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도 명시돼 있듯, 누가 뭐래도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화신이다. ‘짠내’나는 마초, 납득여부에 상관없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 남자의 ‘질투쇼’, ‘질투의 화신’은 조정석의 하드캐리 속에서 완성된 조정석표 로코다.
‘표나리’ 공효진의 평면적인 착한 순애보와 달리, ‘이화신’ 조정석의 사랑은 이기적이지만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 법한, 현실적인 감정에서 시작된다. 분명 나 갖긴 싫었는데 막상 남 주려니 너무 아까운 심보, 저 사람이 ‘괜찮다’는걸 본능적으론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 진가를 알아볼 마음은 먹질 않더니 정작 다른 사람이 먼저 알아보니 왠지 불쾌하고 억울한 심정. 조정석의 사랑은 이런 발칙한 ‘질투’에서부터 시작된다.
표나리의 사랑 전개는 사실 간단명료하다. 첫 눈에 반해 끝까지 직진. 외부 자극은 어떤 영향력도 없다. 지고지순하고 순수하며 맹목적이다. 아무리 해도 안 되니, 억지로 마음을 접었지만 실은 접지 못했다. 화신을 두고 다른 사랑을 시작하려 했던 건, 어느새 짝사랑에 익숙해져 그가 자신에게 오리라곤 상상도 못한, 잠정적 포기 상태에서 비롯된 자기 방어였을 뿐. 표나리의 사랑에 ‘질투’는 아무런 힘이 없다. 처음부터 화신이었고, 결국은 화신인 여자니까.
질투의 시작과 함께 체면은 내던지고 틈만 나면 술주정을 부린다. 옷 벗고 싸우며 ‘진상’을 피고 “같이 자자”며 거침없이 들이댔다가도 거절당할까 한 없이 소심해진다. 난데없는 애교 퍼레이드에 틈만 나면 “누가 더 좋냐”며 유치함의 끝을 달린다. 형제 같은 친구에게 선전 포고하며 “개새끼가 되겠다”고 포효한다.
이와 더불어 ‘유방암’과 ‘형의 죽음’, ‘금이 간 우정’과 ‘불임’이라는 갈등과 비극은 화신을 더 성숙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성장 속에서 화신의 사랑도 점점 깊어진다.
화신의 사랑은 이처럼 다채롭다. 귀여우면서도 열정적이고 짠하면서도 깊다. 언제 변할지 모르는 변덕스러움이 있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고 드라틱하다. 사랑 장난의 창조자인양, 연인들의 마음 구석구석을 멋데로 자극하는 ‘질투’라는 요망한 감정의 다채로움이 제대로 녹아 있다.
‘질투의 화신’은 조정석의 로코였다고, 그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질투쇼’라는 말에 납득하지 않을 이가 과연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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