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인조 그룹 나인뮤지스는 데뷔 3년 만에 ‘모델돌’이라는 수식어 없이도 기억될 만한 순간을 맞았다. 첫 정규 앨범 ‘프리마돈나(PRIMA DONNA)’로 짧은 가을을 뜨겁게 달궜기 때문이다.
2010년 8월 데뷔곡 ‘노 플레이보이(No Playboy)’로 당당하게 출사표를 내놓았으니 어느덧 나인뮤지스도 4년차. 왕성하게 활동 중인 아이돌 그룹 가운데서도 중고참 쯤 됐지만 처음으로 정규 앨범을 내놓았다는 사실은 생각만 해도 짜릿한 기쁨이다.
“간절히 바라긴 했지만 솔직히 회사에서 정규 앨범을 만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는 못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앨범을 낸 것 자체가 감격스러워요.”(이샘)
앨범 작업은 나름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미니앨범 등으로 활동을 이어오면서도 이번 앨범을 위해 1년 전에 녹음해 놓은 곡도 있다고. “선작업을 해놓고 만든 앨범이기 때문에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고 앨범 작업기를 떠올린 세라는 “이제는 시간이 얼마나 걸렸느냐가 아닌, 얼마나 유기적으로 돌아가는지가 승부수가 되는 4년차 아니냐”고 웃으며 반문했다.
고무적인 사실은 타이틀곡 ‘건’의 반응이 여느 때보다 뜨겁다는 점이다. “차트 순위보다도 온라인 상 체감되는 반응은 역대 최고예요. 순위보다도, 고심 끝에 힘들게 만들어 낸 정규 앨범인 만큼, 책임감을 느끼는 한편 행복을 만끽하는 데 더 중점을 두고 있죠.”
‘건’의 퍼포먼스 또한 기존 나인뮤지스의 그것과 확연히 다르다. “예전에는 카리스마 위주이거나 군무로 표현하는 일이 많았어요. 그렇다 보니 ‘멋있다’ ‘세보인다’는 반응이 많았죠. 하지만 이번 ‘건’에서는 힘을 빼고 여성스럽게, 아름다운 선의 느낌을 강조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는 점이 달라졌죠.”(이샘)
“저는 ‘휘가로’ 당시 영상을 보고 운 적이 있어요. 당시엔 춤 하나를 추더라도 소위 빡세게는 했지만, 정작 즐긴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몰랐죠. 이젠 완전히 즐길 수 있게 되는 직전 단계인 것 같아요. 무대에서 서로 마주보고 웃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즐기고 있죠.”(현아)
“예전에는 군무를 잘 맞추고 싶은 욕심 때문에 자기 느낌을 내서 무대를 꾸민다기 보다는 기계적으로, 각도 맞추는 등에 그쳤던 점도 있었어요. 물론 그 덕분에 칼군무로 인정받기도 했지만 이제는 칼군무에서 벗어나서 느낌을 살려서 하려고 해요.”(이샘)
“발을 모두 한 방향으로 차는데, 옆사람 발이 왔다갔다 하다 보니 닿는 일도 많고, 실제로 유애린 언니는 맞기도 했고요.”(민하) “옆에서 보니 너무 웃겼어요. 의도치 않게 엉덩이를 맞은 상황에도 표정은 여유로워 보였거든요.”(현아)
“우리가 무대에 서면 대부분의 무대가 좁게 느껴져요. 아마 대한민국에 있는 걸그룹 중 팔다리와 멤버 수로는 최고이기 때문에, 무대에서 부딪치는 일도 많죠.”(경리)
“사실 걸그룹들이 많이 부딪치며 무대를 꾸미겠지만 우린 팔다리가 길다 보니, 서로 부딪치는 데는 이골이 났어요(웃음).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서로 여유 있게 넘어가고요. 오히려 지금은 때리고 맞는 것에 무뎌졌어요”(혜미)
숙소 합숙 아닌 개인 생활을 하고 있지만 함께 울고 웃은 나날들 만큼이나 멤버들간 애정은 돈독하다. 현재 멤버 경리가 팀을 대표하는 얼굴로 다양한 활동을 선보이고 있지만 질투라는 감정은 어린 아이들의 치기일 뿐이다.
