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배우 김영훈은 순한 얼굴과는 달리, 이상하게도 ‘악역’과 인연이 많은 배우다. 스스로도 “극에선 항상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고 웃음을 터뜨릴 정도로 말이다. 그런 그가 사실은 장난기와 웃음이 넘치는 사람이라면? 그렇다. 김영훈은 그야말로 ‘반전 매력’의 소유자였다.
최근 종영한 MBC 일일드라마 ‘이브의 사랑’에서 문현수로 활약을 펼쳤던 김영훈은 120부작이라는 긴 마라톤을 끝낸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전 40부작부터 나와서 다른 분들보다는 훨씬 덜 힘들었다”며 손을 내저었다. 그는 건강 문제로 드라마를 하차하게 된 차건우 역의 윤종화를 대신해 차건우의 복수를 위해 신분을 위장한 차건식(문현수) 역을 맡게 된 것이다.
“그 친구(윤종화)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캐릭터를 만들어가야 하니 처음엔 부담도 됐다. 그래서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 끝에 사촌이라는 설정이 들어갔다. 의외로 제가 차건우 본인이라는 추측들이 많았는데, 그 궁금증을 이끌어내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제자신마저도 ‘나 차건우 아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기했다.(웃음) 나중에 반전을 준 것도 재밌었지만 시청자 분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아 그걸 보는 것도 즐거웠다.”
정체가 비밀에 싸인 문현수는 드라마에서 긴장을 조성하는 역할이었고, 후에는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반전’의 열쇠였다. 꽤나 까다로운 캐릭터임에도 김영훈은 “문현수를 연기하며 주어진 부분 안에서 최대한 재미를 주려고 노력했다”며 ‘이브의 사랑’표 블랙코미디를 언급했다. 실제로 ‘이브의 사랑’은 아침드라마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신선한 장면들로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물론 문현수는 베일에 싸여 있다 보니 긴장감을 줘야했다. 하지만 작가님의 의도 안에서 최대한 이 역할을 재밌게 해보려고 생각을 많이 했다. 디테일한 면에서 재미를 주려고 했는데, 유치해보일 수 있음에도 좋아해주는 분들도 많았고 SNS에서 그런 장면들이 화제를 모았다. 다행히 시청자 분들이 그런 걸 알아주신 거다. 제가 등장하면서 분위기 전환도 있었던 것 같고. 제 역할 자체가 베일에 싸여진 인물이라 다양한 접근이 가능한 것도 한 몫 한 것 같다.”
↑ 사진=이브의사랑 방송 캡처 |
순조롭게 촬영을 이어가던 김영훈은 후반부에 한 차례 위기를 맞았다. 촬영을 하던 중 얼굴에 큰 부상을 입었기 때문. 김영훈은 “말하기 쑥스러운데”라고 말을 아꼈지만, 당시 상황은 20바늘을 넘게 꿰맬 정도로 심각했다. 김영훈은 “몸이 아픈 것보다 마음이 쓰렸다”고 입을 열었다.
“구강모 역을 맡은 이재황 씨와 격투 신이 있는데 합이 잘 안 맞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 한 4일 동안 촬영을 못 하다가 반창고와 붓기를 안고 촬영에 임했다. 제가 술 마시고 부은 얼굴처럼 나온 그 장면들이 다친 후다.(웃음) 사실 심적으로 힘들었다. 다친 것 때문에 대본도 수정했고, 하고 싶은 연기들도 자유롭게 하지 못했다. 하지만 스태프들 덕분에 무사히 촬영을 끝냈다. 멍도 CG로 지워주고, 동선도 제 위주로 짜주면서 배려해줬다.”
그의 입술 근처에는 아직도 흉터가 남아있었다. 이를 보며 김영훈은 “‘이브의 사랑’이 새겨진 입술”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제가 다친 채로 어디 가면 주부님들께서 이게 드라마 설정인줄 알고 엄청 물어보셨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아침드라마가 처음인 김영훈은 “아침드라마의 위력이 이 정도일 줄 몰랐다”고 엄지를 치켜올렸다.
