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빛’을 보지 못했을 뿐, 충무로에는 수많은 영화감독과 신인 배우들이 존재한다. 독창적인 연출력과 자연스럽고 섬세한 연기력에도 그놈의 ‘대중성’ 때문에 알려지지 않아 그저 아쉬운 상황. 대중의 사랑과 관심이 절실한 이들을 소개함으로서 존재를 알리고 한국영화의 발전 가능성까지 널리 알리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동건 아나운서 역이 정말 똑같다’라는 ‘국제시장’ 관람 후기 보면 기분 좋아”
[MBN스타 여수정 기자] “미국 로스앤젤레스 연결 하겠습니다”라고 슬픔을 참는 듯한 담담한 대사가 보기 좋다. 너무 튀지도 주인공에 묻히지도 않는 존재감이 자연스럽고 “실제 김동건 아나운서야?” “CG야?”라고 되묻게 만드는 비주얼도 성공적이다.
영화 ‘국제시장’ 속 다양한 카메오 중 가장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김동건 아나운서. 실제 김동건 아나운서의 특별출연도 아니고 CG도 아닌, 배우 황인준의 열연이다.
2000년부터 극단에 몸담았던 황인준은 연극밖에 모르고 살아왔다. 연극에 죽고 연극에 살던 어느 날, 연기를 함에 있어 분야에 대한 갭을 느꼈고 오직 연극에만 자신을 가두었던 생각을 달리 하게 됐다. 이때부터 오디션을 통해 연기에 대한 분야를 넓혔고 3~4번의 오디션 끝에 ‘국제시장’을 만나게 됐다.
덕분에 ‘국제시장’을 통한 스크린 신고식은 성공적이었고, 여세를 몰아 ‘무뢰한’ ‘시간 이탈자’ ‘나를 잊지 말아요’ 등에도 출연한다. 적은 비중이지만 김동건 아나운서 역과는 전혀 다른 경찰 또는 형사 역으로 180도 변신한다. 그러니 차기작에서도 눈여겨 볼 만하다.
“2000년 초반부터 극단에서 연기했다. 당시에는 오롯이 연극만 생각했었다. 보통 2~3작품에 참여할 경우 연습 외에 개인적인 시간을 가진다는 게 어렵더라. 무대 연기 외에는 생각을 안 했는데 연기를 함에 있어 내가 하고 싶은 분야와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갭이 보이더라. 드라마와 영화 모두 연기인데 내가 너무 연극에만 제한을 둔 것 같더라. 줄곧 연극만 고집하다 매체 연기는 2년차다. 제 작년부터 프로필을 만들고 오디션을 치렀다. 3~4번째로 본 오디션이 ‘국제시장’이다.”
“사실 ‘국제시장’ 앙드레김 역할도 오디션을 봤었는데 이보다 김동건 아나운서 역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웃음) 오디션 준비 당시 해당 영상 모니터링부터 자세, 마이크 잡는 법, 억양, 뉘앙스 등을 공부하며 최대한 흡사하게 연기하려 했다. 합격 후 오디션 당시 했던 연습에 더욱 박차를 가했고 촬영 전날까지도 계속 연습에 매진했다. 촬영 전까지도 윤제균 감독님이 ‘목소리는 실제 김동건 아나운서를 사용할지도 모른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더욱 내가 연기하려 애썼던 것 같다. 내 목소리를 녹음해서 듣고 감독님에게 보내고를 반복했었다. 다행히 자연스럽게 연기한 것 같다. 감독님도 웃으면서 좋아하셨다. (웃음)”
연기열정과 노력 덕분에 관객들은 완벽한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김동건 아나운서를 만나게 됐다. 가발을 쓰고 간단한 분장만하고 촬영에 임한 황인준. 좀 더 외형적으로 비슷해 보이기 위해 눈을 반쯤 감은 채로 대사를 이어갔다. 또한 그는 배우인 아내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배역을 소화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아내의 내조도 알렸다.
“‘국제시장’ 속 이산가족 상봉 장면은 매우 중요했고 나로 인해 감정신이 깨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내와 더욱 열심히 노력했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녹아나야 되니까. 실제로 남원 KBS에서 촬영했다. 나 역시 진행하면서 울컥했다. 그러나 당시의 김동건 아나운서는 매우 덤덤하게 진행을 이어갔더라. 때문에 울먹거리는 감정을 억누르고 배역에 몰입하려 애썼다. 상봉장면에서도 아나운서로서의 흐트러짐이 없는 김동건이 대단하다 느꼈다. 난 영화 촬영장은 처음이라 부담감이 컸다. 현장에서 느껴지는 무게감도 있었지만 다들 잘 대해줬다.”
“김동건 아나운서가 실존 인물이기에 더욱 어려웠다. 영화를 관람할 텐데 어색함보다는 저 친구 잘한다는 생각을 드리고 싶더라. 김동건 아나운서 역시 자신의 흉내를 내는 이가 아닌 그냥 본인처럼 느끼게 해드리고 싶었다.”
‘국제시장’에서 황인준이 보인 배역 소화력이 남다르기에 차기작에 대한 기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더불어 좀 더 자주 관객을 만날 앞날도 궁금케 만든다.
“내게 배우라는 직업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고 싶은 것이다. 배우를 위해 다른 아르바이트도 한다. 우스갯소리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고 물으면 ‘연기만 해서 생활이 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답한다. 반짝 스타보단 길고 오랫동안 연기를 하고 싶은 바람이다. 영화계에선 아직 신인이고 오디션 기회조차 얻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러나 ‘국제시장’ 덕분에 많은 관심을 받아 정말 기쁘다. (웃음) 좀 더 일찍 영화에 발을 내딛었다면 좋았을 텐데, 왜 한쪽으로만 시선이 쏠렸는지 안타깝지만 이제 시작이니 좋다. 다양한 작품으로 관객을 만나고 싶다.”
자신에게 있어 ‘국제시장’은 감사한 작품이라고 밝힌 황인준은 “배우는 자기 옷을 입은 것처럼 자연스러운 배역을 만나는 게 힘들다. 그러나 난 기성복이 아닌 맞춤 정장 같은 배역을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앞으로 배우로서의 필모그래피를 쌓는데 정말 많은 가르침과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시종일관 애정을 드러냈다.
“‘국제시장’이라는 큰 영화 속에 작은 배역으로 등장했지만 비중 있게 봐줘서 감사할 따름이다. 앞으로 더욱 자신감을 가지고 작업할 수 있게 됐다. (웃음) 정말이지 내 인생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된 작품이다.”
여수정 기자 luxurysj@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