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는 말, 기분 좋은 칭찬인 것 같아요. 외모적인 칭찬보다도 뭔가 내면을 칭찬해주는 기분이랄까요?”
똘망똘망. 야무지고, 빛이 난다. 배우 김슬기(24)에게서 받은 세 가지 첫인상이다.
지난 여름 시청자들에게 꿈 같은 달콤함을 선사한 케이블채널 tvN ‘오 나의 귀신님’의 성공 비결은, 모범답안 같은 말이지만 대본-연출-연기 삼박자의 조화였다. 강선우, 나봉선 역의 조정석과 박보영의 활약이 컸지만 이들을 더욱 돋보이게 하며 스스로 빛난 주인공이 바로 김슬기였다.
“이젠 로맨스도 좀 해보겠다고, 분위기를 여성스럽게 바꿔봤어요.”
은근한 미소를 머금고 매일경제 스타투데이를 만난 김슬기에게선 신순애 특유의 딸랑거리는 방울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뽀글거리던 긴 머리를 굵은 웨이브로 펴고 앞머리 하나 잘랐을 뿐인데 분위기가 여간 다른 게 아니다. 역시 여자의 변신은 무죄, 여배우의 변신은 팔색조인가 보다. 그야말로 김슬기로의 완벽한 리턴이다.
‘오 나의 귀신님’에서 구천을 떠도는 귀신 신순애 역을 맡은 김슬기는 초·중반까진 유쾌한 모습을 주로 보여줬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어둠의 중심에 섰다.
“마냥 밝을 줄만 알았던 순애 캐릭터의 깊이를 보여줄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뿌듯했어요. 감정선이 변해감에 따라 나름대로 자연스럽게 변화를 줬어요. 처음에는 양쪽 귀를 싹 넘기고 발랄하게 나오다가 점점 어두워질수록 한쪽씩 귀를 가리는 거라던가. 깨알 같은 디테일이 있었죠.”
마지막회에선 많은 감정을 쏟아내며 ‘연기 종합 선물세트’를 보여준 김슬기는 “마지막회에서 이승을 정리하는 순애의 모습이 드라마를 마무리하는 내 감정과 비슷해서 그런지 더 몰입이 잘 되고 감정이입이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저를 의심하셨던 분들에게는, 제가 한을 푼 것 같고요. 미련이라면 아무래도 너무 큰 애착 때문에, 나에게 잘 맞는 이런 좋은 캐릭터로 좀 더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끝나버려서... 다음에 또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중이 기억하는 시작점은 ‘SNL코리아’의 욕쟁이 캐릭터 ‘뽀’지만 어느새 자기만의 색으로 주목받는 20대 여배우가 된 김슬기. 다수의 드라마스페셜과 ‘연애의 발견’에 이어 ‘오 나의 귀신님’까지. 그가 출연한 드라마엔 언제나 호평이 가득했다. 시청률이 대박 드라마의 기준이 아닌 만큼, 김슬기의 작품을 보는 심미안이 입증된 셈이다.
하지만 그는 극구 “운이 좋았던 것 뿐”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운이라 하기엔 유독 운이 좋은 것 같다’는 되물음에도 김슬기는 “사람마다 때가 있고, 시기가 있다면 나는 지금 차곡차곡 쌓아 올라가는 시기인 것 같다”며 말을 이었다.
“‘오 나의 귀신님’을 선택한 건, 작품이 재미있었기 때문이에요.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특별한 건 없어요. 운, 재능, 노력이 차지하는 비율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뭐 하나만으로 되는 건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노력이죠. 재능에 있어서는 감사한 일이고, 운도 감사한 거고요. 그런 식으로 따지면, 제가 한 것 보다는 운이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는 거겠죠.”
나봉선(박보영 분)은 신순애와의 운명적 만남을 통해 쭈구리에서 강한 인물로 거듭났다. 혹시 김슬기도, 어떤 계기로 인해 강해지게 된 경험이 있는지도 궁금했다.
