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Mnet ‘슈퍼스타K3’로 대중 앞에 처음 나선 뒤 1년 반이라는 담금질의 시간을 거쳐 가요계라는 링 위에 선 김예림은 그렇게, 올 상반기 데뷔한 신인가수 중 독보적인 사랑을 받았다. 그랬던 그녀가 불과 3개월 만에 두 번째 미니앨범을 들고 돌아왔다.
총 7곡이 수록된 이번 앨범 타이틀은 ‘Her Voice(허 보이스)’다. 바쁜 가운데서도 묵묵히 준비해 온 김예림의 ‘Voice’ 프로젝트 2탄이 베일을 벗은 것. 지난달 27일 선공개된 수록곡 ‘Rain(레인)’은 라이트한 재즈풍의 음악으로, 김예림이 작사 작업에 참여했다.
프로듀서 윤종신은 그녀의 목소리와 감성을 뽑아내기 위해 스무 살, 김예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평소 퓨어킴 언니와 작사 스터디를 하는데요, 어느 날 종신샘(김예림이 윤종신을 칭하는 그대로 옮겨본다)이 ‘비’에 대해 드는 생각을 자유롭게 써보자는 주문을 하셨고 퓨어킴 언니, 저 그리고 종신샘의 이야기가 더해져 ‘레인’ 가사가 나오게 됐죠. 좀 더 좋은 표현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제 나이대에 맞는 이야기를 받아들여주셔서 부르면서도 편안하고 좋았답니다.”
가사 중 눈에 띄는 대목은 ‘고작 스무살 여자 뿐이어서, 추억이 없어요’라는 부분. 아마도 김예림에게 비에 얽힌 추억이 아마도 없었다보다. 물어보니 역시나였다.
그래도 대중가수인데, 사랑에 얽힌 추억이 없다고 얘기하다니. 당돌하다(*꺼리거나 어려워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이 올차고 다부지다) 싶을 정도로 솔직하다. 하지만 역으로, 아직 사랑을 모를법한 나이의 어린 가수들도 사랑을 특히 이별의 아픔을 절규하는 세태 속에서 김예림의 이야기는 오히려 솔직해서 더 좋다. 듣기 좋은 가사가, 부르기에도 좋았다니. 금상첨화다.
‘레인’을 시작으로 9일 정오 전격 공개되는 ‘허 보이스’ 속엔 김예림의 어떤 목소리,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어 보이스’ 앨범에서 제 보이스의 다양한 색깔 그리고 스타일을 보여드렸다면 이번 앨범은 좀 더 제 색을 꺼내봤어요. 좀 더 색깔 있는 보컬리스트 김예림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죠. 좀 더 구체화된 제 보컬의 캐릭터를 살리고 싶었답니다. 앨범 구성도, 목소리도 더 통일감 있게 들으실 수 있을 거예요.”
타이틀곡 ‘보이스’는 헤어진 연인을 그 사람의 목소리로 추억한다는 내용의 곡으로, 윤종신 고유의 서정성이 물씬 느껴진다. 스윙스가 랩 피처링으로 참여했고, 음악감독 포스티노가 편곡을 맡아 신선함을 더했다. 유희열, 정재형, 퓨어킴의 목소리도 깨알 같이 담겨 있다.
그야말로 다양한 ‘목소리’의 향연 아닌가. 하지만 이번 앨범이 더욱 기대를 받는 건, 참여한 뮤지션들의 화려한 면면이다. 윤종신을 비롯해 김광진, 고찬용, 이규호, 이상순, 김창기 등. 김예림을 위해 힘을 합친 선배들의 공력은 ‘어 보이스’의 확장판이다. 이쯤 되면 90년대 감성이 김예림의 목소리를 빌려 2013년판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 보이스’ 활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자평하고 있을까. ‘올라잇’ 발표 이후 음악 프로그램은 물론, 예능에도 종종 모습을 비친 김예림은 “모든 게 처음이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고 했다.
3개월 여 활동해 보니 음악이 더 좋아졌는지 묻자 “음악은 늘 재미있었기 때문에 똑같다”는 현답이 돌아왔다. 다만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라”고 덧붙였다.
