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으례히 하는 종영 소감, 인사가 아니었다. 수화기 너머 배우 이기영(50)의 목소리에는 말로 다 하지 못할 진한 아쉬움이 배어 있었다. 올 상반기 드라마 중 단연 수작으로 꼽히는 SBS ‘돈의 화신’을 떠나보낸 이 중견배우의 아쉬움은 시청자들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크기였다.
이기영은 ‘돈의 화신’에서 검찰총장 ‘권재규’ 역을 맡아 명불허전의 연기를 선보였다. 장영철·정경순 작가-유인식 PD 콤비의 ‘자이언트’, ‘샐러리맨 초한지’에 이어 ‘돈의 화신’에도 합류한 이기영은 극중 지세광(박상민), 은비령(오윤아) 등과 야합, 이차돈(강지환)의 대척점에 선 악인 권재규 역을 열연했다.
격한 감정씬이 많아 쉽지만은 않았을 법 하다 묻자 그는 “센 인물을 연기하다 보면 아무래도 기운이 빠지기 마련인데, 마지막 한 달 정도는 권재규에게 여러 상황이 몰아쳤기 때문에 아직도 조금 기진맥진한 상태”라며 빙긋 웃었다.
극중 권재규는 믿었던 아군(지세광)에게 배신당한 것도 모자라 그의 손에 아들마저 잃고 결국 나락으로 떨어졌다. 여느 드라마와 달리 주, 조연 가릴 것 없이 ‘스토리가 있는’ 인물들의 향연이었던 만큼 권재규의 선택, 행동 하나하나 당위성이 나름 충분했다.
“시청자들이 보시는 것 이상으로 각각 인물에게는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기 마련이죠. 4개월 동안 권재규라는 인물에 젖어 있었고 막판에 아들이 죽는 등 격한 감정씬이 닥쳐왔기 때문에 종영하고 나니 서운함이 크네요.”
심적 에너지 소모도 컸지만 이기영은 실제로 ‘돈의 화신’에 투입되기 직전인 지난해 11월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지난 4개월은 체력적으로도 만만치 않은 여정이었다.
그는 “가족들의 걱정도 있었지만 나는 현장에 있는 게 마음 편한 사람”이라며 “많은 작품을 해왔지만 이번 ‘돈의 화신’은 정말 연기하면서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좋은 작품을 하는 게 행복”이라고 강조했다.
‘돈의 화신’이 종영한 지 불과 일주일 남짓이지만 이기영은 휴식도 없이 곧바로 안방 시청자들을 찾는다. 29일 첫 방송되는 KBS 1TV 일일드라마 ‘지성이면 감천’으로, 그리고 6월 방송 예정인 MBC 새 수목드라마 ‘여왕의 교실’로 작품 활동을 이어간다.
혹시 ‘연기중독’이 아닌가 묻자 이기영은 “기본적으로 무대에 있어야 하는 게 배우”라면서도 “‘돈의 화신’과 같이 혼신을 다 할 수 있는 작품을 하고 나면 허전함이 커서 빨리 다른 작품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종영 후) 허탈감이 너무 오래 간다”고 말했다. 얼마나 ‘돈의 화신’ 권재규에 빠져 살았는지 짐작할 만 하다.
“‘지성이면 감천’에서는 권재규와는 180도 다른 인물입니다. 딸 셋 아빠인 빵집 사장님 역할이죠. 실제로 제가 딸만 둘인데, 좋은 아빠의 모습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즐겁게 봐주세요(웃음).”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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