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이다원 기자] ‘헬조선’이란 키워드가 화두로 떠올랐지만, 뉴스나 교양 프로그램 이외 예능, 드라마 등에서 이런 현실이 반영된 작품을 찾아보긴 어렵다. 오히려 웃음이 가득하고 판타지가 펼쳐진 작품이 득세를 하고 있는 상황. 이에 대해 방송 제작 일선에 있는 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 “예능이나 드라마를 보는 이들은 현실 문제를 잠시 잊고 싶기 때문 아닐까요?”
SBS 이영준 PD는 ‘헬조선’ 코드를 예능 프로그램에 담아내기는 어렵다고 조심스레 선을 그었다. 웃음을 기반으로 한 장르 특성상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웃음으로 승화하기엔 매커니즘상 어렵다는 설명이다.
“제작자 입장에선 물론 블랙코미디나 시사문제를 철학적으로 깊이 파서 예능으로 접근하고 싶은 마음도 있죠. 하지만 불특정 다수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사회 문제 하나를 예능화해도 누군가에게는 재미있을 수 있지만 반대쪽 사람에겐 상처가 될 수 있거든요. 잘못 터치했다간 더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요.”
↑ 디자인=이주영 |
예능 프로그램 시청자가 원하는 건 심각한 다큐가 아니라는 견해도 있었다. 케이블채널의 유 모 PD는 “시청자들이 TV에서까지 현실의 각박함을 들여다보길 원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싶다. ‘힐링’을 받고 싶어 TV를 켜는 게 아닐까”라고 설명했다.
이 PD 역시 “심각한 사회문제를 파헤치는 걸 보고 싶다면 시청자가 다큐멘터리를 선택하지 않았겠느냐”며 “예능이나 드라마를 보는 목적의식이 이와 다른 것 같다. 일부는 자신의 문제를 잠시 잊고 싶기 때문에 예능 채널에 손을 대는 것”이라고 뜻을 함께 했다.
다만 제작진들이 간과할 수 없는 점이 있다. 사회적 불안정한 분위기 속에서도 웃음만 추구하다간 현실적으로 힘든 어떤 이에겐 ‘난 힘든데 지들끼리 신났다’며 상대적 박탈감만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PD는 “연예인이 일반인과 다르다는 점을 부각하거나 잘못된 판타지를 심어줄 수 있어서 현실 반영과 웃음 제조 사이에서 줄타기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 “‘쿡방’은 ‘헬조선’ 영향으로 파생된 트렌드”
대중문화평론가들도 ‘헬조선’이란 코드와 방송의 상관관계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내놨다.
정덕현 평론가는 “‘헬조선’은 사회에 대한 실망감, 불신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TV 콘텐츠도 다수 파생됐는데, 자신이 꿈꾸는 걸 사회가 받아주지 않는 구조에서 TV에서라도 실현 가능한 아이템을 보고 싶다는 열망이 ‘쿡방’이나 ‘먹방’의 인기로 이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콘텐츠들이 ‘헬조선’ 청춘들의 심리적 요구로 파생됐지만, 이후 사회 문제를 되짚거나 돌아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하재근 평론가는 “드라마는 판타지를 그리는 장르라서 재벌, 신데렐라가 많이 나오고, 예능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 보면 대중은 점점 TV 콘텐츠로부터 멀어지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물론 대중이 감각적인 자극들에 금방 반응하기 때문에 제작진이 이런 류의 프로그램 제작에 쏠릴 수 있지만, 이런 것이 누적되다 보면 결국 예능이나 드라마가 현실과 동떨어지고 공허하다는 느낌을 주게 될 것”이라며 “독재시절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한 TV를 ‘바보상자’라고 불렀던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제작진이 각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다원 기자 edaone@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