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2002년 당시 상황을 해명했다. 분명 오해도 있었고, 진실도 있었을 테다. 그는 "일부러 국민을 속이려 했다거나 기만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면서 사과했다. 뒤늦게 군대를 가려고도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고 강조했다.
최소한 아이들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 아빠로서 그의 자세는 진실돼 보였다. 그의 진심이 얼마나 전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법적인 잣대가 아닌 국민 정서는 온전히 대중의 몫이다.
다음은 19일 오후 10시 30분부터 방송된 스티브 유의 아프리카TV 인터뷰(신현원프로덕션 촬영) 일문일답이다.
Q. 어떻게 이 자리에 나오게 됐나
A. 사죄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었다. 이 자리는 심경 고백, 그 어떤 변명의 자리도 아니다. 여러분께 내 잘못을 사죄하는 자리다. 오늘 나는 가장 진실된 것, 내 마음에 있는 것들을 말씀 드리려고 한다.
Q. 돈 때문이라는 비판도 있다
A. (한국에서 추방된 뒤) 중국에서 14편의 영화를 찍었다. 60부작 드라마도 찍었다. 내가 돈이 많다고 하면…. 절대로 돈 때문이 아니다.
Q. 한국에 들어올 수도 있다는 기사가 있었는데 (이날 오전 한 매체는 "유승준, 입국 금지 해제·한국 국적 회복 가능"이란 헤드라인 보도를 내놓아 관심을 끌었다. 스티브 유는 해당 기사를 보고 울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입국금지를 요청한 기관장의 해제 요청이 있다면 법무부는 이를 고려해 검토한다"는 출입국관리소의 원론적인 입장이 해당 기사의 핵심이었다. '아' 다르고 '어' 다를 뿐 과거와 변한 것은 없다. 병무청과 법무부는 "절대 불가" 방침을 재차 강조했다)
A. 현재 난 (대한민국) 입국 금지자다. 관광비자로도 한국 땅을 밟을 수 없는 처지다.
Q. 출입국 관리법 11조에 따른 것으로 알고 있다. 소위 어떠한 사람들과 동급인건가
A. 내가 알기로는 사상범이나 정치범, 그런 사람들로 알고 있다. 잘 모르지만 그렇게 들었다.
Q. 당시 영주권 문제가 컸다고 들었다(유승준은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이민을 떠났다. 가족 모두 미국 시민권자가 된 상황이었다.)
A. 미국 영주권자는 타국에서 6개월 이상(1년 기준) 머물지 못했다. 그렇지 않으면 영주권이 상실됐다. 그래서 미국과 한국을 빠듯하게 오갔다. 아버지는 내 국적마저 옮기려고 했다. 나조차 모르게 시민권 신청을 (취득 당시) 1년 전 했다.
Q. 해병대 홍보대사였다는 말도 있다. 사실인가
A. 전혀 사실이 아니다. 금연 홍보대사 외에는 다른 기억이 없다. 만약에 회사에서 (이미지만 빌려주는 조건으로) 했다면 모르겠다. 난 (신경 쓸 겨를 없이) 바빴다. 홍보대사와 관련된 군대 문제 기사의 시초가 있다. 한국에서 활동할 때 보통 집까지 매니저가 데려다 주는데, 어느 한 날은 아파트 앞에서 내렸다. 숲에서 기자가 탁 튀어나왔다. 그 기자가 사담으로 '승준이 요즘 잘 나가. 체격도 좋으니 군대 가야지' 하더라. 그래서 나는 "네. 가야죠" 답했다. 그랬더니 기자가 바로 "해병대 가도 되겠다" 했다. 그리고 다음날 신문 1면에 '유승준 박찬호, 해병대 자진 입대하겠다' 기사가 나왔다. 그 이후 군대와 관련된 질문이 계속 나오고 나는 또 답을 하게 됐다.
