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럽게 생경하다. 에픽하이가 벌써 데뷔 14년이라니.
2003년 혜성같이 등장한 힙합 3인조 에픽하이(타블로, 미쓰라진, DJ투컷)의 재기발랄한 음악적 합(合)은 당대 가요계를 상당히 풍성하게 했다. 특유의 독특하면서도 공고한 사운드는 기존 힙합 뮤지션들과 또 다른 그들만의 개성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이처럼 한 때 ‘대세’로 칭해지던 시절도 있었지만, 2016년 7월 이들의 현 주소는 냉정히 말해 최고조의 주가를 달리던 그 시절보단 주춤해 보인다. 가요계의 아이돌 그룹 편중 현상은 심화됐고, 힙합 장르에서도 걸출한 후배들이 차트를 휩쓸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세대 교체 바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다만, 현 시점의 에픽하이는 적어도 실력 면에선 ‘리즈 시절을 경신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누군가의 전성기를 평가하는 기준이나 성적을 산정하는 시각은 다양하지만 공연형 뮤지션으로서 에픽하이를 바라봄에 있어서 분명한 건,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잘 커왔고, 잘 지켜왔다는 점이다.
비록 새 앨범 소식은 2년째 뜸하지만 음악적 행보에는 쉼이 없다. 특히 지난해 여름 실험적으로 선보여 호평 받았던 ‘현재상영중’ 콘서트는 올해도 계속된다.
침체된 공연계 현실 속에서 단독 콘서트를 계속 선보인다는 것 자체가 녹록하지 않은 일이나 “공연이 너무 재미있다”는 말 앞에 장사 없다. 단순히 그들만의 재미 추구를 위함이 아닌, 콘서트의 지평을 넓혀가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들이 내놓는 결과물은 꽤 높은 평가를 받을만 하다.
“20대 땐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많았다면 이제는 우리 음악을 듣고싶어 하는 분들과 만나고 싶다”는 에픽하이. 한창 앞만 보고 빠르게 달리던 시절을 뒤로 하고 어느덧 옆도 뒤도 돌아보며 천천히 가는 여유(혹은 연륜)를 갖게 된 이들은 지난 21일, ‘현재상영중 2016’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데뷔 초창기의 무대를 자신들의 레전드로 꼽았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공연”이라 소개한 이 공연은 놀이동산 동물원에서 진행된 무대였다. 이들이 무대에 오른 순간 관객은 단 일곱 명. “잃을 게 없다는 마인드로 즐겼다”는 이들의 무대는 결국 공연 말미 현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로 “기적 같은 상황”이 연출됐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광경이 올해 초, 미국에서 재현됐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당시 처음 에픽하이의 무대를 보러 공연장을 찾은 관객이 불과 15명이었는데, 끝날 때 즈음 몇천 명의 관객으로 불어났다는 것.
에픽하이가 공연의 마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이자, 이들의 유려한 성장곡선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례인 셈. 어찌 됐건 “가수가 해야 하는 최우선의 일이 신곡 발표지만 동시에 (공연을 통해) 관객과 팬을 만나는 일 역시 최우선”이라는 바람직한 신념 덕분에, 팬들은 그저 즐거울 따름이다.
한편 총 8회에 걸쳐 진행되는 ‘현재상영중 2016’은 ‘전기영화’, ‘스포츠’, ‘생존드라마’, ‘호러’, ‘사극’, ‘느와르’ 등 총 6가지 테마로 분류, 온라인 사전 투표와당일 현장 투표 결과를 합산해 에픽하이가 공연 직전 콘셉트를 확정하는 관객 선택형 콘서트다. 22일부터 24일, 29일부터 31일까지 총 6일에 걸쳐 8회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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