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이다원 기자] ‘판관 포청천’ ‘꽃보다 남자’ 등 대만 인기 드라마를 기억하는가. 1980년대 이후 꽤 오랜 시간 아시아 드라마 트렌드를 이끌어왔던 나라였지만 어찌된 셈인지 2000년도 중반 이후엔 제대로 된 히트작을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 자본에 흡수돼 빈껍데기 콘텐츠만 남았기 때문이다.
대만이 콘텐츠 제작 황금기를 지나 몰락의 길로 들어서기까지 그 과정을 살펴보면 국내 콘텐츠 제작업계의 위기를 읽어낼 수 있다.
이들이 하락세를 걷게 된 건 1999년 케이블방송에만 광고시간을 늘려주고 콘텐츠 규제도 대복 완화하면서부터다. 100여개의 채널이 등장하면서 방송사간 경쟁은 심해졌고, 광고시장이 세분화되면서 수익이 떨어지자 적은 제작비로 프로그램 제작을 충당해야 했다. 그야말로 악순환이 계속되는 상황.
↑ 사진=KBS |
대만 제작진들은 자체 제작 대신 외국 프로그램을 수입하거나 창의성 없는 콘텐츠들로 편성표를 가득 채웠다. 혹은 과거 종영한 프로그램들의 재탕, 삼탕도 서슴지 않았다. 자본이 들어간 작품은 중국 방송을 염두에 둔 것들이었다. 시청자들은 서서히 자국 방송을 외면하기 시작했고, 대만 콘텐츠 산업은 자생력을 잃어갔다.
PD나 작가 등 실력 있는 인재들은 기회의 땅인 중국으로 건너가 돈벌이에 나섰다. 스타들도 대거 중국으로 이동했다. 대만이 보유한 콘텐츠 기획력이나 제작노하우도 자연스럽게 유출됐다.
여기에 중국 자본이 대만 제작사에 침투하면서 판권도 빼앗기기 시작했다. 중국 자본으로 움직이는 하청업체에 지나지 않았다. 대만 콘텐츠 속에는 더 이상 민족적 특색이나 개성을 찾아볼 수 없다. 중국의 문화적 속국으로 전락해버리고 만 것이다.
대만 문화 산업의 끝없는 추락은 현재 국내 사정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 중국 거대 자본이 빠르게 국내 제작사에 유입되고 있고, 쿼터제를 뚫는 돌파구로 한중합작이 성행하면서 2차 판권을 중국에게 모두 내어주고 있어 대만의 전철을 밟는 건 아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업계의 시각은 둘로 나뉜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앞으로 3-4년 유예기간 이후 중국에 잠식될 위험이 크다. 무엇보다도 이를 규제하거나 국내 제작사들을 보호해줄 법적 울타리가 없어 중국의 맹공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며 “정부가 현장의 소리를 듣고 제대로 대처하지 않는다면 많은 콘텐츠를 중국에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박상주 사무국장은 “대만은 중화권 문화라 중국에 흡수되기 쉬운 환경이지만 한국은 문화권이 달라 대만 사례와 비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정부의 안일한 대응에 대해서는 아쉬운 마음을 표현했다. 그는 “한국 지상파 방송에서 머지않아 중국 드라마가 나올 수도 있다. 중국이 저작권을 쥐고 있고 한국 배우, 작가, PD들이 만든 드라마가 국내 전파를 타고 인기를 끈다면 그 돈은 중국이 다 가져가게 되는 셈”이라며 “영국처럼 자국의 콘텐츠가 자생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양성하는 시스템을 국내에도 갖춰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한류만 외칠 뿐이지, 그걸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는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고 일갈했다.
이다원 기자 edaone@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