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배우 이은우. 브라운관에서는 다소 낯설지만 꽤 많은 영화에 출연하며 영화계 필모그래피를 꾸준하게 쌓아올린 배우다. 하지만 그는 “사실 제가 영화에 출연한 것도 많이들 모르시더라”며 웃는다. 참 솔직하고 소탈한 9년차 여배우다.
그런 이은우를 최근 서울 강남구 MBN스타에서 만났다. 올해 MBC 드라마 ‘빛나거나 미치거나’에서 잠깐 출연을 하면서 간만에 브라운관 나들이를 한 이은우는 최근 영화 ‘대호’ 촬영에 합류하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있다는 근황을 전했다. ‘빛나거나 미치거나’ 이야기가 나온 김에 기대만큼의 분량이 아니지 않았냐고 묻자 이은우는 “오히려 주변에서 분량 이야기를 많이 하시더라”고 웃음을 터뜨렸다.
↑ 사진=이현지 기자 |
“사실 처음 예상했던 것에서 변화가 많이 생겨 볼륨이 조금 작아지게 됐다. 물론 저도 조금은 아쉽다. 하지만 그냥 그 시간을 보내기에는 아깝지 않냐. 그래서 ‘무언가를 또 배워가자’는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그런데 주인공 연기자 분들과 떨어져 뒤쪽에 서있는데 보조 출연자 분들이나 단역 분들이 오랜 시간 대기하고 추운 날 고생하시는 걸 더욱 가까이 보게 됐다. 그런 걸 보면서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제가 너무 ‘난 연기자야’ 이렇게 생각하며 연기한 건 아닐까, 이렇게 고생스럽게 연기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더 마음을 가다듬고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뒤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정말 많은 걸 보고 생각하게 됐다. ‘정말 더 열심히 해야겠다’ 이런 것도 있지만 ‘드라마는 다 같이 고생해서 만드는 것’이란 생각이 더욱 커졌다. 그 분들을 보면서 제가 많이 부끄러웠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기덕 감독 ‘뫼비우스’로 베니스 영화제 레드카펫도 밟았지만 유독 드라마와는 인연이 없는 이은우다. 그런 이은우의 얼굴을 오랜만에 TV에서 보나 했는데, 짧았다. 아쉬웠다. 좀 더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진하게 들 때쯤 드라마는 종영을 했다. 간만에 드라마에 출연하게 된 배우 본인이 가장 아쉬운 대목일 텐데, 이은우는 애써 개의치 않아했다. 그는 “이왕 했는데 이렇게 끝내면 아쉽지 않냐. 무언가를 배워야지 하는 마음을 항상 먹는다”며 드라마 촬영 당시를 떠올렸다.
↑ 사진=이현지 기자 |
“영화를 할 때에는 앞에서 주, 조연으로서 돌아가는 걸 많이 봤다면 이번에는 뒤에서 ‘제가 다음 촬영장에 어떻게 해야 하고, 이 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고, 어떻게 촬영을 진행해야 하고’ 등을 많이 배운 것 같다. 분량? 솔직히 말하면 섭섭하다.(웃음) 하지만 제 분량이나 이런 것에 대해 ‘바꿔 달라’ 떼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가끔 대사가 있으면 매니저 붙잡고 연습 막 하고 들어가고 그랬다.(웃음) 제가 그렇게 열심히 하는 이유는 그 장면을 누군가가 봐주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많이 아쉽기도 한데, 그 아쉬운 게 제가 마음을 추스르고 더 열심히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일 뿐이다. 이번 계기를 통해 제가 분명 배운 것은 뒤에서도, 앞에서도, 옆에서도 촬영장 전체를 볼 수 있었던 거였다. 전에는 시야가 좁았다면 지금은 다양한 시각을 키웠다는 느낌이다. 긍정적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사람이 자꾸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부정적이 된다. 그래서 항상 긍정적으로, 무언가를 배우려는 마음으로 매사에 임하고 있다.”
