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안녕하세요, 배우 김해림입니다. 지난 11월 종영한 MBC 일일드라마 ‘딱 너 같은 딸’에서 주인공 마인성(이수경 분)이 있는 영업개발팀 홍일점인 이수혜 역으로 인사드렸었어요. 커리어우먼 역할이 처음이라 정장을 입었는데, 정말 새롭더라고요. 이런 기회 아니면 언제 이렇게 정장을 자주 입을 수 있을까 생각이 들어요. 캐릭터가 워낙 ‘특이한’ 성격인데, 정말 이수혜로 살면서 평생 부릴 신경질을 다 부린 기분이 든다니까요.(웃음)
◇ 이렇게 ‘싸가지’ 없는 캐릭터, 언제 또 해보겠어요?
‘딱 너 같은 딸’의 마인성과 달리, 이수혜는 옷에도 관심이 많고 주인공인 마인성의 연애 코칭도 해주는 역할이었어요. 살짝 밝히자면 제가 같은 팀원인 민철이와 소정근(강경준 분) 대리님의 동생인 소승근(정우식 분)과 러브라인이 있었어요. 염문이 많은 캐릭터랄까.(웃음)
원래 소승근과 러브라인이 있는 분량이 정말 재밌는 장면이 많았거든요. 소승근과 이수혜가 만나면 재밌는 그림이 될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나중에 그 설정이 빠졌어요. (정)우식 오빠도 엄청 아쉬워 하더라고요. 물론 주인공들의 얘기가 많아서 어쩔 수 없었지만 못내 아쉬운 건 사실이랍니다. 그 장면이 정말 대본만 봐도 깔깔 웃을 정도로 재밌었는데 말이에요.(웃음)
물론 그 러브라인이 빠져 아쉽긴 했지만 ‘딱 너 같은 딸’을 촬영 하는 내내 너무나 재밌었어요. 이수혜가 정말 극중에서 ‘빡빡’ 소리를 지르고, 되바라지고, 싸가지 없는 캐릭터였거든요. 언제 제가 이렇게 내키는 대로 소리를 질러보겠어요.(웃음) 그렇게 화를 내는 대도 누구도 뭐라 하지 못하는 캐릭터라는 게 참 매력있더라고요. (강)경준 오빠나 (이)수경 언니도 ‘참 수혜는 한결같다’고 즐거워하셨어요.
수혜와 실제의 저와의 싱크로율이요? 물론 저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는 스타일이지만 수혜처럼 그토록 ‘개의치 않아’하면서 내지르진 않아요. 생각보다 제가 내향적인 편이기도 하고요. 옷이나 화장에도 관심이 별로 없는데 수혜는 패션 브랜드에 근무하는 ‘패셔니스타’거든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지금 생각해보니 저와 참 많이 다른 친구였네요.(웃음) 전 정말 수혜를 재밌게 연기했어요. ‘내가 어디까지 신경질을 낼 수 있나 보자’ 싶었다니까요.(웃음)
◇ ‘일일드라마’, 20대 때 정말 많이 해보고 싶어요
그동안 드라마 하면서 선생님들과 이렇게 연기를 해본 적은 없었는데 ‘딱 너 같은 딸’을 하면서 정말 많은 선배님들을 뵙고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본받을 점이 정말로 많단 생각을 했어요. 특히 김혜옥 선생님이 세트 촬영을 하시는 걸 봤는데, 새벽 늦은 시간이라 힘드셨을 텐데도 싫은 내색 한 번 안 하시고 화기애애하게 분위기를 이끄는 게 정말 멋있어 보이고, 책임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어요.
강경준 오빠는 급박하게 나오는 대본에도 흔들림 없이 소정근 대리라는 캐릭터를 꾸준히 끌고 가더라고요. 저는 사실 수혜를 조금 ‘놓친’ 적이 있었기에, 경준 오빠가 ‘멀리 보고’ 설정을 잡으면서 흔들리지 않게 가는 걸 보고 많이 배웠어요. 많은 분들을 보고 배우면서 일일드라마에 대한 욕심이 더 커졌어요. 힘은 들지만 정말 얻는 게 너무나도 많더라고요.
물론 100회가 넘는 일일드라마를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죠. 하지만 20대 때 체력이 한창 좋을 때 더욱 많이 해보고, 배우고, 익히고 싶어요. 연기적으로도 그렇지만, 어른들을 대하는 법이나 배우로서의 마음가짐도 배울 수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 ‘가족 같음’이 정말 남달랐어요. 막바지에 경준 오빠가 함께 영업개발팀 배우들에 “정말 이제 우리 한 ‘팀’ 같다”고 감탄하시더라고요. 리액션이 딱딱 맞으니까 진짜 팀 같은 거예요. 참 뿌듯하더라고요. 6개월이란 시간이 흐르면 이렇게 되는 구나 생각도 들고요. 일일드라마의 매력 아닐까 해요.
◇ 중간에 잃었던 수혜, 그 경험 때문에 제가 있죠
사실 극이 진행되면서 수혜를 중간에 ‘놓치기’도 했어요. 진행되면서 극이 생각과는 조금 다르게 향할 수도 있잖아요. 이렇게 긴 드라마를 찍어보는 것도 처음이니 ‘이렇게 가는 게 맞나’ 싶더라고요. 혼자 쓸데없는 걱정을 한 거죠. 멀리 보지 못하니 믿음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믿고 끝까지 수혜를 끌고 갔어야 했는데요. 늘 남 눈치 안보고 되바라진 수혜가 아닌 다른 수혜를 표현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었죠.
