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여수정 기자] 개봉 당시 유일한 오락 액션 블록버스터로 일찌감치 화제를 모았던 ‘킹스맨’은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로부터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애당초 등급분류를 신청할 때 이 같은 등급으로 신청했지만, 매튜 본 감독의 ‘엑스맨-퍼스트 클래스’가 12세관람가였기에 10대 관객들은 적잖은 실망감과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는 ‘킹스맨’ 역시 12세관람가일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실제로 많은 10대 관객들은 자신의 SNS를 통해 ‘킹스맨’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라 극장에서 관람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킹스맨’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맞아 다소 제한된 관객을 만난 것처럼, 모든 영화에는 ‘등급’이 따라붙는다.
영화들은 극장 개봉을 앞두고 영등위로부터 각 작품에 맞는 등급을 받게 된다. 영등위가 영화에 분류하는 등급에는 전체관람가, 12세이상관람가, 15세이상관람가, 청소년관람불가, 제한상영가 총 5가지이다.
↑ 사진=해당 홈페이지 캡처 |
윤리성과 공공성 확보와 영상물 창작성, 자율성 존중을 비롯해 청소년의 정서 함양, 인격형성, 건전한 영상 문화 조성, 인류 보편적 가치, 성-인종-국가 및 문화의 다양성 존중, 사회적 통념, 시대의 흐름과의 부합, 전체적 맥락을 감안하되 개별 장면의 지속-강조-반복-확대 등이 미치는 영향력 검토, 일관성 유지, 형평성 유지 등을 등급분류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는 영등위 공식 홈페이지에도 친절히 나와 있는 내용이다.
영화는 주제와 선정성, 폭력성, 대사, 공포, 약물, 모방위험 총 7가지의 요소에 따라 등급을 받게 된다. 청소년, 언론, 법률, 교육, 문화 등 각 분야의 전문가이자 각 매체별로 전문위원과 소위원회를 구성해 법률, 기준에 따라 공정하고 투명하게 결정하고 있다. 신청사에 접수가 등록되면 해당부서에서 서류를 검토하고 전문위원이 사전 내용을 검토한다. 그 후 소위원회에서 등급을 결정하고 해당부서에서 결과를 통보한다. 결과를 통보받은 후 영화상영 비디오 시청의 과정과 사후관리를 통해 해당부서에게 피드백도 준다. 특히 등급분류 결정 또는 추천 결정에 불복할 경우, 그 결정의 통지를 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구체적인 사유를 명시하여 위원회에 이의를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놈의 등급이 늘 말썽을 일으킨다. 소재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단연 청소년이 봐야만 하는 영화임에도 자극성, 선정성, 모방위험도를 강조하며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내리기도 한다. 누가 봐도 1%의 모방위험도를 자랑해도 이를 문제시 삼아 애꿎은 등급을 선정하기도 한다.
↑ 사진=포스터 |
정지욱 평론가는 MBN스타에 “영화 등급이라는 제도 자체가 매우 전근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년보호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 같은 제도를 만들었다고 해도 등급을 심의하는 이들이 영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하고서 심의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 영화에 있어 등급제가 매우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앞서 여러 번의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고 많은 수정 끝에 개봉했던 ‘미조’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미조’는 제26회 유바리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이는 무삭제판 버전이 상을 받은 것인데, 국내 작품과 해외 작품에 대한 영등위의 기준이 정확한 게 아니라 편파적인 것 같다. 세계적인 시각에서 영화를 보는 이들과 우리나라 영등위가 다르게 평가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 같다”며 “청소년이 볼 수 없음에도 완성도 높은 작품이 있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영등위에서 등급을 매기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며, 제작자들이 성인관객을 타깃으로 말도 안 되는 작품을 만드는 것 역시 문제”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미조’는 개봉을 앞둔 상황에서 여러 차례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아 사실상 개봉이 불투명해졌다. 그 후 재심의를 거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아 개봉했다. 그러나 너무 먼 길을 돌고 돌아 관객을 만났기에 초반의 화제만큼 돋보이진 못했고, 결국 좋은 작품을 허무하게 날려버린 꼴이다.
‘미조’를 연출한 영화감독 남기웅은 MBN스타에 “‘미조’가 제한상영가를 받고 난 후 국내에 합법적으로 사람들에게 보인 건 사실 다 블러 처리가 되고나, 삭제처리된 것이라 나뿐만 아니라 같이 고생한 배우와 제작진, 제작사 모두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사회 전반적으로 너무 경직되어있고 보수화되어 있는 듯하다. 내 영화도 영화지만 전반적으로 딱딱한 분위기가 강하기에 언제까지나 영화의 메시지가 제대로 표현이 될지 모르겠다. 원래 작품이라는 게 보이는 것을 통해 다른 걸 보이게 하는 건데 너무 보이는 것에만 민감한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어 “사실 영화를 통해 보이는 게 그리 아름다운 것만 있는 건 아니다. 궂은일이거나 엽기적인 것, 또는 사회적으로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도덕적으로 어긋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가지고 너무 따진다. 이를 통해 다른 걸 봐야 되는데 단순히 보이는 것만 가지고 상영불가 등을 받는 게, 겉모습에만 보고 재단하는 게 두렵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누구든 (등급을 매기는)그들이 보기 좋은 것들만, 시각적으로 허용된 것들만 제작할 것”이라며 “즉, 등급이 무서워서 표현이 축소되고 협소해질 것 같다. 다들 보기 좋은 것들만 할 것이니. 정말 안타깝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남기웅 감독은 “‘미조’를 본 관객들이 영화를 통해 가치판단이 흐려지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단지 영화 속 설정 등을 보고 이를 통해 말하고자하는 바가 아닌 겉모습에만 너무 집중하니까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남기웅 감독은 창작자의 입장에서 다소 창작 의지를 깎아내리는 등급에 대해 한 마디했다. 남 감독은 “영화는 개인 예술이 아니며 개인 작업이 아니다. 여기에는 자본이 들어가고 많은 이들의 노력이 더해진다. 모두가 모여서 협업을 하는 게 영화인 것”이라며 “요지부동한 등급이 있다고 할 때 또한 영화 등급에 대해 영등위와 마찰을 일으켰을 경우, 그들이 기준이 된다. 어떤 특정 영화가 제한을 당했거나 원본이 훼손됐을 경우, 이와 유사한 장르의 영화를 제작하기에 앞서 걱정부터 할 것이다. 시작부터 부딪혀볼 생각조차 안한다는 것”이라고 의견을 냈다.
결국 기준은 있지만 일종의 제한을 주는 등급은, 영등위와 마찰을 일으킨 영화와 유사한 장르의 탄생을 막으며 동시에 관객들이 볼 수 있는 영화 장르의 폭도 좁아지게 만든다. 때문에 좀 더 융통성 있는 등급 기준이 다시 정해지거나 충분히 이해 가능한 최소한의 설명 혹은 일부가 아닌 다수에게 등급 선정의 기회를 주는 게 등급 골머리를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수정 기자 luxurysj@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