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손진아 기자] 테렌스 맬릭 감독이 영화 ‘나이트 오브 컵스’를 들고 귀환했다. 늘 깊이 있는 스토리와 메시지로 관객에게 긴 여운을 남겨주는 그가 더 철학적이고, 더 독특해진 신작을 스크린에 펼쳐놓는다.
‘나이트 오브 컵스’는 작가로서 성공과 부를 거머쥔 동시에 인생의 공허함에 빠져 끊임없이 쾌락만을 추구하는 릭이 진정한 삶의 의미를 통찰해 나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제6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노미네이트돼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며, 크리스찬베일, 케이트블란쳇, 나탈리 포트만 등이 출연했다.
영화를 연출한 테렌스 맬릭 감독은 ‘천국의 나날들’(1978), ‘씬 레드 라인’(1998), ‘트리 오브 라이프’(2011) 등을 통해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철학적으로 담아냄과 동시에 아름다운 영상미로 ‘영상 철학자’라는 별칭을 가진 인물. ‘나이트 오브 컵스’를 들고 귀환한 그는 이번에도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와 영상미가 담긴 작품으로 철학적인 메시지를 보낸다.
영화는 단순히 릭의 삶을 따라가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인생의 성공, 가족의 죽음, 불안정한 감정, 혼란 등 다양한 환경과 마주하는 릭의 삶을 그리며 그 안의 숨겨둔 수많은 메시지를 관객에게 던진다.
극 중 릭은 성공과 부를 모두 거머쥔 할리우드 최고의 작가로 삶의 목적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고, 동생의 죽음은 릭의 상태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든다. 이혼한 아내 낸시와 연인 엘리자베스 사이에서 더 큰 혼란을 마주하게 되는 그는 인생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쾌락을 추구하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들려준 왕자의 이야기를 기억하며 자신이 열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줄거리 상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테렌스 맬릭 감독 특유의 감성이 담긴 영상을 접한다면 ‘난해하다’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영상은 조각조각나버린 기억을 떠올리듯 조각나있고, 움직이는 형상이 담긴 그림만 지나갈 뿐이다. 배우들의 대사도 많지 않다. 그저 릭의 삶을 따라갈 뿐이고, 특히 릭으로 분한 크리스찬 베일은 목적 잃고 방황하는 인물의 복잡한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 조화를 이룬다.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는 ‘나이트 오브 컵스’에는 색다른 재미 요소가 숨어 있다. 바로 타로카드 패의 의미로 스토리를 풀어나간다는 점이다. 막연하게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을 ‘The Moon’(달: 불안, 비밀, 고통), ‘The Hermit’(은둔자: 진리, 조언, 고독), ‘The Tower’(탑: 비탄, 재난, 불명예, 전락) 등의 의미를 챕터 형식으로 소개하는 독특한 구성으로 영화에 담긴 철학의 이해를 돕는다.
이를 따라가다 보면 릭의 삶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인생에서 느끼는 공허함을 없애기 위해 무언가를 계속해서 갈구하는 삶, 욕망과 번뇌의 시달리는 삶 등을 표현하며 관객 스스로 내면의 여행을 할 기회를 제공한다.
118분 동안 가공되지 않은 인생의 순간들을 스크린에 수놓은 아름답고 몽환적인 영상은 삶의 전체를 꿰뚫어보는 통찰력 깊은 스토리를 완벽하게 표현한 ‘나이트 오브 컵스’만의 독보적인 매력으로 꼽을 수 있다. 물론, 작품의 이해를 돕기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타로카드에 담긴 의미를 미리 알고 간다면 내면의 여행을 조금 더 깊게 할 수 있는 팁이 될 것이다. 12일 개봉.
손진아 기자 jinaaa@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