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모처럼만의 댄스곡 ‘아이 댄스’로 돌아온 가수 아이비(31·본명 박은혜)는 변함 없는 카리스마로 명불허전 실력파 가수임을 입증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행복한 외도(?) 중인 아이비의 모습은 방송국보다 뮤지컬 극장을 찾아야 더 자주 볼 수 있게 됐다.
“시기적으로도 잘 맞았고, 너무 하고 싶었어요. 솔직히 지금까지 맡아온 역할과 너무 달라 두려움이 컸지만, 몰리라는 인물이 아이비를 더 풍성한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 같았어요. 객관적으로 보면 영화 속 데미 무어와 아이비는 안 어울릴 것 같기도 하죠? 하지만 전 은근히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 ‘사랑과 영혼’의 뮤지컬 버전인 ‘고스트’. 죽음도 갈라놓지 못하는 영원한 사랑의 존재를 믿느냐 묻자 “있을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는 “작품이 갖는 힘을 믿고 시작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몰리와 샘의 순수하고 애틋한 사랑에 스스로도 “정화되는 느낌”이라고도 했다.
극중 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눈 앞에서 잃은 여인으로, 이를 연기하는 아이비는 몰리의 절절한 심정을 표현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과제 앞에 서 있다. “감정 호흡 갖고 가는 게 정말 힘들다는 걸 리허설 하며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더욱 집중하려 노력하죠. 잠깐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다 티가 나더라고요. 두 시간 동안 집중해서 가는 것도 어렵고, 슬프긴 하지만 너무 울기만 하면 노래가 힘들어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비에게 ‘고스트’는 반가운 도전이다. “연기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보게 된 첫 계기니까요. 힘들지만 찾아가고 있죠. 노래도 어려운 편에 속해 연습을 많이 하고 있어요.”
몰리 역에 더블 캐스팅 된 뮤지컬 배우 박지연의 열연 또한 아이비에게 긍정적인 자극제가 되고 있다. “박지연씨의 모습을 보면서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두려움 없이 연기하는 그 모습에. 태생적으로 자신감 넘치는 사람을 보면 너무 부러워요. 반면 저는 늘 두려움이 많은 편이라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익혀야 하는 스타일이죠. 타고난 성향이기 때문에 저는 항상 노력할 수 밖에 없어요.”
“스케줄이 없을 땐 원래 화장을 안 하지만 요즘은 연습하러 갈 때도 화장 하고 가요. 최대한 몰리로 보일 수 있도록, 그래야 오빠들이 사랑에 빠질 수 있을테니까요.” 진정한 프로란 이런 것이구나, 무릎을 치게 된다.
극중 파트너 샘 역은 주원, 김준현, 김우형 등 트리플 캐스팅이다. 각각의 매력이 다른 배우들이지만 아이비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세 명의 남자와 현실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그런 사랑을 하고 있어 행복하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주원 씨의 경우 애교가 많고, 생각보다 더 아기 같은 면이 있어요. 그런데 무대에 올라가면 남자 같이 목소리 톤도 달라지고. 귀엽지만 늘 고민하고 연구하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준현 선배님의 경우 감수성이 굉장히 풍부하신 것 같아요. 마지막 장면에서 울 때 입을 삐죽거리며 애기처럼 우는데, 오빠가 울면 진심으로 다가와 너무 슬퍼져 저도 울게 되죠. 김우형 배우님은 체격도 크고 해서 상대 배우에게 안정감을 주시는 분이죠.”
이들과의 첫 만남은 어땠을까. “지금은 다들 많이 친해졌지만 우형씨가 제게 ‘생각보다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 하시더군요. 실제로 제가 그랬어요. 낯을 가리는 건 아닌데, 남자 배우와 호흡을 맞춰 사랑을 나눈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가까이 있는 게 좀 어색했죠. 처음 호흡 맞출 땐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 지도 모르겠고, 멋쩍어서 연기가 잘 안 됐어요. 하지만 지금은 눈만 보면 척척 호흡을 맞추고 있답니다.”
20대 초반 처음 접한 뮤지컬은 아이비에게 “참 멋진 일” 정도일 뿐이었다. “처음 뮤지컬을 접했을 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그러다 2008년 옥주현 선배님의 ‘시카고’를 본 뒤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가요계는 순위에 너무 좌지우지 되잖아요. 무조건 내가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 순위가 높아질 수 있으니, 심적으로 힘들었어요. 특히 무대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딱 3분 가량인데 주위의 것들을 생각해야 할 게 너무 많아 스트레스가 컸어요. 반면 뮤지컬은 캐릭터만 신경 쓰면 되니까 스트레스가 없고 진짜 푹 빠져 살 수 있어요.”
지난 3년 동안 뮤지컬 배우로서 달라진 점은 무엇일까. “이전 작품들은 연기가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연기라는 것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하게 됐고 그런 계기가 됐죠. 저는 노래가 주분야지만 연기 역시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앞으로 평생 하고 싶은 일이니까요.”
“뭘 할 때 푹 빠져드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일상에서도 몰리처럼 여성스럽게 하고 차분해지고 있다”는 아이비지만 짧은 인터뷰 시간 동안에도 기본적으로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온몸으로 표출된다.
“평소 성격 자체가 에너지가 넘치고, 처져 있는 시간이 별로 없어요. 친구들도 그렇고 동료 배우들도 저에게 엔돌핀이라 불러줄 정도죠 하하. 한 사람으로서도 밝은 편이지만 제 노래와 연기, 무대를 보고 많은 분들이 기분 좋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그게 엔터테이너의 역할이니까요.”
무대 위에 서는 일을 업으로 택한 것 역시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 일을 잘 선택했다고 생각해요. 저는 무대 위에서 뭘 풀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거든요. 의외로 끼가 많은데, 일상생활에서는 끼를 못 풀고 사는 사람이고, 내 안에 잠재돼 있는 화려한 무언가를 무대에서 풀어낼 때 카타르시스가 느껴지죠.”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 강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