Q. 군대 갈 생각이 있긴 있었나
A. 난 군대에 대해서 전혀 거부 반응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건강하고 단체 생활을 좋아했다. 늘 가야된다 생각했고 실제 가려고 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Q. 2002년 1월로 돌아간다면
A. 당연히 군대 간다. 내가 내린 결정이, 시간이 흘러 이렇게 큰 물의를 일으킬 지 몰랐다. 만약 돌이킬 수 있다면 두 번 생각 하지 않고 가겠다.
Q. 38세가 징집 최대 연령이다. 39세가 된 지금 타이밍이 절묘하다.
A. 여태까지 내 심경을 몇 차례 이야기 했다.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잘 전할 수 있을까 생각 많이 했다. 그러나 얘기를 하려고 할 때마다 잘 전달 되지 않았다. 어떤 인터뷰를 해도 설명이 안 된다. 인터뷰 포맷 자체가 1시간을 이야기해도 짧게 나가지 않나. 내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마음 아픈 비난과 질타의 말씀이 많다. 솔직히 나 역시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 풀어야 될 지도 몰랐다. 13년간 한국을 거의 안 보고 살았다. 그래야 살 것 같았다.
Q. 용기를 낸 계기는
A. 아들이 내 노래를 부르면서 춤도 추고 그런다.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내 문제로 인해서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되겠다 생각이 들었다. 첫째 아들 지호가 학교에서 '너희 아빠는 유명한 사람인데 한국을 왜 못 가느냐' 이런 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내가 한국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울려고 한다. 아이가 뭘 알았는지 그래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래서 내가 한국 문제 만큼은…(풀고 싶다). 나도 더 이상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Q. 그래서 어떠한 노력이 있었나
A. 내 신분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귀화해서라도 가고 싶다고 했다. 작년에 한국 쪽과 연락을 했다. 그때는 만 38세였다. 다시 군대를 가야겠다 마음 먹고 아버지께도 말씀 드렸다. 소속사 대표인 성룡에게도 '12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내가 마음이 바뀌어 군대 가겠다' 그랬더니 '결정 잘했다'고 하더라. '그 길이 맞는것 같다'고. 아이들에게도 '아빠 군대 갔다올께' 말했다. 그런데 이틀 뒤 한국 쪽 관계자가 내 생년월일을 물어보더라. 난 1976년생이다. 알고 보니 새로 바뀐 법(재외동포 체류 자격 제한 연령이 36세에서 38세로 개정됐다)은 1980년 이후 태어난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법이라더라. 난 징집 대상이 아닌 거다. 결국 또 무산됐다.
Q. 만약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회복하는 조건으로 (법적으로 징집대상이 아니지만), 군 복무를 할 수 있게 해주겠다. 이런 제안이 있다면 받아들일 의향이 있나
A. 있다.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한국 땅 밟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 떳떳하게 (이때 그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국에 가고 싶다. 예전에 '아름다운 청년' 유승준로 불렸다. 아름답지 않았지만 아름다우려 노력했다. 진짜 열심히 살았다. 젊은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어서 몸무림치는 모습에 어르신들도 좋아해 주신것 같다. 그런데 이제 내 문제 때문에 아이들은 '아빠가 거짓말쟁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인터넷상에서는 치졸한 사람이라고 한다. 물론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렇게 보였다.(그는 또 눈물을 삼켰다)
Q. 아이들이 아빠의 과거를 아는가
A. 점점 커가고 있다. 아이들은 내가 유명한 사람인 줄은 안다. 성룡과 영화 찍고 그러니까 자랑스러워 한다. 다른 아빠들과 달리 내가 체격도 크니까 친구들이 '너네 아빠 슈퍼히어로'라고 그런다. 그런데 '아빠가 이래저래 해서 한국에 못 들어간다'고 하면 "왜"냐고 되묻는다. 답을 잘 못해줬다. "아빠가 뭘 잘못한 게 있다" 얼버무렸는데 (아이들이) 더 크면 내가 해줄 말이 없다. 그렇게 자랑스러운 아빠로 믿고 있는데…. 아빠로서 아이들에게 그러한 오명을 남기면 안 되겠다 싶어서 이런 용기를 내게 됐다.
Q. 아이들이 지금 홍콩에 온 줄 아나
A. 아빠 인터뷰 하러 간다고 했다. "가서 아빠가 죄송하다고 말하고 오겠다" 했다. 첫째가 "아빠 결과가 어떻게 나와?" 묻더라. 아이가 뭘 안다고…. "그냥 인터뷰 하는거야" 그랬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사실 내가 말을 잘 하는데 카메라 앞에 서니 못 하겠다. 보시는 분들이 너무 무거워하실 것 같다. 나만 나오면 그렇게 다들 무거워하신다. '벽'이라고나 할까. 방송이나 행사 공연 하다가 한국 후배들을 만나면 내가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모르겠다.