“경리가 자연스럽게 두각을 보인 뒤로 연타로 이슈가 되고 있는데, 그 덕분에 우리도 자신감을 얻어가는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괜히 뜨는 건 아니죠. 경리는 스스로 ‘얻어걸린 것’이라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노력은 비례한다고, 본인이 노력을 정말 많이 하죠.”(이유애린)
성아 역시 경리에 대해 “어린 나이지만 워낙 잘 하고 매력이 있다. 스타트를 잘 끊어줘서 그리고 부담이 될텐데 잘 해내줘 고맙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나인뮤지스는 오피스 리얼리티 ‘제국의 아이들’(2009)을 통해 대중에 얼굴을 알리고 이듬해 가요계 문을 두드렸지만 당시부터 지금까지 활동 중인 인물은 놀랍게도 이샘과 세라 뿐이다. “그 정도로 수난도 많고 희망이 없는 그룹이었다”고 회고한 이샘은 “멤버가 다시 추려져서 데뷔했다 망하고, 이후 멤버가 탈퇴하고 그러기를 반복했다. 당시를 아는 분들은 그 시절을 떠올리면 같이 슬퍼하고 그만큼 지금 좋아해주신다”고 말했다.
“4년차에 드디어 정규 앨범을 내게 됐는데, 힘들었던 과정에도 멤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더 끈끈하고 애틋한 무언가 생기는 과정이 생각나며 요즘 많이 운다”며 눈시울을 붉힌 이샘. 동고동락해 온 멤버들에 대한 고마움이 큰 탓이다.
이들의 데뷔 직전 리얼한 생존기는 다큐멘터리 ‘나인뮤지스 오브 스타 엠파이어’(2012․감독 이학준)를 통해 공개된 바 있다.
“9라는 숫자는 완벽에 가까운, 완성도 높은 숫자라고 하더라고요. 나인뮤지스라는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홉 딸들과 같이 각 예술 분야에서 두각을 보일 수 있는 존재가 되자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인데, 사실 지금의 멤버로 맞춰지기까지 고난이 많았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아홉 명이 너무 소중하고,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순간입니다.”(이샘)
첫 정규 앨범인만큼 타이틀곡 ‘건’ 외에 다양한 곡이 사랑받기를 원하는 건 당연한 일. ‘프리마돈나’에서 특히 추천하고 싶은 곡은 ‘라스트씬’, ‘천생여자’ 그리고 ‘아님 말구’다.
‘라스트씬’은 나인뮤지스가 처음으로 부른 딥(deep)한 발라드다. 코러스를 최소화 해 멤버들의 매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천생여자’는 멤버들의 연약하고 여린 감성을 끄집어 내어 부른 곡이다.
“이미지적으로는 우리도 그렇게 밀고 있는데, 각자가 다 남자들 앞에서는 천생 여자가 되는 것 같아요. 생긴 것과 여리고 여성스러운 면이 많죠. 화끈하고 쿨해 보이는 반면, 실제 성격은 연약하고 여리고.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수줍어하는 성격도 있답니다.”(이샘)
‘아님 말구’는 중독성 강한 대중적인 곡으로, 기 센 언니 이미지와 180도 다른 귀여운 여자의 느낌이 강하다. 모두 나인뮤지스가 처음 시도해보는 느낌의 곡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애착을 보였다.
“이번 앨범을 통해 기존에 보여드리지 못했던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려 노력했어요. 다음에 어떤 느낌의 곡으로 돌아오더라도 나인뮤지스는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는 팀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주시면 좋겠습니다.”
짧고도 굵었던 ‘프리나돈나’ 활동 마무리 단계인 나인뮤지스. “앨범 타이틀처럼 되는 것을 이번 활동 목표로 삼고 있다”던 이들의 꿈인 프리마돈나로의 비상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 스타제국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