이은우는 이렇게 답하면서도 “제가 너무 도덕 선생님 같은 말만 하는 것 같아서 죄송하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2007년에 데뷔를 했으니 벌써 9년차인데, 거의 10년을 연기해 온 배우가 말하는 것치고는 ‘상당히’ 겸손하다. 이은우는 이 말에 “사실 저는 이제 막 드라마를 시작한 단계일 뿐”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덧붙여 그는 “‘10년차 중고 신인’ 이런 표현은 쓰지 말아 달라. 이미 영화 ‘뫼비우스’ 때 많이 쓰였던 단어다”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참 오래 달려왔지만 영화의 필모그래피도 꽉 찬 게 아니고, 드라마는 이제 세 작품을 했다. 그 말에 이은우는 “사실 연기를 본격적으로 한 건 서른 넘어서인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 사진=이현지 기자 |
“제가 중간에 쉬기도 하고 광고만 집중적으로 할 때도 있었다. 그 때에는 ‘이 일을 안 해야지’보다는 어떻게 하다 보니 광고가 풀려서 광고를 먼저 했다. 그리고 회사 문제도 있었다. 아무래도 방송국에 들어가려면 회사가 있어야 더욱 수월한 면이 있는데 제가 회사를 찾는 과정도 있었다. 다른 연기자 분들도 ‘연기 접어야지’하는 생각을 많이 하셨다고 예능에서도 말씀하시고 그러는데 물론 저도 그런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다. 사실 가끔이 아니다.(웃음) 처음에는 그냥 뭣 모르고 ‘스타’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하다 연기를 조금씩 몸에 알아가면서 ‘연기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실 지금도 ‘평생 배우 해야지’라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할 것 같다. 이 곳은 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존재한다. 지금의 목표를 생각해야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은 일단 이제 개봉을 하는 영화. 이것 먼저 생각하고 다음의 일은 그 때 생각해야 하더라. 지금 당장 앞으로에 집중하는 것이 비법이라면 비법일 것이다. 사실 마인드콘트로를 하는 건 많은 다른 배우 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고 싶었던 배역이 안 되거나 오디션이 연달아 잘 안되거나 하는 상황들이 항상 있으니까. 어쨌든 배우들은 인형 뽑기 기계에서 뽑듯이 ‘선택받아야만’ 하는 직업이니 고민들을 하실 것 같다.”
스스로도 인정할 만큼 드라마와는 유독 ‘연이 닿지 않은’ 배우지만 2011년 채널CGV의 ‘TV방자전’이라는 드라마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방송 관계자들 중에는 이은우의 얼굴을 ‘TV방자전’을 통해 알게 된 이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당시 파급력은 컸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그 작품을 찍고 제 부족함을 많이, 정말 많이 느꼈다”며 ‘TV방자전’을 회상했다.
“저는 드라마 방면에서는 이제 막 물꼬를 튼 상황이다. 처음 시작하다시피 하는 거고. 드라마와 인연이 잘 닿았던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다. 때가 아직 안 됐나?(웃음) 영화도 작품 수는 있지만 이제 시작이라는 느낌이 있다. ‘신의 선물’ ‘뫼비우스’를 찍기 전까지는 영화에서도 짧은 역할들로 나왔다. 영화 ‘로맨틱 헤븐’에서는 김수로 선배님의 아내 역인데 일찍 죽고, 영화 ‘10억’에서는 맞아 죽고.(웃음) 드라마 ‘TV방자전’을 찍으면서 제 부족함을 많이 느낀 후 연기 연습을 다시 하고 영화 ‘신의 선물’을 찍었다. 거기에서 김기덕 감독님과 인연을 맺어 ‘뫼비우스’로 이어졌고 그 영화를 보고 다른 분들이 또 저를 찾아주시고 하면서 퍼져갔다. ‘TV방자전’이 끝난 후 ‘내가 많이 부족하구나’라는 걸 느끼면서 나름 노심초사 하면서 연기를 다지는 기간을 가졌다. 물론 ‘TV방자전’으로 화제는 많이 됐다. 인터뷰도 꽤 했고. 하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제가 연기를 못 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제가 연기를 어떻게 하는지 잘 몰랐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잘 모르지만 그 때 당시에는 더 몰랐다. 그래서 그 드라마 끝나고 모든 것을 새롭게 리셋하고 처음부터 다시 배웠다. 대본 보는 법도 대본 쪼개보기, 통으로 보기 같은 가장 기초적인 것부터 다시 배웠으니 정말 기본으로 돌아갔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 사진=이현지 기자 |
