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주에 갇혀 8일 만에 죽음을 맞이한 사도세자와 그의 아버지 영조의 닳고 닳은 이야기를 아버지와 아들의 비극이라는 관점에서 푼 이준익 감독의 신작 '사도'(16일 개봉 예정)가 호평 일색이다. 딴지를 걸었다. "사극을 싫어하는 관객이 은근히 많은데 그 마음을 어떻게 돌리겠느냐"고 물었다. 돌아오는 답은 역시, 이준익 감독다웠다.
"모두가 다 좋아하면, 뭐 우리나라가 공산주의야? 다양성을 존중하는 게 필요해. 사극은 취향의 문제잖아. 싫은 데 강요하면 횡포일 수 있으니 강요하지 않아. 다만 '관객의 바람을 충족 못 시켰다면 기억해뒀다가 다음 영화에 어떻게 만회할까?'라는 생각은 항상 해. 그게 또 다음 영화를 찍는 에너지가 되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태도이고, 생각이야. 내 영화는 항상 모자란다고 생각해. 아마 죽는 날까지 모자란 부분이 있을 거야."
이 감독은 굳이 포장하려고 하지 않았다. 반감이 누그러졌다. 그러나, 한 번 더 딴지. '사도'는 너무 어둡고 무겁다. 어떤 순간에도 왕이어야 했던 아버지 영조(송강호)와 단 한 순간이라도 아들이 되고 싶었던 세자 사도(유아인), 역사에 기록된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가 가슴 아프다. 그런데 과연 이런 이야기를 관객이 찾아서 보려고 할까?
"인생은 반복된다. 아버지가 없는 아들이 없듯, 현재 우리의 이야기다. 또 자기가 아버지가 되어야 자기 아버지의 마음을 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 것뿐이다. 지금도 울컥한, 생각나는 장면들이 많다. 관객이 공감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긴 곤룡포만 입었을 뿐이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현재에 대입해도 무리가 없다. 대화가 단절된 가족의 이야기가, 생각하고 대화할 거리를 만들어 줄 것 같다.
이 감독은 영화 호평의 공을 배우들에게 돌렸다. 그는 "유아인의 첫 촬영이 대리청정 신이었다. 수많은 선배 앞에서 6분이 되는 그 장면에서 감정을 내뱉고 연기를 해야 했다. 첫 자리부터 시험대에 오른 것이었는데 문제없이 해냈다"며 "그때부터 나뿐 아니라 모든 배우, 스태프가 인정했다. 유아인이라는 배우가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더라"고 칭찬했다. 영빈 역의 전혜진이나, 인원왕후 역의 김해숙, 혜경궁 홍씨 역의 문근영, 어른 정조 역의 소지섭 등도 언급, "내가 더 중언부언할 필요 있나? 배우들에게 그저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고 만족해했다.
아, 한 명을 또 빼놓을 수 없다. 어린 정조 역의 이효제다. 관객의 눈물을 쏙 빼게 할 캐릭터다. 뒤주에 갇힌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슬퍼하며 할아버지에게 "자식이 아비한테 물 한 잔 드릴 수 없습니까?"라고 말하는 장면 등 울컥할 순간이 많다. 이 감독은 "소지섭을 삼고초려를 해 캐스팅했는데 수백 명을 오디션 봤는데 닮은 아이가 없더라. 거의 포기하다 싶을 때 이 친구가 나타났다"며 "'물 한 잔 드릴 수 없습니까?'를 몇 번 시켰다. 감정을 더 이입하라고 주문했고, 마지막에 터졌다고 생각했는데 이 친구가 주르륵 눈물을 흘리더라. '됐다'고 소리쳤다"고 회상했다. 이 감독의 바람대로 이효제의 연기는 깜짝 놀랄 정도다.
이 감독의 디렉팅 노하우도 눈길을 끌 만하다. 그는 "어떤 배우가 캐스팅되면 시나리오에 있는 캐릭터를 없애버린다"며 "각각의 인물에 그 배우를 집어넣는다. 그러면 가짜가 안 나오고 진짜 같다. 절대 대사 주문을 하지도 않는다.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게 최고"라고 짚었다.
'사도'는 웃음 포인트도 간혹 있지만 애써 누그러뜨리려고 한 느낌이다. 이 감독은 "웃음 포인트에 대해서는 신중했다"고 강조했다. "함부로 재주를 부리려고 하지 않았다. 250년 전 우리보다 먼저 치열하게 살고 간 분들에 대한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송강호라는 이 시대 걸출한 배우가 절박한 심장으로 내뱉는 대사가 현대와 맞아 떨어지는 지점이 있어 시종 어둡고 무거운 영화에 활력소로 작용했다."
이 감독은 "성공이 주는 교훈보다 실패가 주는 교훈이 더 오래 남는 법"이라며 "다행히 '소원'으로 관객과 소통한 면이 있다. 나도 일종의 치유를 했다. 우리 사회의 아픈 이야기를 했는데 '소원' 못지않게 또 아픈 이야기가 '사도'였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상처와 아픔, 불편한 진실을 전면으로 마주하는 자세가 그 상처를 치유하는 정직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그러면서 "'왕의 남자'는 대흥행이었다. 그런데 자기한테 분에 넘치는 성공이 오면, 그건 독과 함께라고 생각한다. 성공도 실패도 교훈으로 받아들인다면 화만 불러오지는 않을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jeigun@mk.co.kr/사진 강영국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