Q. 어색함인가
A. 잘 모르겠다. 나도 반갑게 맞으며 "열심히 해라" 말하기도 그렇다. 오히려 날 응원한다고 하면 웃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고맙기도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내 스스로 편하지 못하다. 자신이 없어졌다.
Q. 한국에서 병역 신체검사 결과는
A. 4급 받았다. 허리 문제 때문이다. 5집 때 '어제 오늘 그리고'라는 조용필 선배 곡을 리메이크했다. 뮤직비디오 촬영하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쳤다. 지금 수술하지 않으면 나중에 디스크가 터진다며 꼭 수술 받아야 한다 했다. '연예가중계' 통해 보도가 되면서 당시에도 바로 병역 기피 의혹 기사가 났다. 솔직히 그때는 이해가 안 됐다. 실제 허리가 뻐근하긴 했지만 사는 데 지장은 없었다. 춤도 추고 그랬으니까. 당시에는 좀 뻐근해도 무대에 올라가서는 열심히 했다. 우스갯소리로 밥만 주면 열심히 했다. 그래서 수술도 하지 않으려 했는데 아버지가 날 설득했다. "이건 연예 활동 문제가 아니다. 건강이 중요한 것"이라고. 그래서 수술 받았다.
Q. 공익 6개월 판정에 퇴근 후 연예활동 보장 특혜 제안 의혹도 있다
A. 사실이 아니다. 6개월 근무도 아닌 26개월이었다. 특혜 제안, 그런 것 전혀 없었다. 그 이후로 자꾸 의혹이 나오니까 오히려 더 군대 가겠다는 인터뷰를 많이 했다. 그조차 내가 막 먼저 떠벌린 게 아니라 관련 질문이 나오면 답했을 뿐이다.
Q. 입대를 앞두고 일본 공연 갔다. 2002년 1월. 원래 예정된 공연이었나. 미국 시민권 취득 위한 일정 아닌가
A. 절대 아니다. 내가 바보가 아닌 이상 왜 거짓말 하겠나. 군대를 가겠다 한 것은 정말 간다고 했기 때문에 가야하니까 말씀 드린 거다. 시민권 신청에 따른 선서 인터뷰가 2001년 10월께 한 번 나왔었다. 아버지가 신청해 놓은 게 나왔다. 그때 연락이 왔을 때 난 끝까지 가지 않았다. 국민과 약속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9.11 테러 사건 이후 시민권을 한번 리젝트(거절) 하면 다시 또 나올 가능성이 없도록 바뀌었다더라. 2002년 1월 마침 절묘하게도 그때 시민권 인터뷰 일정이 또 나왔다.
Q. 애초 일본만 갔다고 돌아오기로 한 것 아닌가
A. 출국할 때 일본 공연 마친 후 미국도 갔다온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일단 그냥 와라. 와서 얘기하자" 이랬었다. "군대 가기 전, 얼굴만 보고 가라"고. 이제 만나기도 힘들고 이런 상황이 될 지 모르니 인사나 드리고 갈 참이었다.
Q. 출국할 때 병무청 직원이 보증을 섰다
A. 그 사실은 몰랐다. 출국한 이후에 알았다. 개인적으로 아는 분(병무청 직원)이 아니다. 아마 회사에서 아는 분일 것이다. 출국할 때 누구를 보증세우고 이런 줄도 몰랐다. 이후 어떻게 되셨는지도 모른다.
Q. 의도적인 (병역 기피) 상황으로 여겨진다
A. 전혀 아니다. 군대를 가려고 했지만 미국에서 아버지에게 설득됐다. 가장 큰 문제는 가족이었다. 스무살 때부터 내가 가족을 책임졌다. 또 앨범을 내야 하는 (계약 상태) 위치에 있었다. 6집 7집. 앨범 두장에 대한 계약을 이행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일을 해야 했다. 회사 직원도 꽤 많았는데 나 외에는 다른 소속 연예인이 없었다. 내가 일을 하지 않으면 회사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버지께서 "네가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않느냐. 군대를 가는 게 더 이기적일 수 있다"는 말이 컸다. 부모님 탓을 할 수는 없다. 성인인 내가 내린 결정이다. 다만 나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어린 나이지만 사인 한장에 수십억 거래가 오갔다. 그룹이 아닌 솔로다 보니 내가 어떻게 하겠다 하면 막을 사람이 없었다. 참 교만했다.
