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배우 김소연에 연기란 무엇일까. 그는 “날이 갈수록 절실해지는 것”이라고 답한다. 데뷔한지 20년이 지난 배우의 입에서 나온 ‘절실’이란 단어가 왜인지 생소하다. 하지만 ‘절실함’을 이야기하는 김소연의 표정이 진지했다. 어느 때보다 진심이었다.
김소연은 최근 종영한 MBC 주말드라마 ‘가화만사성’에서 봉해령으로 출연하며 8개월 동안 주말마다 시청자들을 만났다. 이렇게 긴 작품을 하는 게 처음이라는 그는 “스스로에 인색한 편인데 8개월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은 제 체력에는 꼭 칭찬을 해주고 싶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칭찬이 넘쳐 흐르는데 김소연은 자신에게만큼은 ‘깍쟁이’였다.
↑ 사진제공=나무엑터스 |
“‘로맨스가 필요해3’이 끝나고 한동안 캐릭터에서 못 빠져 나왔다. 여섯 살 연하와 사랑에 빠진 신주연이 끝까지 행복했을까 싶은 거다. 그 여자를 브라운관에 홀로 두고 온 기분이랄까. 한 달을 울었다. 그리고 나서야 제가 잘못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스스로에 칭찬도 해주면서 캐릭터를 훌훌 털어버려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그래서 이번 작품을 끝내고는 내게 ‘무사히 잘 끝냈다’고 칭찬해줬다.”
그에게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아무래도 ‘납골당 신’이었다. 자신의 아들이 있는 납골당에서 전남편 유현기(이필모 분)의 시한부 사실을 알고 오열하는 장면이다. 김소연은 “그 장면이 방송에 나오기 직전까지 편집실을 드나들 정도로 걱정을 정말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방송이 끝난 후 쏟아지는 ‘칭찬 문자’들을 보며 그는 자신의 ‘페이스메이커’들을 더욱 믿게 됐단다.
“내가 어떻게 해도 음향이나 연출 등이 제 연기를 ‘매만져’준다. 감독님, 음향감독님을 비롯한 제작진이란 저의 ‘페이스메이커’들을 믿고 과감하게 가야겠다 싶더라. ‘복습은 그만하고 예습을 하자’란 생각도 들고. 그래서 그 다음에 서지건(이상우 분)에 ‘내 아들, 네가 죽였니’라고 묻는 그 장면에선 그렇게 했다. 그 장면을 찍기 전 거울 속의 나를 보며 ‘김소연, 이 대사 하나 하러 그 수많은 밤을 달려온 거야’라며 날 다독이고 촬영했던 게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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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화만사성’을 통해 김소연은 참 많은 도전을 했다. 처음으로 ‘엄마’가 됐고, 51부작의 ‘주말드라마’를 했다. 분명 고민이 많았을 터였다. 그는 “저 또한 당연히 고민이 있었다”고 입을 열었다. ‘혹시나 청춘물을 못하게 되지 않을까’ ‘엄마 역할을 감히 할 수 있을까’와 같은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고. 하지만 그는 “고민을 했던 그 때의 내가 바보같다”고 말했다.
“모든 직업이 그렇지만, 특히 배우는 ‘이 순간이 아니면 안 되는’ 직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순간의 선택을 할 때 고통스럽다. 특히 30대 여배우로서의 고민을 정점으로 하고 있을 때에 ‘가화만사성’ 제안을 받아 평소보다 더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드라마를 하고 나니 오히려 ‘누릴’ 게 많아졌다. 배역도, 시야도 넓어졌다. 왜 고민을 했을까 싶다.”
[M+인터뷰①] 김소연 “‘가화만사성’, 제겐 꼭 필요했던 작품”
[M+인터뷰②] 이필모부터 조진웅까지…‘칭찬천사’ 김소연이 말했다
김소연은 “나이가 들수록 배우에겐 더 좋은 상황들이 올 수 있겠단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혹시나 ‘가화만사성’ 이후 더 배역의 폭이 좁아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김소연의 영역은 더욱 ‘넓어졌다’. 김소연에게 ‘조급함’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이제 앞으로 더 다양한 역할로 시청자 혹은 관객과 만날 김소연, 그에게 ‘연기’를 물었다. 그랬더니 의외로 ‘절실함’이란 단어가 돌아왔다.
“연기를 잠시 쉬었던 적이 있다. 그 ‘바보 같은’ 시절이 7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그 때가 안 잊혀진다. 그 이후로 절실함이 생겼다. 그 공백기는 저를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밟을 때마다 송곳ㅊ럼 아프다. 다시 ‘초심’을 일으킨다. 한 해가 갈수록 그 절실함은 커진다. 내가 맡은 이 ‘기회’가 정말 쉽게 오지 않는다는 걸,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하게 느낀다.”
↑ 사진제공=나무엑터스 |
김소연은 “이 신은 오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자다가도 일어나 대본을 찾게 된다”며 ‘지금의 소중함’에 대해 말했다. “과거가 약이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를 더 다잡게 된다”고 말하는 그는 “60여 명의 스태프들이 ‘컷’ 소리를 위해 더워도, 추워도 견디는 걸 보면 제가 잘해야겠단 생각밖에 안 든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내는 김소연에 40대가 기대되냐 물었다. 아직 상상을 해본적은 없지만 “참 많이 열렸다”고 그는 말했다.
“‘가화만사성’을 통해 ‘문’이 열린 기분이다. 제 생각이 많이 열렸다. 두려움이나 역할의 제한도 많이 사라졌다. 사실 스스로에 연기적으로 대중적인 부분이 부족하다고 판단했었다. 시청률이란 잣대에 좋은 작품들이 외면 받는 게 아쉬웠다. 하지만 ‘가화만사성’을 하면서 이렇게 모든 분들이 반가워해주는 건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그런 ‘대중성’에 대한 갈증이 좀 해소된 것 같아서 감사하다.”
김소연은 “한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지만, 40대에도 꾸준히 연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제작발표회에서 “‘가화만사성’을 끝내고 나면 제 2의 연기인생이 펼쳐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던 김소연. 아직 ‘열렸다’고 확신할 수 없지만, 분명 그 ‘제2의 연기인생’으로 향하는 문고리를 잡은 것만은 확실한 듯 하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