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거울을 볼 때 내 모습이 싫었다. 드라마가 끝나고 지난 2주 동안 감정이 고장난 것 같았다. 공허하고, 울적하고 우울했다. 집에 가는 것이 무서웠고 혼자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싫었다. 술 마시고 웃다가도 갑자기 눈물을 툭 떨어지고, 뭘 해도 즐겁지가 않고 허하더라.”
우울증 증세였다. 2주간의 휴식이 끝난 후 매체 인터뷰 등 공식적인 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우울증이 차츰 가셨다고 한다.
“이번 작품이 유난히 그런 것 같다. 평소 캐릭터에 빠져들어서 잘 빠져 나오지 못하는 편이 아닌데 이번 작품은 유난히 감정소모가 많고 감정을 다양하게 표현해야 했던 까닭인가 싶다. 액션신이 많아 육체적으로 힘들었을 거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촬영 때문에 나흘씩 잠을 못자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고생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정말 힘들었던 건 30대 초반에 연애도 많이 해보지 않은 남자가 부성애를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이었다.”
“비교될까 걱정한 것은 아니지만 저렇게는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소현경 작가가 ‘손현주 씨 나이의 부성애가 아니라 네 나이에 어울리는 부성애가 표현될 거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준기라는 배우를 완전히 바꿔주겠다’고 말씀하시더라.”
하지만 여전히 부담은 컸다. 소현경 작가는 대본 리딩부터 채찍질을 가했다. 한번에 OK가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문장 하나하나에 지적이 들어왔다.
“첫 촬영 전 감독님과 술자리에서 끌어안고 살려달라고 했다.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고 뭘 어디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더라. 이 작품을 잘 못하면 몇 년 쉴 것 같다는 불안감까지 들었다.”
다행히도 결과적으로는 호평이었다. ‘투윅스’는 분명 ‘이준기다움’과 ‘이준기의 새로운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 작품이 됐다. 하지만 이준기는 끝까지 만족하지 못했다.
“나 말고 다른 배우를 했으면, 더 완벽하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라는 배우는 뭔가 단련되고 숙달된 연기 스킬이 없다. 인간의 양면성을 표현하는 것도 부족한 듯 싶다. 그래도 마지막 촬영 전 작가님이 ‘장태산의 마지막 대사를 쓰고 있는데 네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문자를 보내주셨다. 그것 하나만은 정말 기뻤다.”
이준기는 주로 배우의 몸이 고생하고 시청자와 관객에게 호평 받는 작품에 출연하지만 상대적으로 흥행운은 따르지 않는다. 그가 출연했던 드라마 작품들은 웰메이드에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소위 대박 시청률은 못냈던 것도 사실이다. 한류 스타임에도 ‘마니아 취향’이라는 아이러니한 꼬리표가 따르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팬들이 내가 작품을 고르는 취향을 싫어한다.(웃음) 팬들 입장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가 대중성을 안고 가야 하는데 늘 구르고 싸우는 장르물만 고르는 걸 보면 안쓰러운가 보다. 로맨틱 코미디 같은 걸 찍어야 CF도 찍지 않겠냐고 성화다. 근데 결국 나를 휘어잡는 작품이 장르물인 걸 어쩌겠나.”
물론 로맨틱 코미디를 찍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아니 로맨틱 코미디 얘기가 나오니 갑자기 눈빛이 갈구하는 듯 변했다.
로맨틱 코미디에 대한 팬들의 성화(?)를 인지할 정도로 이준기는 비교적 팬들과 활발히 소통하는 배우다. 다른 연예인들과 비교해 SNS도 즐겨하는 편이다. 종종 팬서비스 차원에서 음반을 내기도 한다.
“SNS를 하는 것은 팬들과 행복한 느낌을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의도다. 사실 예전에는 SNS를 통해서 사회 문제에 대해 분노도 하고 그랬는데(웃음) 지금은 팬분들이 글 한 줄이라도 보고 좋은 기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SNS를 한다.”
한류 스타로서의 행보나 작품 선택, 자기 관리면에서 철저한 터라 매우 영민해 보이는 이준기지만 이해타산적이거나 계산적이지는 못하다.
“솔직히 재테크에도 소질이 없다. 간혹 금융 상품을 권하는 분들이 있는데 가장 원금 손해 안나는 안정적인 걸로 해달라고 할 정도다. 딱히 다른 걸 잘 하는 것도 없다. 영어마저도 로버트 할리에게 배워서 좀 이상하다.(웃음) 만약 당장 배우를 그만두면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지금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 잘 안다. 10년 후에도 쓸모있는 배우가 되는 것이 유일한 목표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현우 기자 nobodyin@mk.co.kr/사진 유용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