Q. 되돌아 보니 어떠한가
A. 정말 정신이 없었다. 부족했다. 그런 걸 감당할 만한 성숙됨이 없었다. 그때가 만으로 스물 다섯이었다.
Q. 미국에서 시민권 취득 후 한국행 비행기에서 무슨 생각을 했나
A. 그냥 또 일하러 가는구나 했다. 시민권 취득 후 내 군 문제를 보증 선 공무원 분들이 있다니 빨리 가서 해명해 피해가 없도록 해야겠단 생각은 있었다. 그래서 기자회견도 준비했었다. 그럼에도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는 줄은 잘 몰랐다. 그때는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아서 깊이 알지 못했다.
Q. 공항에 도착한 후 상황은
A. 맨 처음 비행기에서 내리니까 기자들이 게이트 앞까지 왔더라. 출입국관리소 통과 후가 아닌 비행기 문에서 내리자마자였다. 경호원 같은 분들이 나를 잡았다. 말씀도 다 딱딱하시더라. 심경 말하라고.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을 때는 반말로도 다그쳤다. 어찌해서 출입국 통과하는 데까지 갔더니 여권 보여달랐다. 보여주니까 영어로 말씀하시더라. 입국 금지 됐으니까 돌아가라고. 당황스러웠다. 다른 나라 온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이야기 끝나고 거기 계신 분들이 다 사인 받아가셨다.(웃음) 되게 낯설었다. 기자분들은 또 사진 찍으시더니 다른 일정 있다고 그냥 가시더라. 상처 많이 받았다.
Q. 사인 해주면서 무슨 생각했나
A. 그냥 사인 열심히 해드렸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느냐면 입국 금지된 이후 지금의 아내에게 전화해서 좋아했다. 다시 미국 간다고. 좀 쉴 수 있겠다고.
Q. 언제 심각성을 알았나
A. 한참 동안 몰랐다. 방송 활동 불발되면서도 ('그래도 내가 유승준인데…라는?' 진행자 코멘트) 그냥 그때는 그걸 (해명하지 않고) 제가 지켜야 된다고 생각했다. 바보 같이. 상황이 점점 내가 생각했던 것과 멀어져 가더라.
Q. 한국에서 '배신자 스티브 유'라는 비난 접했을 때 기분이 어떠했나
A. 다 안봤다. 안 봐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살 것 같았다. 누군가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나를 소재로 삼았더라. 근데 시청자들이 다 웃더라. '미국으로 도망간 계집애' 이런 맥락이었는데, 그걸 가족들과 함께 보고 있었다. 그때 TV를 껐다. 그 다음부터 한국을 쳐다 보지 않았다. 그렇게 해야 살 수 있었다. 한국 분들 만날 때는 더 괜찮은 척, 태연한 척 했다.
Q. 더 빨리 군대에 갈 노력은 안 했나
A. 상황 판단이 잘 안 됐다. 내가 피해자인줄 알았다. 아이고 참.(그는 스스로 한심하다는 듯 웃었다) 주위에서 빨리 마음 바꾸라고 말해준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다. 내 아내다. "한국 땅 밟고 싶으면 군대 가라"고 했다. 그런데 또 내가 이미 자존심이 상했었다. (그는 이 대목에서 또 대중이 분노할까 걱정했다) 다시 번복하기도 그랬다. 그저 그 문제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점이 제일 바보 같았던 것 같다.
Q. 병무청 관계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선처 해주셔서 내가 한국 땅을 밟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시면 좋겠다. 다시 기회 주신다면 어떠한 방법이든 하고 싶다. 내가 젊었을 때 내린 결정이나 잘못은 무조건 사죄 드린다.
Q. 국민께는
A. 너무 시간이 오래 지나서 사죄 말씀 드린 것 죄송하다. 일찍 사죄드렸어야 했음에도 용기가 없어서 쉽게 나서지 못했다. 늦게나마 이렇게 사죄 말씀 드리게 돼 죄송하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다시금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 또 그 이전에 유승준이란 이름을 회복하고 싶다. 물의 일으켜서 죄송하다. 많은 허탈감과 실망 안겨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Q. 이제 끝났다. 기분이 어떤가
A. 아직 답답하다. 국민을 우롱하거나 거짓말을 계획하지 않았다. 정말 (군대) 가려고 했지만 개인적인 이유로 못갔다는 것 역시 이제 와서 변명밖에 안 되는 것 안다. 하지만 여러분을 속이려고 했던 건 정말 아니다. 어찌됐든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빨리 사과드리지 못한 점은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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