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후 일본 도쿄 웨스틴 도쿄호텔 컨퍼런스룸. 인터뷰 시작 전, 한국에서 일본으로 날아온 한국의 기자들에게 방문해 줘서 “감사합니다”라고 한국말로 인사말한 그의 배려심은 컸다.
특히 간담회가 거의 끝날 무렵 한국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일화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19년 전을 떠올린 그는 자신의 히트작 ‘펄프픽션’이 당시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했다는 사실을 알리며 인연을 과시했다.
타란티노 감독은 “영화 홍보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는데 서울을 떠나기 전 한국 관객이 어떤지 느껴보고 싶어 한 극장에 들렀다”며 “당시 짐 캐리가 나오는 ‘마스크’를 상영했는데 많은 관객이 즐기는 모습을 봤다. 아시아 관객들과 여러 곳에서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대부분 조용하지만 한국은 정반대더라. 최고의 시간이었고 무척 좋았다”고 기억했다.
그는 또 자신이 “11년 전부터 뉴욕 웨스트 빌리지에 있는 한 한국 식당의 공동 소유주”라고 밝혔다. “제니 나의 어머니가 굉장히 요리를 잘하시는데 좋은 한국가정식을 맛볼 수 있다”며 “뉴욕에서 비빔밥을 먹고 싶으면 이 식당을 찾아달라”고 말해 웃음을 주기도 했다.
타란티노 감독은 한국 영화와도 남다른 인연이 있다. 그가 심사위원장이었던 2004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바 있다.
박 감독을 비롯해 김지운ㆍ봉준호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데뷔하는 것과 관련해 세 감독 모두 좋아한다고 말한 그는 “재능있는 감독들이 할리우드에 와서 어떤 식으로 영화를 만드는지 지켜보는 게 흥미롭다”고 기대했다. 그는 “‘공동경비구역 JSA’의 마지막 장면은 지난 20년간 본 영화 중 특히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세웠고, “아시아는 6~7년마다 한 국가가 선두에 나서는데 지금은 한국이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추어올리기도 했다.
한국 관객들의 구미를 당길 재밌는 에피소드 소개가 전부가 아니다. 타란티노 감독은 자신의 독특한 스타일과 신작에 대해서도 성심성의껏 답했다.
3월21일 국내 개봉 예정인 ‘장고: 분노의 추적자’는 아내를 구해야만 하는 남자 장고(제이미 폭스)와 목적을 위해 그를 돕는 닥터 킹(크리스토프 왈츠), 그리고 그의 표적이 된 악랄한 대부호 캔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벌이는 피도 눈물도 없는 대결을 담았다.
타란티노 감독은 또 복수 코드라는 지적에 “장고의 여정은 로맨틱”이라며 “아내를 구하는 목적이 더 크다”고 강조했다.
영화는 남북전쟁 이전 흑인 노예들의 참담한 삶이 녹아있다. 노예제와 KKK(백인 우월주의단체)를 향한 비난과 조롱도 담겼다. 그는 “노예제도는 미국의 원죄 중 하나로 남아있고 아직까지 씻지 못했다”며 “영화를 통해 미국 역사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닥터 킹을 독일인으로 설정한 것도 참담함을 더 크게 부각하게 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매 작품마다 영상과 음악의 조화가 절묘한 것에 대해 “타고났다”고 한 그는 “많은 이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했다. 그는 또 “액션과 음악이 조화를 이룰 때가 가장 영화적인 순간 같다”고 짚었다.
이렇게 건질 게(?) 많은 간담회는 오랜만이다. 몇몇 외국 배우 및 감독들은 한국 언론과 만나 영화 이야기만 하기도 하고, 몇 가지 질문을 받지도 않고 대화를 끝내기도 한다. 한국영화나 문화에 대한 관심과 경험이 많지 않은 이들도 꽤 있다.
물론 아쉽기도 하다. 한국에도 그를 사랑하는 팬들이 많은데 글로만 그의 한국 사랑에 대해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장고’ 해외 프로모션에서 한국은 빠졌다. 과거 한국에서 좋은 경험을 했다는 그가 다음에는 배우들과 함께 한국을 찾았으면 한다. 과거보다 훨씬 더 열광적으로 변한 한국관객들에 반하게 될 것이 분명하니까.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도쿄(일본)=진현철 기자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