“첫 앨범인데 이렇게 좋아해주실 줄은 몰랐어요. 어떻게 보면 생소한 느낌도 있었을텐데 그런 느낌을 받아주셔서 너무 감사하죠. ‘올라잇’ 활동에 대해 아쉬운 점은, 제가 보완해야 할 부분을 발견했다는 거예요. 하지만 부족한대로 또 그 때만 보여드릴 수 있는 분위기라는 게 있으니까요. 앞으로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허 보이스’는 김예림의 솔로 데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일찌감치 준비됐던 작업이긴 하지만 새 앨범이 나오기까지 3개월이라는 기간은 상당히 밭은 일정이다. 왠지 모르게 슬로우 감성일 것만 같은 김예림이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을 듯 하다는 생각에 “너무 힘들지 않느냐” 물었다.
“음악 방송에 가보면 굉장히 빠르더라고요. 신곡이 계속 나온다는 게, 좋게 보면 들을 음악이 많아지는 것이긴 하지만 만드는 입장에선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완성도 있는 음악을 보여드리고 싶을테니까요. 그래도, 그 때만 할 수 있는 음악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때그때 할 수 있는 걸 보여드리는 것도 중요할 거 같다고 생각해요. 가령 ‘레인’ 같은 곡도 스무살의 얘기를 쓴 건데, 만약 내년에 곡을 쓴다면 가사가 또 바뀌어서 다른 노래가 되는 거니까, 그렇게 보면 스무살 때 보여드리지 못한 아쉬움이 남을 것 같거든요. 음악적인 완성도를 놓치고 갈 순 없지만 어느 정도 시기를 맞춰 가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해요.”
“찬스에 강하다기보다는, 뭔가 제가 하고 싶었던 것들에 대해서는 늘 최선을 다 한 것 같아요. 어려서부터 그렇게 해왔던 것이 많았어요. 대안학교를 간 것도 제가 원해서 간 거였고, 유학도 제가 가고 싶어서 간 거고요. 어쩌면 기회일 수도 있고, 한 순간순간의 결정일 수도 있는데 결정을 잘 했던 것 같아요. ‘슈퍼스타K3’ 때도 그랬고, (도)대윤이와 같이 투개월을 한 것도 그렇고요. 그리고 지금의 소속사에 들어온 것도. 매 순간 최선을 다 한 것 같아요.”
하지만 솔직하게, 자신을 따른 ‘운’도 부인하진 않았다. “첫 번째 앨범이 특히 그랬어요. 부족한 점도 많고, 어떻게 될 지 모르는데 앨범도 잘 만들어졌고 윤종신 선생님도 잘 이끌어주셨죠. 한편으론 그런 것도 기회일 수 있는데, 그때 그때 상황에서 최선을 다 해서 잘 된 것 같아요.”
지금껏 매 순간 최선을 다해온 그녀이기에, 지금은 어느덧 찬스에 강한 스무 살 김예림을 마주하게 된다. 매 순간 최선을 다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단순했다.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이란다.
9월 들어 박진영, 조PD, 지드래곤, 카라 등 많은 선배 가수들이 속속 컴백했지만 컴백이 예고된 가수들 중에서도 제일 걱정되는(?) 상대는 아무래도 20대 초반 솔로 여가수의 핵인, 아이유다. 아이유와의 경쟁을 앞둔 속내를 묻자 김예림은 “누가 봐도 경쟁할 만한 상황이 아닌 것 같다”며 연신 손사래 쳤다.
“아이유 선배님 콘서트에 게스트로 서게 돼 잠깐 뵌 적이 있는데, 배울 점이 많다고 느꼈어요. 저와 같은 나이지만 뭔가 심상치 않은, 그런 카리스마도 있었고요. 저는 이제 갓 3개월 됐을 뿐인걸요. 누가 봐도 경쟁이란 걸 할 상황이 아니고요, 아이유 선배님도 좋은 곡으로 나오실테니 저는 제 자리에서 제 노래를 열심히 하면 되겠죠?”
“음... 사람들이 ‘김예림이라는 섬이 있대’라고 들어봤을 정도인 것 같아요. 가끔 한두 번 지나가다 가본 분들도 계시겠지만 아직은 ‘그런 섬이 있대’ 정도? 그 정도도 전 너무 좋아요. 앞으로 들려드릴 게 너무 많기 때문에, 한 번이라도 제 목소리르 들어보셨다면 전 만족해요.”
첫 술에 배 부를 리 없지만, 그녀가 앞으로 차려놓을 밥상은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일 지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올 가을, 왠지 그 섬, ‘예림섬’에 가고 싶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 미스틱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