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프랑스)=MBN스타 최준용 기자] 댕기머리에 앞치마를 두른 한복,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뛰어다니던 하녀 숙희는 온 데 간 데 없고, 붉은 색 원피스를 입고 긴 머리를 얌전히도 늘어뜨린 싱그러운 그녀가 쾌활하게 미소 짓고 있다.
김태리는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아가씨’(박찬욱 감독)를 통해 생애 첫 세계적인 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았다. 이제 갓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며 연기자로 첫 발을 내딛은 김태리. 신예에게 있어 쉽게 경험하지 못할 칸 국제영화제 레드카펫과 공식 스크리닝의 경험. 무거운 부담감이 양 어깨를 짓누를 법도 하지만 애초에 그에게 있어 주눅이란 단어는 존재치 않았던 것처럼, 담대했다.
“전 무척 긴장했는데, 레드카펫 행사 때 제 모습을 보고 모두들 ‘떨지 않고 현장 분위기를 잘 즐겼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제가 처음이고, 두려움도 있어서 제 방안에서 가져온 모든 옷을 다 입어보고 포즈 연습을 많이 했어요. 옷을 고르고, 그 옷에 맞는 최적화 된 포즈를 연구하고 실제로 실행했죠.(웃음) 사실, 레드카펫 전 포토콜 행사 때 너무 흥분상태였던 것 같아, 레드카펫 땐 조금 자제하고 자연스러운 미소를 보여주려고 노력했어요.”
20대 여배우의 기근현상이 심하다는 연예계에 혜성같이 대중 앞에 등장한 김태리. 그의 모습은 신선함 그 자체다.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도였던 그가 칸 레드카펫을 밟기 까지 어떤 과정들이 있었을까.
“대학교를 들어가서 연극 동아리 활동을 하게 됐어요. 무대 위에 오르기까지 과정이 재밌고, 조명이 켜지고, 암전되고 관객들의 박수까지 그 모든 것이 좋아서 배우를 꿈꾸게 됐죠. 졸업할 때 쯤 대학로에 작은 극단을 알게 됐어요. 근데 신입을 뽑지 않는다고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결국 끈질기게 전 버텼고, 어느 순간 연출 분께서 저를 극단 막내라고 소개해주시더라고요. 극단 활동을 하다가 지금의 매니저를 만났고, (박찬욱) 감독님까지 뵙게 된거죠. 제가 칸에 간다고 했을 때 저보다 극단 연출 분과 선, 후배 지인들이 더 좋아해주시더라고요.(웃음)”
‘아가씨’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 귀족 아가씨와 아가씨의 재산을 노리는 백작, 그리고 백작에게 거래를 제안 받은 하녀와 아가씨의 후견인까지, 돈과 마음을 뺏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영화 속에서 김태리는 도둑의 딸로 태어나 장물아비에게 길러진 고아 소녀 숙희 역으로 분했다. 숙희는 아가씨의 재산을 가로채려는 백작의 계획에 가담하지만, 자신을 아껴주는 아가씨를 향한 진심과 백작과의 거래 사이를 줄타기하듯 오가며 스토리를 흥미진진하게 이끄는 인물이다. 하녀 숙희 역만큼은 새로운 얼굴을 캐스팅하고자 했던 박찬욱 감독의 뜻에 따라 진행된 ‘아가씨’ 오디션에서 김태리는 무려 1,500: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됐다.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고, 역할도 크잖아요. 솔직히 제가 (캐스팅)될 거란 생각도 없었는데, 막상 부름을 받아 감독님과 얘기 나눌 때도 제가 이 역을 맡아 영화에 보탬이 될 수 있을지 걱정이 됐어요. 분명 못하고, 누가 되는 부분이 있을 텐데, 주저했죠.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이 감독님의 디렉션이었죠. 감독님이 정확하게 원하는 바를 구현해 나가는 이야기 있었고 그래서 제가 막힐 때 마다 정확하고 탁 짚어주는 디렉션 주셨죠. 제게 굉장한 행운이었죠.”
당초 ‘아가씨’의 공개 오디션에서는 ‘노출수위 협의 불가’란 문구가 화제가 됐다. 이에 대한 김태리의 생각은 어떨까. “그 문구 자체가 쉽게 접근하기 보단 조금 더 자신감 있고 담대한 그런 사람을 원했기 때문에 내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1500명되는 다른 분들도 그런 마음으로 참여했을 거예요. 그러나 실제론 충분히 협의하면서 진행했고요. 감독님이 정확하게 원하는 지점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고, 서로 소통을 충분히 하고 촬영했죠.”
그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하녀 숙희 역과 헤어지기 어려웠다고 한다. 배우 김태리에게 있어서 숙희는 그런 느낌이다. 많이 사랑했고, 영원히 잊지 못하는 쉽게 떠나보낼 수 없는 그런 느낌 말이다.
“마지막 촬영을 앞두고 숙희로 분장한 뒤 거울을 봤는데, 헤어지기 싫은 느낌을 계속해서 받았어요.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죠. 계속해서 촬영을 하고 싶은 느낌이랄까. 아쉽더라고요. 가슴 뭉클한 그런 느낌이죠.”(인터뷰②에서 이어집니다)
최준용 기자 cjy@mkculture.com / 트위터 @mkculture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