“누군가의 영향을 받았다고 표현하긴 애매한 것 같고, 제 삶에 계속 일어나는 시련들을 통해서, 계속 내가 딛고 좋은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고요.”
“학교 다닐 때, 처음으로 뮤지션 ‘렌트’ 오디션을 봤어요. 2차까지 붙어서, 좋아했는데, 결국 떨어졌죠. 그 때 ‘더 좋은 게 오려나보다’. ‘인연이 아니구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실제로, 멀지 않아 ‘SNL’로 데뷔하게 된 거죠. 만약 뮤지컬을 했다면, ‘SNL’을 못 했을텐데. 그렇게 자기 짝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시련이, 내가 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 사람마다 그런 인연이 있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런 어려움을 극복해나간 것 같아요.”
그런가하면 김슬기는 MBC ‘일밤-복면가왕’에서는 연예인 판정단 누구도 맞추지 못한 복병 ‘3초면 끝 마스터키’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가는 필모그래피만큼, 김슬기는 조금씩 자신을 꺼내 보이고 있다.
이쯤되면 궁금하다. 도대체 그의 안에는 몇 명의 김슬기가 있는 걸까.
“그냥 제가 어떤 사람이라고 단정짓는 게 아니라, 다양한 (내면을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대화할 땐 이런 면이 있고, 친해지면 또 다른 면이 보이고. 연기할 땐 캐릭터에 맞는 옷을 골라 쓰는 것 뿐이죠. 성장하면서 그 모습이, 시기별로 변했어요. 중학생 땐 개구쟁이였고, 고등학교 땐 오히려 정반대의, 도도하고 낯도 가리는, 정적인 사람이었죠. 20대 초반부터 스스로 다양한 모습이 있다는 걸 제 정체성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런 면들이 고루 믹스되고, 모난 부분이 깎이고 하며 지금의 김슬기가 탄생한 거죠.”
아직도 보여주지 않은 모습이 많고, 얼마나 남았는지는 자신조차 알지 못한다. 그 자리에 정체된 게 아닌, 넓고 깊게 성장해가고 있는 김슬기이기 때문이다.
“종이 한 장 차이로, 어떻게 보면 보여드릴 게 없고, 어떻게 보면 보여드릴 게 많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저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나 가능성은 많을 것 같은데, 스스로 제가 항상 잘 할 것이란 자신감은 없어요. 지금도, 이번에 연기한 것도 돌아보면, 어떻게 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잠깐 뭐 돼서 한 것 같아요.(웃음)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마음이죠. 예전 작품도 찾아보면 항상 새롭죠. 이 땐 이랬었네 싶고요.”
물 흐르듯 담담한 한 시간 여의 인터뷰 말미, 캐릭터 변신에 대한 생각을 묻자 돌아온 답변은 역시나 김슬기스러웠다.
“나쁘진 않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그러려고 힘쓰진 않아요. 지금 제가 갖고 있는 것도 장점이고, 꼭 180도 변화하지 않아도, 늘 김슬기가 했던 캐릭터지만 못 본 김슬기를 보실 수 있던 것처럼 앞으로도 스며들듯이, 김슬기의 다른 면, 잘 하는 면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기회가 된다면 180도 다른 캐릭터도 연기해보고 싶죠.(웃음)”
이쯤 되니 ‘여자’ 김슬기도 궁금했다. “여자 김슬기요? 매력 쩔죠 하하. 그런 역할이 주어진다면, 많이 보여드릴게요 하하하.”
영화 ‘국가대표2’로 스크린 복귀를 앞두고 하키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는 그는 최근 MBC 단막극 ‘퐁당퐁당 LOVE’ 여주인공 캐스팅 소식을 알렸다. 김슬기가 작정하고 보여주면 얼마나 사랑스러운 로맨스가 나올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psyon@mk.co.kr/사진 유용석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