하지만 TV로 보고 나서야 제가 다르게 표현했던 수혜가 정말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일주일 치를 보면서 깨달았어요. 풀 죽고 착한 척 하는 수혜는 수혜가 아니라는걸요. 그래서 서둘러 다시 수혜로 돌아갔죠. 다시 소리 지르고, 화내고, 눈치보지 않고요. 그 경험을 통해 저를 믿는 법을 배웠어요.
그러면서 생각했죠. 연기는 ‘내’가 아닌 ‘남’을 연기하는 거잖아요. 나도 다 알 수 없는 노릇인데, 나보다도 모르는 타인을 연기하려면 철저히 ‘믿을 수 밖에’없다는 걸요. 그 때 제가 수혜를 못 믿었던 게 화근이었어요. 타인에 의구심을 가져버린 게 큰 문제였어요. 일일드라마를 하면서 정말 배울 게 많다니까요.(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출연했던 드라마 ‘학교2013’에서도 후회되는 게 있어요. 그 때 ‘개성있었다’는 말을 들었지만, 너무 제 모습만 보이려고 노력했던 거예요. 함께 무리를 이뤘던 ‘외모파’ 4인방과의 융합이 있었으면 우리들의 이야기가 더욱 재밌었을 텐데 싶더라고요. 그 드라마는 정말 제 연기인생의 ‘학교’였어요. 그 당시에는 저만 튀면 안 되는 줄 몰랐죠. 나는 보이는데 제가 나오는 이야기들은 재미가 없으니 관심이 안 가더라고요. 남을 눌러버리니 재미를 함께 눌러버린다는 걸 그 때 알았어요.
그렇게 ‘융합’의 중요성을 알고 나서 ‘딱 너 같은 딸’을 하며 그 깨달음을 제대로 실천한 것 같아요. 제 러브라인이 사라졌지만, 어쨌든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제 몫이 전체가 융화되는 과정 중 하나였으니까요. 이젠 저도 알아요. ‘장면’이 살아야 ‘배우’도 산다는 걸요.
◇ 후학양성을 꿈꾸던 김해림, 배우에 푹 빠지다
제가 계속 연기를 공부했지만, 사실 대학 입학할 때만 해도 ‘후학양성’이 꿈이었어요. 연기를 직접 하기보다는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죠. 그러다 우연히 2010년에 ‘매리는 외박중’이라는 작품에 두 번째 미팅에서 캐스팅이 ‘덥석’ 된 거예요. 그 때 감독님께서 ‘다른 것보다 패기가 마음에 든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모습 그대로 갔으면 좋겠다’고 조언해주셨어요. 참 운이 좋았어요.
그 때부터 고민을 했죠. 학자를 꿈꿨는데 갑자기 배우가 됐으니.(웃음) 내게 맞는 길인지 치열하게 고민했고, 그런 고민들이 저를 크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지금은 배우가 참 마음에 들죠. 결국은 욕심이 붙더라고요. 예전엔 스스로에 ‘왜 하냐’고 물으며 참 많이도 울었어요. 그런 고민들을 거치니 점점 ‘하고 싶다’로 바뀌더라고요. 돌이켜보면 전 참 자신감이 없었던 아이였어요. 사투리 때문에 예고를 다닐 때 고생도 많이 했고, 저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겨 틀에 자꾸 갇히게 됐고요.
사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못한다’는 소리를 듣기가 싫었던 것 같아요. 자신감이 없으니 어떤 걸 해도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기준이 됐고요, 그러다보니 남들 앞에서 연기를 하는 게 무서웠었어요. 즐겁지 않았고요. 하지만 뜻하지 않게 배우를 하면서 그 틀을 깨고 연기가 더 이상 무섭지 않더라고요. 혼나는 걸 어떻게 ‘받아들이면’ 되는 건지를 배웠어요. 그러다보니 연기가 점점 재밌어지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장면이 나올까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더 늦게 이걸 깨달을 수 있었는데, 지금이라도 알게 돼 감사할 따름이죠.
◇ 고이지 않는 배우, 생활력 있는 배우
저의 꿈이요? 저는 ‘고이지 않는 배우’가 되는 거예요. 말은 쉬운데 힘든 일이니 잘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언젠가는 저도 ‘무언가를 받아들이기 힘들’ 때가 오겠죠. 그 때 지금 이 인터뷰를 보면 다시 ‘흘려내릴’ 수 있는 마음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최근에도 전에 제가 써놓은 ‘좋은 배우가 되기’라는 글을 봤는데, 반성이 들더라고요. 언제나 그렇게 제 기록을 다시 돌아보는 사람이고 싶어요.
또 다른 하나는 ‘생활력이 있는 배우’가 되는 거예요. 쉬지 않고 나이가 먹어서도 연기를 하고 싶어요. 제겐 직업이고, 꾸준히 해야 하는 건데, 그게 바로 ‘생활력이 있는’ 거거든요. 전 아직 저만의 ‘무언가’를 찾고 있어요. 그 ‘무언가’가 뭐가 될진 모르겠지만, 지금은 ‘향기 없는 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무언가’를 찾아줄, ‘향’을 씌워줄 역할을 언젠가는 운명적으로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게 어떤 역할이든 간에, 저만의 향을 찾은 그 순간 저는 한 걸음 더 성장한 배우가 돼 있겠죠? 그러니 그 때까지는 어떤 역할이라도, 어떤 것이라도 닥치는 대로 다 흡수하고 해보고 싶어요. 이런 저, 욕심쟁이인가요?(웃음)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디자인=이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