이은우는 덧붙여 “‘신의 선물’을 찍고 ‘뫼비우스’ 찍기 전, ‘연기를 그만둬야하나, 말아야 하나’라는 고민을 했다”고 털어놨다. 지금까지 배우의 길을 걸어오면서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지 않았냐는 ‘돌직구’ 질문이 잔상으로 남았던 듯 했다. 그는 “정말 연기라는 게 안 하려고 하면 끌어들이고, 안 하려고 하면 끌어들이고 한다”며 ‘운명’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드는 찰나에 김기덕 감독님께서 영화를 제안하셔서 사실 출연을 할까 말까 고민도 많이 했다. 그러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해보자’라는 결심이 서서 출연을 하게 된 거다. 그 때가 ‘연기를 한다, 안 한다’의 기점에 서 있었는데 다행히 ‘한다’로 기울었다. 그렇다고 그 때 ‘안 한다’를 선택했으면 아예 연기를 안 했을까 물으신다면 그것도 또 모르겠다. 이게 신기한 게 안 하려고 하면 슬쩍 끌어들이고 하는 게 있다. 제가 연극영화과를 나온 것도 아니고, ‘연기가 정말 좋아’라고 하면서 연기를 시작한 건 솔직히 아니다. 그렇다보니 제 자신에 자꾸 되묻게 된다. ‘연기를 정말 하고 싶니? 왜 하고 싶니?’라고 자꾸만 제게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중심을 좀 더 단단하게 만들어 놔야 흔들리지 않는 것 같다. 계속 그렇게 되물으면서 지금도 아직 그 중심을 세우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이번에도 느낀 것이지만 영화 현장이나 하다못해 오디션 현장에라도 가면 제가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연기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런 저를 보면서 ‘아, 내가 연기를 재밌어 하나?’ 이런 생각을 한다. 막상 들어가면 ‘아, 역시 연기는 힘들구나’ 생각이 들지만.(웃음)”
평소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다양한 감성을 접하고 ‘눈물’의 중요성을 배워가고 있다는 이은우는 선배님들의 대화도 자신의 눈을 넓혀주는 공부가 된다고 말했다. 영화 ‘대호’를 위해 만난 배우 최민식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면서 “제가 천만 배우, 그 ‘거대한 배우’와 함께할 줄 누가 알았냐”며 열의를 불태웠다. 10년을 해왔지만, 이은우의 배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늘 배움을 원했다. 상대방의 작은 것 하나에도 교훈을 얻어가는 ‘부지런한’ 배우였다. 사실 어려운 일이다. 10년 가까이 한 길을 걸어왔는데 이은우의 자세는 신인 배우의 패기나 열정과 비슷했다. 그는 오히려 “제 연차는 나태해지면 안 되는 연차”라고 말한다.
“전 제게 들어온 일은 최선을 다 한다. 오디션이라도 그렇다. 저는 오디션 대본이 간혹 늦게 들어와도 밤을 새워서 준비하고 간다. 한 번은 오디션을 하는데 대본을 들고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게 이제 승패를 가르는 요인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이거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그 경험 이후에는 오디션이 있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다 외우고 오디션에 참여한다. 제게 들어온 일을 항상 ‘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한다. 그 일은 제게 한 번 지나치면 끝인, 다시 올 수 없는 시간이다. 그래서 ‘안 되도 후회는 하지 말자’라는 생각을 한다. 늘 ‘열심히 하자’ 이런 생각을 한다. 늘 열심히 해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그래왔듯이, 열심히.”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