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격동의 조선 태조 7년, 왕자의 난을 무대로 하고 있는 영화 ‘순수의 시대’는 실존 인물인 왕자 이방원(장혁 분)과 여진족 출신이라는 태생적 열등감이 남아있는 조선 최고의 무장 김민재(신하균 분), 그리고 그의 아들이자 태조의 부마인 진(강하늘 분), 세 사람을 혼동으로 인도하는 기녀 가희(강한나 분)의 삶을 다루고 있다.
‘순수의 시대’는 제작 단계에서부터 조선판 ‘색, 계’로 불린 만큼 높은 수위와 신하균, 장혁, 강하늘 등 명품 배우들의 연기 호흡으로 화제가 됐다. 하지만 격동의 시기라는 배경은 어디에도 없다. 극이 멜로에 치우친 만큼 오프닝 신에 드러난 역사와 야사의 줄다리기가 절묘하게 이어지지 못한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 “재료가 문제? 셰프가 문제?”
여수정 기자(이하 여)=재료는 좋은데 셰프가 요리를 못한 느낌이다.
박정선 기자(이하 박)=모든 재료가 좋지는 않은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장혁이 반전의 열쇠를 쥐고 있었는데 함께 반전을 꾀한 강한나에 묻혔다. 사실 장혁을 놓고 보면 감독만의 문제는 아니다. ‘추노’ 때의 모습을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옷만 바뀐 느낌이랄까. 신하균도 이름에 걸 맞는 역할은 아니었다. 신하균이라는 배우가 할 수 있는 게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작품에서 그걸 살리지 못했다.
최준용 기자(이하 최)=그러니까 감독의 역량이 문제다. 바다에서 노는 물고기를 가둬놓은 느낌이다.
정예인 기자(이하 정)=감독이 너무하다. 이렇게 좋은 배우들을 데려다 이 정도 결과물 밖에 내지 못하다니.
유명준 기자(이하 유)=너무 강한나에 맞춘 것 아닌가 싶다. 신하균과 장혁의 경쟁구도로 암투가 벌어져야 하는데 강한나의 손에 쥐락펴락한 상황이지 않나. 장혁은 사실 존재감도 없었다. 강하늘은 악역이 아니다. 그냥 나쁜 놈이다. 악한 역할이라는 느낌보다는 찌질한 느낌이다. 걸렸을 때의 찌질함은 말할 것도 없고.
최=강하늘의 연기가 ‘미생’이랑 연결된다. ‘미생’에서는 완벽주의 직장인 캐릭터를 맡았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나쁜 캐릭터로 색을 바꾼다. 노력하는 모습이다.
박=최고의 수혜자는 강한나지만, 사실 첫 등장신에서 “쟨 뭐야” 싶었다.
유=첫 장면에서 그랬다는 건 공감한다. 그래도 신하균과 엮이면서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정사장면에서도 표현이 잘 된 것 같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감독 탓만은 아니다. 이 배우들에 대한 기대치가 있지 않나. 강하늘, 신하균, 장혁 등 나쁘지 않은 사람들로 기대치가 올라간 것 치고는 성적이 좋지 않다.
◇ “도대체 왜 ‘순수의 시대’인가”
유=감독이 왜 제목을 ‘순수의 시대’로 지었는지 모르겠다.
박=한 블로거의 후기를 봤는데 ‘순수’의 사전적의미로 제목을 풀이해 놨더라.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다’는 뜻인데 그런 측면으로 끼워 맞춘다면 감독의 의도를 “틀렸다”고 못박을 순 없는 것 같다.
유=제목이라는 건 영화를 봤을 때 단박에 ‘영화가 이런 내용이겠구나’ 느껴져야 하는 것 아닐까? 영화를 보지 못한 관객들에게 내용을 전하기 위해 짓는 것이지 않나. 관객이 보고 나서도 ‘왜 제목이 순수의 시대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 안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최=상업영화인데 관객들의 공감을 못 끌어낸다면 확실히 문제가 있는 거다. ‘순수의 시대’ 보단 ‘욕정의 시대’가 더 잘 맞을 것 같기도.
유=강한나에게 무게감이 실린 건 맞는 것 같다. 정사신이 많은 건 둘째 치고, 강한나에 대해 포인트를 맞춘 게 너무 많다. 분량이 너무 많아서 신하균, 장혁이 묻힐 정도니까. 사실 관객들은 강한나를 보러간 것이 아니지 않나. 그러다보니 입소문이 퍼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장혁-신하균의 무게를 올려야 했다.
◇ “포인트부터 제대로 잡았어야”
유=장혁의 모략은 좋지 않았다. 강한나와의 관계가 처음부터 보인다. 서로 관계가 있다는 게 드러나 김이 샌다고나 할까. 차라리 신하균과 힘을 합쳐 강한나를 이용하고, 신하균의 장인을 쳤으면 더 임팩트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이러면 너무 나가는 것이지만.
최=맞다. 신하균을 임팩트 있게 뒤통수 쳐야 반전 있는 건데, 초반부터 읽히니까 재미가 있을리 없다.
유=우리가 느끼는 것보다도 수치가 말해준다. 기대작이었는데, 이렇게까지 무너질 줄 몰랐다. 시대를 잘 그린 것도 아니고. 감독이 포인트를 못 찾은 것 같다. 차라리 이럴 바에는 처음부터 강한나에 초점을 맞추고, 강한나를 둘러싼 인물들의 모습을 그려서 에피소드 별로 나눴으면 더 재밌었을 듯하다. 강한나, 신하균 모두 극의 중심에 없는 느낌이다. 틀 자체를 잘 만들지 못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러다보니 제목과도 어긋나고, 배우들의 연기력을 논하게 만든 듯하다. 영화라는 건 감독의 의도에 배우가 녹아들어 전체를 보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보니 배우를 개개인별로 논하게 만들었다. 결론을 내리자면, 감독은 실패했고, 신하균은 그냥 그랬고, 강하늘은 체면치레, 장혁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이 영화를 통해 모든 것을 가져간 이는 강한나 한명이다.
유명준 기자, 최준용 기자, 박정선 기자, 여수정 기자, 정예인 기자 composer_js@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디자인=이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