명 원더걸스라는 아이돌 그룹은 더 이상 아니라는 의미로 들린다. 적어도 선예 안에서 원더걸스라는 판타지는 이미 사라진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 대중음악의 한 시대를 만들었던 아이돌 제국은 이렇게 붕괴되고 있는 중이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현우 기자 nobodyi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