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신동욱(34). ‘꽃미남’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그에 대해 혹자는 ‘만찢남(만화책을 찢고 나온 듯 멋진 남자의 줄임말)의 원조’라고도 표현했다.
일부 작품에서 보여준 부정확한 발음이 두고두고 회자되며 소소한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그는 차세대 스타이자 잠재력 있는 연기파 배우로 성장할 채비를 갖춰가고 있었다.
2011년 군 입대로 인해 팬들 곁을 잠시 떠난 그는 여느 장병들과 같이 건강하게 복무하고 있을 줄 알았건만 ‘희귀성 질환에 의한 의병 전역’이라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려준 채 홀연 자취를 감췄다.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은, 긴 투병의 시작이었다.
그가 진단받은 CRPS(복합부위통증증후군)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 중 최고치에 달하는 고통을 수시로 느끼는 병이다. 사실상 완치가 불가능한 이 난치성 질환은 신동욱 뿐 아니라 많은 환우들의 일상을 파괴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병마다.
신동욱이 투병의 길로 접어든 사이, 사흘이 멀다 하고 수많은 이슈로 도배되는 연예계, 수많은 채널에서 쏟아져 나오는 많은 작품들 속 대중은 야속하게도 그렇게 그를 잊어갔다. 무소식이 희소식이기를 기원하며 응원을 보내는 이도 있었겠으나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신동욱은 점점 희미해져갔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2016년 가을, 뜻밖에도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신동욱이 직접 소설 쓴 소설 ‘씁니다, 우주일지’를 들고 등장한 것. 어느 정도 건강이 회복됐구나 하는 안도감을 안고 향한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 30여 분간 진행된 신동욱과의 간담회에서 안도감은 그에 대한 경외감으로 바뀌었다.
그가 소설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세 가지다. 첫째는 “뻔뻔하게 돌아오겠다”던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요, 둘째는 본인처럼 갑자기 시련을 겪고 삶의 의욕을 잃은 누군가에게, 시련을 해쳐나갈 수 있는 믿음을 주고 싶은 마음에서요, 셋째는 개인적인 관심 분야를 직접 쓰고 싶은 오랜 바람이었다.
특히 “끝낼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 힘들었다. 이렇게 완성하지 못했다면 우주에 표류하다 아직까지 착륙하지 못하고 미쳤을 것 같다”는 격한 표현을 쓸 정도로 집필 기간 내내 심적 투쟁이 엄청났음을 드러냈다.
첫 소설임에도 472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을 담았다. 우주과학을 소재로 한 만큼 기발한 상상력도 중요하지만 전문 지식도 필수였던 바, 이를 위해 물리학 관련 서적을 150여 권 독파하며 배경 지식을 쌓았다.
철저히 외부와 고립된 가운데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겨온 시간은 결코 허툰 시간이 아니었다. 때로는 잠시나마 고통을 잊게 했고,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갖게 해줬다. 처절한 무너짐 앞, 극복이라는 말이 사치였을 시간이었으나 그렇게 신동욱은 혼자 힘으로 이겨냈고, 이겨나가고 있다.
“처음 다쳤을 때 굉장히 많은 분들의 위로를 받았는데, 위로를 받다 보니 제가 나약해지더라고요. 내가 얼마나 아픈지를 덜 인식할수록 이겨낼 수 있는 힘, 병과 싸울 수 있는 힘이 생기는데 계속 위로를 받다 보니 나약해지고 스스로 불쌍해지더군요. 그래서 5년간 사람들을 피했습니다. 전화를 잘 받지 않았고, 걸지도 않았어요. 처음 부정맥으로 쓰러지면서 뇌진탕도 겪었는데, 기억이 날아가다 보니 인간관계에서도 미안함이 생기더라고요. 몸이 아픈 건 내가 버티면 되는데 사람에 대한 미안함, 정서적인 아픔이 크게 다가왔어요. 그래서 5년간 사람을 피했습니다. 스스로 이겨내기 위해. 병과 싸우고, 위로받지 않기 위해서요. 사람들을 피하면서 저는 저 스스로를 응원하며 버텨왔고, 그렇게 운 좋게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아직 온전하지 않은 건강 상태로 인해 배우로서의 컴백을 기약할 순 없지만 “앞으로도 글을 쓰고 싶다”는 신동욱. 소설가라는, 인생의 2막을 스스로 연 그는 오는 30일 예능 프로그램 ‘말하는대로’를 통해 모처럼 시청자를 만난다. 찬바람을 뚫고 사람들 앞에 선, “청중들에게 힘을 받고 눈물이 났다”는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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