“물론 ‘이브의 사랑’을 하면서 상처도 남았지만, 드라마를 좋아해주시는 시청자 분들을 얻었다. 아침드라마 시청자 분들은 캐릭터에 이입해서 함께 욕도 해주고, 사랑도 해주는데 전 이런 걸 처음 느꼈다. ‘아침드라마의 힘이 이거구나’ 싶더라. 부모님께서 다른 드라마에 출연할 때에는 별 말씀 없으시다가 ‘이브의 사랑’ 출연하고 나니 ‘네 얘기 많이 듣는다’고 말씀하시더라.(웃음)”
그는 ‘이브의 사랑’을 하면서 시청자와 함께 ‘사람’이 남았다고 말했다. 김영훈은 “중간에 들어온 저를 위해 따로 자리도 마련해주고 늘 배려해주는 배우들, 스태프들이 정말로 고마웠다”며 회상했다. 하지만 미니시리즈를 주로 하던 김영훈에게 ‘아침드라마’라는 영역은 조금 낯설 수도 있었을 터. 무엇보다 ‘아침극’이라는 편견이 그를 주저하게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고민?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안 해본 장르니까. 중요한 건 전 배우고, 배우는 연기를 하는 사람이다. 물론 좋은 이미지나 캐릭터를 골라서 하면 좋겠지만, 전 배우로 먹고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이다. 과거에 그러지 못했을 때가 있었고, 많은 분들이 그러지 못한다는 걸 아니까. 많은 스태프들과 함께 하고, 많은 분들에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면 그게 어떤 것이든 정말 소중하다. 그래서 지금도 고민이 들 때마다 항상 그 ‘소중함’을 떠올리곤 한다.”
그 ‘소중함’의 연장선상으로 김영훈은 ‘악역’을 꼽았다. 그는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송혜교의 약혼자 역할로 등장할 때에도, ‘못난이주의보’에 출연했을 때에도 ‘썩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김영훈은 “운명처럼 나쁜 역할이 들어왔다”며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연기라지만, ‘인간 김영훈’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그 이미지가 곧 김영훈이 돼 버린다. 그도 그걸 알고 있었다.
“나쁜 역할을 많이 하니 사람들이 절 무서워하는 것도 생기더라. 연기하는 걸 감사하며 살지만, 악역이 들어오면 살짝 고민이 되곤 한다. 그럴 때면 ‘정신 차리자!’고 스스로에 외친다. 하지만 저를 좋아하는 분들에 좀 더 재밌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결국엔 나쁜 모습만 보여줘서 죄송스럽고 미안하다. 팬분들이 자랑할 수 있을 만한 착하거나 재밌는 역할을 하고 싶은데.(웃음) 그거 하나가 아쉬울 뿐이다.”
그럼에도 김영훈은 특유의 긍정 마인드를 소환해 금세 “아직 보여드릴 모습이 더 많다는 뜻 아니겠나”며 웃음을 짓는다. 그의 장난기 어린 미소에 문득 집안의 백수 삼촌과 같은 헐렁한 이미지가 스쳐 지나갔다. 이 말을 들은 김영훈도 “그런 역할 정말 잘 할 수 있는데”라며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원래는 제가 정말 재밌는 사람이다. 앞으로 보여드릴 기회가 많으니 포기하지 않을 거다. 연기를 하면서 때론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주위에 있는 분들이 절 생각해주시고, 절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게 그저 감사했다. 주변에서 절 찾아주는 것, 그 감사함이 저를 버티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그 원동력으로 지금까지 한 작품, 한 작품 채워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말 사이 사이에 “감사하게도”란 말을 입에 올렸다. 그저 배우라는 본분에 최선을 다할 수 있음에 늘 감사하다고 김영훈은 말했다. 그는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하고 소중하다는 걸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절실하게 깨닫고 있다”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는 지금이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악역’의 쓴 웃음 뒤에 이렇게 행복한 미소를 짓는 김영훈, 그의 ‘반전’이 참 반가울 뿐이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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