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만리(牛步萬里: 우직한 소의 걸음이 만 리를 간다)’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목표를 세운 뒤 이를 차근차근 실행해나간다면 언젠간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너무 빨리 속도를 내면 금방 지치는 법.
배우 정해인이 그렇다. 천천히 걸어야 오래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겨우 3년차 신인 배우인데 속에는 30년차 베테랑 배우가 들어앉아 있다. 단지 천천히 가는 것이 아니라 왜 천천히 가야하는지 확신에 가득차 있다.
그런 그가 러브콜을 받은 작품은 김수현 작가의 SBS 주말드라마 ‘그래, 그런거야’였다. 정해인은 집안의 귀여운 막내아들이자 대가족의 막내 손자 유세준 역을 맡았다.
‘그래, 그런거야’는 대가족을 주제로 한 드라마답게 이순재, 강부자를 필두로 양희경, 노주현, 송승환, 정재순, 홍요섭, 김해숙, 임예진 등 중견 연기자들이 대거 출연했다. 신인배우로서 선생님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일 터.
“선생님들과 함께 연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연기를 수십 년 동안 해 오신 분들과 호흡을 맞춘다는데 정말 영광이고. 많이 배울 수 있는 ‘교육의 장’이었어요.”
초반엔 선생님들과의 연기 호흡에 긴장하기도 했지만, 8개월간 함께하며 진짜 가족이 된 것 같았다고. 그는 “강부자 선생님, 이순재 선생님께서 진짜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잘 챙겨주셨고, 특히 김해숙 선생님이 유달리 애정을 주셨다. 너무 감사하다”며 거듭 감사의 뜻을 전했다.
정해인은 ‘그래, 그런거야’에서 남규리와 연인, 그리고 부부로 호흡을 맞췄다. 남규리와의 호흡이 좋았냐는 질문에 정해인은 1초의 고민도 없이 “전 좋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로맨스도 찍었고 사랑싸움도 하고. 여러 가지 감정 연기를 함께 하면서 즐거웠어요. 누나가 너무 잘 챙겨주셨고요. 한 번은 야외촬영이 끝난 뒤에 갑자기 ‘너랑 촬영하는 게 너무 즐겁다’는 말을 해주시더라고요. 마음이 잘 맞았어요.”
2014년 TV조선 ‘백년의 신부’로 데뷔한 정해인은 tvN ‘삼총사’ KBS 2TV ‘블러드’, 그리고 ‘그래, 그런거야’를 비롯해 다수의 영화에 출연하며 착실히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다. 그가 출연했던 네 편의 드라마는 좋지 않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신인 배우로서는 부담이 될 수 있을 터. 정해인은 흔들리지 않았다.
“매 순간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아요. 시청률은 하늘의 뜻이고요. 촬영을 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해요. 제가 아직 시청률 운운할 레벨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대학시절 주변 친구들 중 이미 기획사와 계약을 하고 연예계 활동하는 친구들이 있긴 했지만 저는 학업을 먼저 빨리 끝내고 싶었어요. 조급함이 생길까봐. 빨리 연예계 생활을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은 사실 상대적인 거잖아요. 전 늦었다고 생각하거나 조급하지 않아요.”
정해인은 “배우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 같다”고 말하며 자신의 연기관을 허심탄회하게 밝혔다.
“오래 연기 활동 하시는 선배님들을 보면서 ‘1, 2년 빨리 활동을 시작한다고 크게 다를 게 없다’는 걸 느꼈어요. 이 일을 오래 할 거니 길게 보고 꾸준히, 천천히, 한 발자국 씩 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연기실력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빨리 빨리’ 하고 싶지 않았어요. 전 아직 갈길이 멀었어요. 이제 드라마 4개 했는데요.”
8개월 간 꼬박 드라마 촬영하느라 휴식 한번 제대로 가져보지 못했다고 한다. 곧바로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 촬영에 들어가지만 “시간이 생긴다면 예전에 함께 작품했던 송재정 작가님의 ‘W(더블유)’를 몰아서 보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이돌 가수, 왕자의 호위무사, 천재 생물학 박사, 그리고 대가족의 막내 유세준을 연기했다. 비슷한 캐릭터가 없었다”며 새로운 캐릭터를 만
“저 스스로도 변신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저는 늘 새로운 걸 연기 했던 것 같고, 다음 작품에서도 새로운 도전을 하겠죠. 음... 다음 작품에서는 장난스럽고 능글능글한 캐릭터를 연기 해보고 싶어요.”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연기자의 길을 걷는 정해인. 그가 걷는 길이 ‘꽃길’이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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